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메이트북스 클래식 14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강현규 엮음, 이상희 옮김 / 메이트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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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요람 안에서 보호만 청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로는 혹독한 시련 속에 강제로 던져져서라도, 나약하고 의존적인 성품을 개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조건 인센티브, 보상 기제만 요구하는데,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꼭 무엇인가를 더 받아내어야만 하려 드는 습성은 대단히 버릇이 잘못 든 겁니다. 반대로,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강압적 태도로 군림하려 드는 것도 문제입니다. 

만약, 타고난 능력으로는 못 해 낼 법한 과제를, 정말 외인구단식 지옥훈련을 거쳐 이뤄냈을 때, 그 사람은 여태 겪어 보지 못한 성취가 가져다 주는 무한한 희열을 과연 체험할까요? 이 역시 개인 차가 있습니다. 만약 자발적으로 엔돌핀이 솟아난다면, 여태 받은 스트레스를 다 만회하고도 남음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 주위에서 "봐, 너도 할 수 있잖아!" 같은, 억지로 분위기만 띄우는 칭찬이 전부이고, 정작 본인은 하나도 보람을 못 느낀다면, 그 사람은 아마 몸에 암세포만 키우는 게 고작이었을 겁니다. 이런 사람한테는 강압적 수단을 써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마냥 오냐오냐 해 주는 것도, 태어나서 도대체 발전이라는 걸 경험하지 못한 채 매번 제자리걸음으로 묶어 두는 꼴이라 전혀 바람직하진 못합니다만, 여튼 몸에 암을 키워서 사람 하나 죽이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저자는, "의지로 해 내지 못할 것을, 자신의 무의식을 일깨워서 해 내게 하자"는, 이른바 스위치를 찾아 내는 계발 방법론을 이 책에서 자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의지는 결국 소모될 수밖에 없는 자원"이라는 거죠. 요즘 우스개소리로도 자주 듣는, 이른바 "의지 드립"은, 설령 그게 체질적으로 잘 통하고 또 타고난 바가 남다르게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해도, 성과가 그때그때 거둬지면 그것대로, 혹 기대한 대로 성과가 못 나오면 더 빠른 속도로, 결국은 다 소모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의지"로 버틸 수 있는 게 결국은 한계가 있다는 소립니다.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도 질리는 때가 오는데, 하물며 싫은 일을 억지로, 의지에만 기대어 해 나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기 싫은 일, 자신이 잘 못 하는 일은 그저 생각만 해도 멀쩡히 있던 기운까지 다 빠져나가게 만듭니다. 요즘처럼 물질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사람의 과업을 도와 주는 기제가 (상업적이든 뭐든) 많이 마련된 세상에선, 더군다나 의지로 깡으로 뭘 헤쳐나가는 게 어렵습니다. 

사람을 의식 기저에서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는 건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이 무의식이 혹 유효하게 계발이 되었다면, 사람은 애써 어떤 의지를 발동시키지 않아도, 눈만 뜨면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여 그 일을 찾아 해결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의지 드립"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이봐, 해 봤어?"라며 모든 과업에 일단 막무가내라도 부딪히고 볼 것을 주문했던 어느 재벌 그룹 창업자가 생각이 나죠. 당시 한국에서 손 쉽게 돈 버는 길은 소비재 산업에 전념하는 쪽이었을 텐데, 그 사람은 소위 "중후장대" 업종에만 관심을 쏟으며 불모지나 다름 없는 한국에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거야말로 전근대식 "의지"의 위력을 보여 준 좋은 예라고 생각도 되지만, 한편으로 그 인물이 도전 정신 못지 않게 강조했던 덕목이 있습니다. 바로 "그 문제에 대해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한테 대접을 해 줘야 한다"는, 그 사람 나름의 확고한 원칙이죠. 물론 "생각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어떤 장애가 생기면, 그 장애를 돌파하기 위해 밥을 먹는 중에도, 심지어 잠 자는 중에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각에만 골몰하는 게 그 창업자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자신은 머리가 가장 좋은 사람도 아니고, 가장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었으나,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쪽이었기에, 그런 사람들을 다 밑에 두고 부릴 수 있었다는 거죠. 저는 이 대목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잠재의식" 계발과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파고 들면, 결국 무의식마저도 의식에 지배된 채, 그 막대한 에너지를 의식의 요구에 제공해 준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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