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하우스 - 한국 드라마 EP 이야기
김일중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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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p4에 나오듯이 "파워하우스란, 어떤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보유한 개인 또는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며, EP는 그런 파워하우스의 executive producer의 약칭입니다. 책에서 드는 예는 제리 브룩하이머 같은 사람입니다. 한류 열풍이라고 해서 그간 말로만 들었지만 해외에 나가면 그 위력을 더욱 실감합니다. 한국의 컨텐츠가 그렇게나, 다른 나라의 각계 각층에서 큰 인기를 모을 줄은 미처 몰랐지요. 이만큼이나 성장한 대중 문화 강국이니, 한국에도 파워하우스가 당연히 있고 그 파워하우스를 이끄는 EP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성공비결이 무엇이며 남들이 함부로 따라 못 할 그들의 센스와 영감의 원천이 어디 있는지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었습니다. 책에는 모두 10인의 EP가 소개됩니다. 

처음에 소개되는 분은 윤신애씨인데 저처럼 드라마 잘 안 보는 사람도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제목은 들어 본 적 있을 듯합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후의 한국 컨텐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드라마로 <인간수업>을 꼽는다고 합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책에 나온 몇 줄만 읽어 봐도 엄청난 파격이고 혁신이었던 듯합니다. 이런 컨셉으로 혹시 흥행이 잘못되면 책임자가 얼마나 욕을 들어먹겠습니까.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다 중간만 넘자는 생각이었다면 저런 히트작, 화제작은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엄청 거칠었지만, 캐릭타가 아주 잘 살아 있었어요.(p13)." 대가의 눈에는 이런 게 다 보이나 봅니다. 

EP는 과연 무슨 일을 하는가. p5에서 이동훈 EP는 "작가는 전부 프로듀서다. 작가 겸 총괄 프로듀서가 라이팅 EP이며, 글을 직접 안 쓰는 EP는 논 라이팅 EP"인데, 후자는 바로 자신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회사에도 파운더(founder)가 다 있기 마련인데, 논 라이팅 EP는 그런 설립자와도 같아서 "시스템 안에서 이런 파운딩 멤버는 영원히 간다"고도 합니다. 미국에서 계약은 오퍼, 카운트 오퍼, 다시 카운터 오퍼 하는 식으로 진행되며, 미국 내에서라면 어느 정도 참고 지표라고 할 게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게 없으니 미국 쪽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들고 올 수도 있으며 이때 괜히 흥분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현실적인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인엽 EP는 창작 능력을 기르는 비결에 대해 "그저 많이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p86)"고도 합니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후킹 포인트"라는 게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길게 가는 기획자라면 돈만 밝혀서는 안 된다고도 합니다. 자신은 이 일을 20년 동안 해 왔는데, 재미있는 말이 주변에서 하던 "영화는 대박이 나면 건물도 사지만, 드라마는 잘돼봤자 아파트 평수 좀 늘리는 정도다(p89)"라는 소리에 현타가 오기도 했으나, 결국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한우물을 파다보니 이제는 넷플o스가 주도하는 OTT 세상이 왔고 박 EP 같은 분이 재능과 능력에 맞는 대접을 받게도 된 것입니다. 

한석원 대표는 어려서부터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특히 군대에서도 <씨네21>을 구독했었는데 열정이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텍스트로든 영상으로든 꾸준히 정신적 양분을 섭취하는 게, 한 분야를 향한 진지하고 헌신적인 집념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변곡점이 된 작품은 <태양의 후예>인데, 이때에도 그가 최우선으로 꼽은 동인은 "재미"였습니다. 어느 분야이든,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죠. 다만 현재 잘나가는 인력에게건 유망주에게건 기회가 고르게 가야 하는데 현 OTT 주도의 시장에서는 양극화가 지나친 게 걱정스럽다고 합니다. 후배들이나 잘나가지 못하는 동료들까지 챙기는 한 대표님의 마음씀이 존경스럽네요. 

방송사의 제작 환경이라는 게 기성세대들이 알던, 지상파 방송국이 어떤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외부제작사한테 용역을 주는(그 이전이라면, 거대 방송사가 모든 걸 주도하는) 방식하고는 완전히 달라진 게 현실입니다. p151을 보면 김희열 대표는 "요즘은 방송사도 방영권만 구매해서 방송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코스닥 시황에서 보곤 하는 이런저런 미디어 제작사들이, 지상파 방송은 그저 채널로 삼아 배급하고 모든 걸 주도하는 그런 세상이 된 것입니다. 방송사도 그저 하나의 플랫폼 노릇을 하는 구조로 바뀐 거죠. p159를 보면 EP는 머나먼 항해를 떠나는 배의 선장과도 같다는 말이 나옵니다. 한국의 컨텐츠가 이처럼이나 큰 인기를 끌게 된 게, 드라마 안에 한국인 특유의 곱고 착한 마음이 드러나고 그것이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여 이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맞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드라마 그 너머를 꿈꾼다는 신인수 대표님은 "여기저기서 거절당하고 일이 안 풀릴 때 난국을 돌파하는 자신만의 킥(kick)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걸 메이드(made)시킬 수 있다는 확신, 자기 확신이 있다면 무슨 반대가 있어도 밀어붙인다"고 대답하십니다. 본인 세대는 이른바 언론고시를 뚫어야 입문할 수 있는 세대였으나 지금은 업계에서 신선한 젊은 피를 언제나 수혈받기를 원하며 "똘기있는" 창의적인 인력에 항상 목말라 있다고 하며, 그런 인재인지 아닌지는 척 봐도 알 수 있다고 하시네요. 젊은이들이 머뭇거리지 말고 젊음의 특권인 패기를 발휘하여 바로 도전해 볼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열린 마인드의 대가들이 성공 모범을 먼저 보여 주신 창조의 필드로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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