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 일본에서 찾은 소비 비즈니스 트렌드 5
정희선 지음 / 원앤원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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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 합의의 어두운 이면이 "잃어버린 30년"이란 암울한 결과로 나타났던 일본에서는 심지어 가성비란 뜻을 가진 "코스파"라는 유행어도 우리보다 훨씬 앞서 쓰였다(p15)고 합니다. 불황과 침체에 일찍부터 익숙해진 일본인들의 행보를 보면, 앞으로 우리도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할지, 개인이나 (그런 개인들의 의사 결정, 취향 변화들을 예측하고 상품, 서비스를 내놓아야 할) 기업들이 많이 참고해야 할 바가 보이겠습니다. 또 일본은 예전같지는 않다 해도 세계 유행의 한 축을 끌고 가는 트렌드 세터 포지션이기는 하므로 그들을 향한 트렌드 분석은 여전히 유익한 작업이기는 합니다. 코스파의 어원이 된 cost perfomance라는 개념 자체는 원래부터 미국에서 쓰이긴 했습니다. 코스파 뿐 아니라 타이파, 스페파 등 시간과 공간의 가성비를 따지는 개념들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알코올은 싫지만 맥주는 마시고 싶어." 얼핏 들으면 모순이지만 높은 도수 주류를 꺼리고 다만 취하는 분위기 자체는 즐기고 싶은 일본 젊은 세대의 취향이라고 합니다. 책 p28을 보면 무알코올 맥주, 하이볼 등을 원래부터 대체품으로 소비하는 풍조가 있긴 했으나 최근에는 무알코올 류가 소비의 아예 메인으로 부상했다고 나옵니다. 여기에, 뱃살을 줄여 주고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등 기능성까지 어필한 상품 라인업이 새로 등장하여, 알코올 섭취 같은 무익한, 해로운(?) 활동이 부르는 자책감도 줄이고 뭔가 생산적인 알을 했다는 만족감도 부여한다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그전부터 공간활용은 사람들의 관심사이긴 했습니다만 요즘은 높아진 렌트, 갈수록 심해지는 도시 공간 효율화의 압박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이 투여되고 아이디어도 속출합니다. 이른바 공간의 가성비(p65)인데, 낭비되는 부분 없이 공간이 알토란 같이 쓰이면 같은 비용을 쓰고도 더 큰 만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협소 주택, 미니멀리즘 등의 키워드가 연결되는 대목에서 책에 빨려들어가듯 읽었습니다. 특히 여행가방 정도의 크기로 접을 수 있는 오토바이라면, 주차 공간 때문에 고민인 젊은 라이더(배달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이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겉멋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안 통할 수 있겠지만요. 

소통과 교유(交遊)에 있어서도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는 그닥 친하지도 않은 인맥과 만나 공연히 돈과 시간을 쓰는 걸 꺼립니다. p105에는 도조라는 서비스가 소개되는데, 개별 단품이 아니라 테마를 중심으로 고르는 선물이라는 게 특이합니다. 이처럼 선물을 대신 골라 주는 서비스는 그 사회적 센스가 정말 중요할 것 같은데 개인의 맞춤형 감각 발휘도 아니고 시스템에 의해 이게 가능해진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이 선물을 고르는 과정이 그저 선택-결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고르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고 타 유저들과 소통하는 등 어떤 체험의 장, 문화 공간으로까지 발전한다는 것도 탁월했습니다. 

경기도에서 "노인"이라는 용어 대신 "선배 시민"이란 말을 쓰기로 했다는데, 고령인구가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대표적인 나라인 일본(p171)에서 이런 시니어들을 위해 어떤 상품이 나오고 서비스가 행해지는지는 우리 한국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죠. 우리 나라에서도 고령 운전자들이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헷갈려 교통사고를 내는 일이 잦은데, 그렇다고 "면허 반납이 답"이라며 이들을 몰아세우기만 하면 시니어들의 삶의 질이 저하돤다는 문제가 또 있습니다. 일본의 민과 관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움직임, 즉 두뇌 운동을 통해 "운전 수명을 늘리는" 여러 시도들은 확실히 한국의 지자체나 회사에서 참고할 대목이 많겠습니다. 

요즘은 어느 산업, 어느 섹터나 AI의 도입과 활용이 대세입니다. 본래 미각이나 후각 관련 상품 개발에는 사람의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제는 이 과정도 일일이 사람이 판정하는 게 아니라 AI가 들어가서 그 시간과 프로세스를 대폭 줄인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p212에 나오는 예들인데, 삿포로 社가 개발하는 츄하이(酎[희석식]+highball[칵테일])는 아예 개인의 취향까지 분석하여 맞춤형 음료 출시를 지향한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이제는 한국 식당 곳곳에서도 볼 수 있지만 로봇 서빙도 갈수록 대세가 되어가는데 일본에서는 아예 로봇이 모든 운영을 떠맡은 식당도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한국도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만을 취급하는 무인점포가 수도권 곳곳에 늘었는데, 이게 다 로봇 운영 점포로 가는 중간단계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남겨진 음식을 효과적으로 업사이클링하는 산업들도, 비용 절감과 환경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지향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어떤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운 유행을 넘어서, 절약과 친환경이라는 시대정신을 잘 구현하는 모범적인 산업 트렌드를 관찰한 듯해서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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