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오페라 -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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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십여 년 전부터 오페라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한국에도 부쩍 늘어서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왔었지만 어떤 책은 정보가 빈약하고, 어떤 책은 너무 무게 잡고 만들어서 일반 독자가 부담 덜고 접근한다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 책은 분량도 300페이지쯤이고 (따라서 무게도 가벼운데다) 내용도 쉽게 이야기책처럼 쓰여서 책 읽는 노력 대비 얻는 정보의 가성비가 무척 좋았습니다. 사실 가성비 따지는 게 미안할 만큼, 책에는 버릴 부분 없이 어디서나 즉시 써 먹을 이야깃거리가 가득해서 이 분야 다른 책과 비교할 레벨이 아닙니다. 

다섯 파트에 다섯 편씩의 고전이 설명되어 모두 스물 다섯 작품을 공부...라기보다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오페라 실 감상시에는 무대의 화려함, 성악가들의 압도적 가창력과 성량, 객석의 분위기(?) 등에 떠밀리기 때문에 뭐 그럴 일이 없지만, 만약 메가박스 상영관이나 혼자 집에서 TV를 통해 실황 녹화 컨텐츠를 보거나 할 때에는, 언어(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의 장벽이나 배경 지식 부재로 인해 슬슬 눈꺼풀이 닫힐 위험이 매우 큽니다. 그럴 때에는 배경 지식의 장착만큼 특효약이 또 없습니다. 

한국에서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주세페 베르디는 19세기에 활동한 인물인데, 이 책 p41에 소개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무려 17세기 사람이며 이때에도 이미 형식적으로 오페라 장르가 이 정도나 완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율리시스의 귀환>이 소개되는데(정확하게는 "고국으로 귀환하는 율리시스"), 베네치아 사람이었으므로 오뒤세우스는 고전 라틴어 울릭세스를 거친 형태인 울리세(Ulisse)로 표기되며, 극화된 내용도 우리가 아는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페라 내용과 형식에 대한 소개와 설명도 좋지만 "(신의 장난에 놀아나는) 인간은 약해도 사랑은 강하다"는 주제를 이끌어내는 저자의 건강한 세계관도 독자를 참 편하게 해 줍니다. Omnia vincit amor! 

다섯 파트 모두 각각의 주제에 의해 작품을 뽑아 설명하는데 파트 1(그 무엇보다 "용감한")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오페라는 바로 베토벤의 <피델리오>입니다. 레오노레 서곡은 엄밀히 말하면 피델리오에서 여러 번 개작을 거쳐 밀려났다고 봐야 하므로 독립된 부수음악(말이 모순되지만 여튼)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에그먼트 서곡도 소속 작품 없이 독자적인 형식이므로 <피델리오>가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입니다. 이 책에는 (리텍컨텐츠의 다른 책도 그렇지만) 소개된 대표 아리아들의 가사들 원문(제목만), 해석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원문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 작품은 독일어로 쓰인, 당시로서는 꽤 드문 예이기도 합니다. 

p87에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설명됩니다. "Non so piu, cosa son cosa facio"가 역시 이탈리아어 원문 가사와 함께 소개됩니다. <마술피리(이 책에서는 p148)>는 독일어로 쓰였지만 이 작품은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지만, 이 곡은 1972년작 코폴라의 영화 <대부>에서 코니의 결혼식장 어느 여성 성악가의 초청 공연 장면 중 "논 쏘 퓨"라는 그 소절이 불리기도 했습니다. 

주세페 베르디의 <나부코>가 p99에 소개됩니다. 한국인들은 <나부코>는 몰라도 아마 작중 아리아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겠습니다. p109에 나오는 대로 이 곡은 <나부코>를 넘어 베르디 작품 세계 전체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책은 각 오페라 작품 중 메인 아리아들의 리스트를 25개 꼭지들 끝에 매번 따로 정리해 줍니다. 그런데 유독 "Va pensiero"만 가사 소개가 빠져서 좀 아쉬웠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만 이 곡 제목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번역하며 유럽에서는 그냥 "가라, 생각이여"라고 할 뿐입니다. 

<포기와 베스>는 "랩소디 인 블루"로 유명한 20세기 작곡가 조지 거스윈의 작품이라서 많은 이들이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로도 오인하지만 책에 가사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 영어로 쓰인 오페라 형식입니다. 이 작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아리아는 역시 우리 모두가 아는, 캐슬린 배틀이나 엘라 피츠제럴드 버전으로 많이 들은 <써머타임(p113)>입니다. 이 오페라는 듀보제 헤이워드 부부의 희곡 원작이 있죠. 

자코모 푸치니가 <서부의 아가씨>를 작곡했다면 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엄연히 이탈리아어로 쓰인 오페라이며 사실 <나비 부인>도 남자 주인공(...) 피커튼 중위가 미국 사람이긴 합니다. 이 작 중 유명한 아리아는 p130에 소개된 <자유의 몸이 되어 떠났다고 믿게 해 주오>이겠는데 루치아노 파바로티 베스트 음반 중 하나인 <에션셜 파바로티> 2집에도 수록되었습니다. "첼라 미 크레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노래인데 ch'ella mi creda는 "그녀로 하여금 내가 ~하다고 믿게 하라"는 뜻이죠. 푸치니의 다른 오페라 <투란도트(이 책 p269)>의 nessun dorma도 3인칭 명령형("아무도 잠 못 들게 하라")이라서 dorma의 어미가 -a로 끝납니다. 

기독교 신약에 헤로디아의 딸이 살로메라는 기록은 없습니다만 영국인 오스카 와일드가 희곡 제목과 주인공 이름으로 쓰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책 p204에 나오듯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오페라로도 만들었는데 저자께서 아주 직설적으로 신랄하게 평가하셨듯이 작품의 요소들이 정말 충격적이죠. 가사는 당연히 독일어로 쓰였습니다. 이 책에는 독일어 오페라가 좀 많이 소개되는 느낌인데 또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가 빠질 수 없겠습니다. 이렇게 "니벨룽"이 맞는 표기이며 "니벨룽겐"은 예전에 2격 어미변화형을 이름 자체로 오해한 잘못이었죠. 

책 앞에 오페라의 구성에 대한 해설, 간단한 용어 사전이 나와 있어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 번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강조하는 저자님의 철학에 대해 감탄하게 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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