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컬렉션 -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단 하나의 보물
KBS 천상의컬렉션 제작팀 지음, 탁현규 해설.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천상의 컬렉션>은 K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여러 케이블 채널을 통해 재방송되곤 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전부터 손재주가 무척 빼어났습니다. 그 기술이라는 게 잔재주에 그치지 않고, 하늘과 땅, 그리고 같은 누리에 사는 사람들과 그 혼(魂)이 두루 통하는, 일종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지를 천의무봉, 혹은 교탈천공(巧奪天工)이라고도 부릅니다. 아마도 그 비결은 천혜의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기운으로 가득한 우리네 산천이 우리 겨레를 그리 키운 데서 비롯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민족이 여태 빚고 그리고 세운 모든 예술품들은 말그대로 천상의 컬렉션을 구성할 아이템으로서 자격이 넘칩니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뤄졌습니다. 1부는 2차원 평면에 전개된 회화 명작들을 소개합니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로서 천하의 풍류남아였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천하의 재사, 문인, 예인들이 몰려들어 하나의 작은 궁정(宮庭)을 이루었는데 그 번성함이 마치 춘추전국시대 맹상군, 선릉군, 평원군 같은 귀공자들의 세도와 맞먹었습니다. 어느날 안평대군이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읽고 꾼 듯한 꿈 이야기를 화공 안견에게 들려 주고 그리게 했다는 <몽유도원도>는 섬세하면서도 호방하고 심지어 정치적 이상마저 표현합니다. 당대의 명사들이 그림에 남긴 찬문(撰文)까지 더해 가히 국보 중 국보라고 불릴 만합니다. 책에서는 이런 원대하고 풍성한 비전을 표현할 수 있었던 안평대군의 기상에 위협을 느껴 수양대군이 거사를 일으켰다고까지 서술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실경이 있고 진경이 따로 있습니다. 실경은 말그대로 실제 경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기술의 결정체입니다. 진경은 사람 눈으로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대상의 아름다움을 한 폭의 구도에 남김없이 표현하는 경지입니다. 앞으로 5G 기술이 발전하면 온갖 각도에서 스포츠 경기를 입체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는데, 적어도 경기의 디테일과 전체적 양상을 파악하는 면에서는 현장 직관보다 TV 시청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 선비들이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감상을 실제 산천 구경보다 낫다고 평가했고, 그의 작픔들이 청나라를 통해 접근된 서양인들의 그림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무리 근엄한 유교 이념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해도 사람 내면에 자리한 욕망과 열정, 사랑이 내내 억눌리고 시들 수만은 없습니다. 정조의 문체반정 때문에, 조선 후기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 문학은 크게 위축되고 생명력을 잃었습니다(p83). 이때 이형록, 장한종 같은 화원이 나타나 책가도라는 그림 형식을 발전시켰는데 이런 그림 속에는 책, 문방구, 사치품(청나라로부터 온) 등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그려졌습니다. 또 양반 아닌 평민들을 위한 책가도에는 책보다는 온갖 행운, 무병장수의 상징들이 표현되어 서민 고유의 실용주의, 세속주의가 잘 드러납니다. 

경주 괘릉의 무인상을 보면 동아시아인의 얼굴 같지가 않고 마치 코카서스 인종처럼 보입니다. 페르시아의 고전 설화체계인 <쿠쉬나메>를 보면 황금의 나라 바실라가 등장하는데 이게 아마 신라를 지칭하겠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합니다(p111). 신라는 천 년도 전의 왕국이며 페르시아와 한반도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만날 수 있는 먼 거리인데도 이처럼 개성 강한 두 세계가 이미 소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금이 그처럼이나 흔했다는데 그 많던 부(富)의 상징이 다 어디로 가고 조선 내내 가난하게 살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종(鐘)도 참으로 아름답고 조상들 고유의 경건한 세계관을 잘 반영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비천상(飛天像)이라고 하는데(p146), 이 부근에 종 치는 부분(당좌)을 따로 만들고 여기를 통해서만 종소리가 나게 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세게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 조상들만의 고유한 미의식과 지혜가 이런 조형물에서도 일일이 확인됩니다. 

한민족은 내내 풍수도의 길(吉)한 진리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리학을 숭상한 조선 시대에조차 입지의 길함과 불길함을 따져 건축물을 세웠고, 특이하게도 왕자가 날 때 생기는 태를 따로 묻는 태실이란 건조물을 전국 최고 명당에 따로 조성했다고 나옵니다(p187). 이렇게까지 왕실의 대를 잇는 데 공을 신성라게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비 중 거의 절반이 아이를 못 낳았다고 하니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지 연구해 볼 일이 아닐 수 없네요. 

일본어에 쿠다라나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시시하다는 뜻이며, 그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이 있으나 그 중 가장 유력한 건 "백제없다"에서 왔다는 설명입니다. 백제산이 아닌 건 예술품이건 뭐건 일본에서 그만큼 높은 평가를 못 받았다는 뜻이 되죠. p214에 나오듯 유독 삼국 중에서 백제가 각종 예술품에서 자기만의  최고 수준 미의식을 뽐낸 건 정말 기이할 정도입니다. 온갖 벽돌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뽀내는 선(線)과 요철의 각도.. 이런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보면 상실의 아픔도 절로 치유될 듯하다고 책에서는 말힙니다. 

에술은 겉모습을 통해서도 아름다움을 드러내지만 진짜 아름다움은 그 안에 담긴 정신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5백 년 넘는 왕조의 거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춘추필법으로 담았는데 이를 기록한 사관의 정신은 그야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 말을 후세에 남기고 말겠다는 선비의 푸른 절개가 깃든 것입니다. 어떤 회화나 조각, 건축물보다 아름다운 게 이런 대쪽 같은 정신이며, 우리 민족에게 오천 년 동안 그 고유의 생명력과 혼을 지탱해 준, 진정한 예술품의 극한적 아름다움 그 증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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