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모른다
로지 월쉬 지음, 신혜연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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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psyche)이 깃든 곳에 사랑(eros)이 머물 수 없다."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며 기어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 했던 프쉬케에게 에로스(=큐피드)가 그녀를 떠나며 한 말입니다. 흔히들 여자의 과거(이성교제, 성경험, 특히 동거 사실, 유흥업소 알바 경력 등)는, 결혼하려는 남자에게 절대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고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금기를 깨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나는 "너도 별로 깨끗하지 않으면서 남녀가 달라야 할 이유가 뭐임?" 같은 좀 단순한 반발심리, 다른 하나는 "이 남자는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니 그 앞에서 조금도 뭘 숨기고 싶지 않다" 같은 미안한 심리에서라든가, 혹은 어차피 과거가 다 알려지기 쉬우니 그냥 자수(?)해서 이후의 화를 방지하려는 동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두번째와 세번째 유형의 사연은 네o트판 같은 데서 자주 보이기도 하죠. 

이런 걸 쿨하게 넘어가는 남자도 있고, 연애 경험이 부족한 채 결혼에 바로 골인하는 찐따형(?)의 경우 "나는 아닌데 얘는..." 같은 배신감 때문에 결국 관계를 깨기도 합니다. 이 중 둘째 동기의 여성과 찐따남자의 파탄 과정이 제3자가 보기에는 가장 안타까운데, 결국 키는 남자가 쥐고 있어서 남자가 세상을 두루 겪어 여유를 가진 채로 (힘들겠지만, 테무진의 배포를 발휘하여, 얘는 여튼 내가 사랑하는 애라는 각성 하에) 여자를 끌어안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의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나하고 잘 맞는 여자와 함께 꾸려갈 미래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요즘 스릴러 트렌드대로, 1인칭 시점이 교대되며 전개됩니다. 챕터 제목이 레오이면 레오가 1인칭으로 자기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엠마이면 그 챕터에서는 엠마가 "나"입니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니, 독자는 최대한 머리를 써서 객관적 진상이 무엇일지 추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일단 엠마는 레오를 자신의 조모(정치인)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납니다. 연인 관계로 발전한 후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수시로 털어놓으려고 했었으나, 레오가 이런 쪽으로는 씨도 안 먹힐 남자 유형이라는 걸 알고 멈춥니다. 

엠마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뭘 속인다는 게 계속 꺼림칙하고 (나중에 들통날 게 두려워서라기보다) 죄의식을 견딜 수 없어 다 까고 용서를 받으려는 겁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영화 <슬리퍼스>의 한 장면이 생각나던데, 가톨릭 고해소 사제 칸에 동네 불량배 소년들이 들어와 신부인 척하며 동네 아줌마가 자신의 부정(不貞)을 고해하는 걸 듣습니다. 이 부인은 고해소를 떠나며 "얘들아 비밀은 꼭 지켜 주렴"이라고 하는데, 죄인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지 그 상대가 성직자이든 아니든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엠마도 사랑하는 이 앞에 마음의 짐을 더는 게 최우선이었으며 그 후과(後果)를 의식하는 계산적인 동기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한편 기가 막힌 건, 레오 역시 엠마의 과거가 수상쩍다는 걸 눈치채고 자신대로 은밀하게 이것저것 캐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레오는 바보가 아니었고, 엠마가 자신에 대해 말해 온 것과 실제 남아 있는 이런저런 흔적이 일치하는 게 별로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엠마가 나왔다고 하는 학교에서 졸업가운의 색깔은 이러이러한데 그녀의 졸업사진에서는 전혀 다른 색이었다든가... 여자가 이런 경우 잡아떼는 스킬도 다양한데 엠마는 적반하장형보다 무관심형을 택합니다. "그래? 난 식장에서 주는 대로 입었지." 뭐 그럴싸하긴 합니다. 이 경우 여자 연기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데, 엠마가 아무리 잘 둘러댔어도 여태 드러난 물적 증거가 뚜렷하며 레오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유형이므로 사실 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엠마는 생물학 전공인데, 그냥 이름 없는 학자가 아니라 방송 다큐 진행을 맡은 적 있어서 약간 셀럽에 가깝고, 이 때문에 스토킹 대상이 되거나, 미리 쓰인 부고 기사 주제 인물 리스트에도 올라 있습니다. 레오가 다름 아닌 부고 담당 기자이기 때문에 이게 나중에 약간 민감해진 이슈가 됩니다. 나 말고 다른 누가 엠마를 신경 쓸 만큼 엠마가 중요하고 유명한 인물이었던가? 과대망상이 아니라 정말로 한 개인이 감당 못 할 엄청난 진실이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레오는 직감합니다. 갯벌(다양한 생명체들) 이야기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데, 한국의 새만금 등도 세계적인 갯벌에 포함되므로 엠마에게 좀 알려 주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부고 전문 기자는 영미 문예에서 약간 웃음거리로 쓰이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보통은 해당 언론사에서 가장 능력 없는(취재력이든 문장력이든) 기자를 그 자리에 배치하는데, 이런 레오를 두고 "당신이 쓴 기사가 최고"라며 칭찬하는 엠마가, 제3자 입장에서는 우습게 보이기도 합니다. 엠마가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 레오도 알고 우리 독자도 압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기 때문이며, 이 소설의 원제인 "The Love of My Life"가 레오와 엠마 서로에게 모두 적용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라 굳게 믿었다..." "내가 알던 바와 하나도 같은 게 없는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키우는 개의 이름이 존 키츠인데, 그냥 존이나 키츠도 아니고 구태여 영국 낭만주의 3대 시인인 그 이름을 꼬박꼬박 부르는 게 재미있었는데 잘 생각해 보니 이것도 약간 복선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계속 불길하게 두 사람 사이에 자꾸 끼는 그 사람의 이름, 바로 그 자가 문제 아니냐고 느꼈다면, 당신의 느낌은 틀리지 않고 맞았습니다!...라고 해 주기엔 제법 더 복잡한 플롯 끝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시 늦여름에도 스릴러가, 밤에 읽기에는 제맛입니다. 영화화 프로젝트에서 일단 에이미 애덤스가 엠마 역인가 본데 잘 어울릴 듯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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