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ian 데미안 세트 - 전2권 - 영문판 + 한글판
헤르만 헤세 지음 / 반석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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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세트 구성이며, 한국어 번역본은 207페이지, 영어 번역본은 224페이지 정도의 분량입니다. <데미안>은 대중적으로 매우 잘 알려진 고전이지만 사실 막상 읽어 보면, 특히 독서가 권장되곤 하는 연령대인 중학생들이 읽기엔 쉽지 않은 텍스트입니다. 일단 한국어본이 무척 읽기 쉽게,  잘 읽히는 문장으로 된 점이 좋습니다. 

어느 어린이이든 가정 안에서 통용되던 질서가, 첫번째로 만나는 사회일 학교(유치원 포함)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는 걸 느낄 때 혼란스러워합니다. p25에 나오는 "진흙 묻은 장화"는, 이 두 세계의 가치와 이상이 서로 어긋남을 상징합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가치를 지키지 못한 게 부끄럽고, 어린 싱클레어에게는 마치 악마와도 같은 크로머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굴종해야 함을 또 부끄러워합니다. 소년이 속한 두 개의 공동체 어느 편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서지 못하는 싱클레어의 자괴감에 대해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겠고 이 고전의 생명력은 이런 성장과정에서의 보편적 갈등을 예리하게, 또 첫학적으로 짚어낸 데에도 있습니다.  

꿈과 현실은, 특히 꿈 부분이 생생할 때 분간이 어려워집니다. 물론 건강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아무리 피곤한 상태에서도 꿈과 현실이 혼동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주 어려서 겪은 일에 대한 회고라면 어떨까요? 내가 어린이일 때 체험한 일과, 그 무렵에 꾼 꿈에 대한 기억이라면 이를 쉽게 가르기가 무척 힘들 것입니다. 또, 어려서는 이겨내기가 몹시도 버거운 일을 겪으면, 이를 깊은 수면을 통해 이겨내려 하기도 합니다. p44에서 싱클레어는 이처럼 꿈과 현실을 동시에 되짚으며, 이미 어른이 되어 과거를 기억하는 자신에게 좀처럼 구별이 어려운 "그 시절의 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3장의 제목은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들 중에"입니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크로머라는 불량청소년의 강요에 의해 싱클레어는 도둑질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둑질 자체가 사회의 기본 규범에 반하는 수치인데, 이를 타인의 강요, 더군다나 원시적 폭력 말고는 아무런 권위도 갖지 못한 불량배에 의해 강요된 행위라는 게 싱클레어의 모멸감을 가중합니다. 

데미안은 매우 반사회적인 면까지 갖춘 매혹적인 독재자입니다. 그는 신부의 강론에 나오는 "두 도둑 이야기(물론 신약 본문에도 나옵니다)"를 자신의 버전으로 싱클레어에게 다시 들려 주며, 어정쩡한 개과천선 중인 도적과 달리, 그나마 기개와 지조(?)를 가지고 끝까지 예수에게 불손한 언사를 퍼부은 도적은 누가 배울 점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물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p77).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작중 싱클레어와 비슷한 나이일 때 처음 접했던 (역시 작중 캐릭터인)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눈에 비춰지듯 신적인 존재가 전혀 아니라, 어쩜 이리도 유치한 소릴 할까 싶은 흔해 빠진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이 읽혀져서 잠시 당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저 역시도 초등학생 시절에 겪은, 동네 중2병에 걸린 개똥철학자 형과 다를 바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 우상인 줄 알았던 그 누군가의 한심한 구석이 눈에 띄는 건,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확인하게 되는 나 자신의 성장 그 흔적이라고 해야겠죠. 

한국은 자연이 오랜 세월 동안 침식을 받아 산수가 오묘하고 완만하게 형성된 지형에 속합니다. 그 자연은 때로 매우 조화롭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때로 기괴할 만큼 부자연스러움의 극치를 보이기도 합니다. p131에서 싱클레어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지가 않고) 매우 부자연스럽게 지어진 자연물을 응시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독일의 산천이 어떠한지 제가 직접 가서 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자연이 자연답지 않고 기괴하다 여기는 건 그 역시 인간의 독단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장 조화롭게 구성되어야 할 음악의 세계를 구현하는 자 피스토리우스의 (그에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외모, 기이한 삶을 보고 싱클레어가 느꼈을 당혹감을 잘 상징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크나우어는 싱클레어의 친구들 중 우리 독자들이 잊기 쉬운 인물들 중 하나입니다. 마치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가 잠시 옆동네 놀러온 것 아닐까 싶게 작은 체격에 나약한 심성을 지닌 그는 p150에 나오듯 싱클레어가 때맞춰 그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자살을 감행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짧은 시간 동안 싱클레어는 크나우어에게 마치 데미안 노릇을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역본은 마치 펭귄이나 옥스퍼드 고전처럼 반듯반듯한 폰트로 큼직큼직하게 인쇄되었습니다. 대체로 "막스"라는 데미안의 크리스천 네임이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듯했고, 어떤 대목에서는 영역본이 한국어역본보다 더 쉽게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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