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편협 - 우리는 필연적인 편협을 깨야 한다
라뮤나 지음 / 나비소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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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 비슷한 걸 만들면서 어떤 편익을 누리고 품위와 여유를 갖추게 된 건 기록을 남기고부터이며 그때부터 책을 읽는 사람은 남들보다 앞서가는 어떤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저자께서는 중학교 때부터 도서부를 하셨고 담임 선생님의 영향으로 책을 가까이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확실히,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나를 올바로 이끌어 줄 어떤 은인을 만나는 건 큰 행운입니다. 이 책은 그 담긴 모든 문장에서 저자의 책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며, 대체로는 역시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겠기에 아마 책을 읽어 나가며 전폭적으로 공감했을 터입니다. 책을 이처럼이나 찐으로 사랑하는 저자의 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공감의 행복을 선사해 주니 말입니다.   

독자인 저도 그랬지만 이 책은 그 독특한 제목에 끌려 집어든 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p9를 보면 그에 대한 대략적인 해제가 나옵니다. "사람은, 살아 온 환경에 의해 필연적으로 편협해지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만 이해하고 보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고 겪는 사람들 중 크건작건 편협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같이들 편협한지...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 역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편협한 인간이겠습니까.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사람이 편협해지는 건 어느 정도는 필연이라는 것이니 뭔가 안심이 됩니다. 내가 남한테 편협한 것에 대해서도 덜 미안해지고, 내 주변에 이렇게 편협한 이들이 많았던 것도 나만의 특별한 불행이 아니라는 뜻이니 말입니다. 

편협이 필연이라고 해서 아 그럼 앞으로도 마음놓고 편협해져야겠다, 나의 결론이 뭐 이렇게 나와서는 곤란합니다. 대체로 편협한 사람은, 책에도 그 말이 나왔지만 자신의 그 협소한 바운드리에 갇혀 나오지 못했다는 뜻이니, 편협은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해롭습니다. 헤세의 <데미안>에도 그런 말이 있지만 사람은 알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성장이 가능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편협을 깨고 더 큰 세계로 나오려면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 기쁘게 나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인격을 가다듬은 사람은 벌써 대화하기가 편합니다. 조금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발끈해하거나 거칠게 소통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수양이 된 사람 중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과연 진짜인가?(p103)" 몽테뉴는 Que sais-je?(내가 무엇을 안단 말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자성과 정진을 시도했습니다. 내 머리 안에 이미 그 뿌리가 깊은 편협이 도사리고 있으니 이후에 들어온 모든 지식과 관점도 그에 의해 편협해지고 왜곡된 것일 수 있습니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은 이렇게 먼저 반성의 초점이 자신을 향할 줄 압니다. 반면, 독서가 부족한 사람은 내 잘못은 생각도 않고 남을 향한 손가락질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무엇이 본질인지를 가리는 노력의 예로 해방직후의 농지개혁(p105)을 듭니다.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원칙 하에 단행된 농지개혁은 대체로 소작농들애게 만족을 주었으며 아마도 이 덕분에 한국전쟁 시 박헌영의 최초 예측이 빗나가는 결과를 낳았지 싶습니다. 또 저자는 인도처럼 제조업에의 이행이 늦지 않았던 것도 이 영향이 컸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대목에선 개인적으로 살짝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했네요. 

저자는 p156 같은 곳에서 현재를 "감정의 시대, 눈물의 시대"라고 규정합니다. 현재는 그저 계층에 불과했던 것이 점점 고착화하면서 계급으로 변해 가고, 이제 어떤 노력도 효과가 없어지는 지경까지 가면서 "피의 시대(타고난 혈통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됨)"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땀의 시대에는 개인이 자기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성취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그 기회의 문이 닫혀간다는 거죠. 더군다나 AI라는 건 한때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사람의 정신적 노고를 더 높은 효율로 대신하는 도구이니 이 기회가 줄어드는 게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제 그럼 흙수저는 낙오와 도태의 그늘에 주저앉아 피눈물만 흘려야 할까요?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AI가 어떤 경우에도 흉내내지 못하는 창의성, 비선형(non-linear) 요소는 인간의 감정 안에 농축되었다는 것입니다. 계산적 지성의 정밀성을 다른 차원에서 뛰어넘을 수 있는 이 감정에 주목하는 날, 닫힌 줄만 알았던 기회는 다시 열리고 말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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