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있었다 - 경제학이 외면한 인류 번영의 중대 변수, 페미니즘
빅토리아 베이트먼 지음, 전혜란 옮김 / 선순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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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바라본 내용입니다. 혹은, 페미니즘 시야에서 다시 고찰한 경제사(經濟史)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바는, 관점을 달리하면 기존에 틀림없다고 여기던 바도 새삼 의심이 생기고 재검증이 필요하겠다 싶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세상의 반은 여자가 맞긴 하구나, 일단 기존에 소홀히하던 변수가 끼어들어 공리가 흔들리니 전혀 새로운 진리가 눈에 띄기도 하는구나, 뭐 이런 생각이죠. 페미니즘 진영도 아마 여기까지는 미처 내다보지 못했으리라 짐작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생산력 차이가 근본적으로 역전된 건 산업혁명 이후입니다. 우선 서유럽은 여성의 시장 참여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고 합니다(딱히 새로운 주장은 아닙니다). 다음으로, 가족 외 구성원과도 신뢰가 공유될 수 있는 제도인가, 만약 그렇다면 여성의 자유가 더 넓게 보장된다... 이 부분에서 눈을 크게 뜨게 됩니다. 특히 중국, 한국은 사실상 신뢰의 범위가 친족 집단을 넘지 못하고, 이 점이 사회 근대화를 크게 가로막았습니다(후반부 p213도 참조). 이런 제도 하에서는 여성이 가부장 아래에 더 철저히 종속됩니다. 반면 서유럽은 부르주아 이상이면 여성들이 사교계에 자유로이 출입도 하던 사회였죠.  

다음으로 이 책은 저임금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기존의 허술한 주장을 사정없이 깨부숩니다. 저임금은 기업가의 혁신을 가로막기 때문에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은 상대적으로 고임금 국가여서 더 빠르게 성장했다는 주장에 다시 "백인 남성 노동자 중심 사고"라는 반론이 가해집니다.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흑인 들은 저임금에 시달렸다는 거죠. 여기에 다시 가해지는 재반론은, 영국이야말로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이 타 유럽 국가보다 높았다는 사실입니다.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스포츠 경기처럼 흥미롭습니다.  

p77을 보면 특정 시기 중동 지역의 경우 우리 선입견과는 다르게 인도, 중국에 비해 여성에 대한 처우가 나았다고 합니다. 상속권이 더 넓게 인정되었고 남편에 대한 종속도도 훨씬 낮았다고 하네요. 순결에 대한 감시가 더 혹독했으나 이 점은 경제활동과는 관련성이 낮습니다. 결국 여성이 산업과 거래(p188의, 성공한 시장론도 참조. p181에서의 "해방구로서의 시장")에 어느 정도 폭 넓게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가 경제 성장과 밀접한 인과관계, 적어도 상관관계를 가지며 실제로 해당 지역에서 통계와 자료로 확인이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무제한으로 타당한 결론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한정된 결론입니다. 지금이야 당연히, 여성의 자유도건 경제 성장이든 동아시아가 훨씬 나은 형편입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그저 칼 마르크스의 협력자 위상에 그치는 인물이 아니며 특히 근대 가족제도 발전에 대한 연구는 찬성이든 반대든 아직도 그의 연구를 상당부분 참조해야 할 만큼 폭 넓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신석기 농경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사유 재산 제도가 생겼으며, 여성이 출산 도구이자 성노예 역할로 본격 전락했다고 규정합니다. 이처럼 좌파이론은 해당 논자가 페미니즘을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친여성 성향을 띠는 게 보통이고 또 원칙입니다. 하물며 엥겔스 같은 사회주의의 개조격 인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단 바버라 슈뭐츠 같은 이는 가부장제가 진화론적 반응이라며 다소 결이 다른 주장도 합니다.   

부양이 아닌 돌봄이 문제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낸시 프레이저 같은 이는 여성의 신체 자율권이 더 철저히 보장되어야 약탈적이고 환경파괴적인 경제 발전 비전이 멈춰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신체자율권이란 대체로 낙태의 자유 확대를 뜻합니다. 아프리카처럼 여성의 자유가 위협받는 나라에서 인구가 더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빈곤과 환경 파괴가 더 만연하다는 건 우리 모두가 보는 바입니다.  

반여성적인 사회일수록 성노동자(전통적으로 매춘부, 성매매산업 종사자라 불렸던 이들)에 대래 낙인찍기가 심하고, 결정적으로 "정상적인" 여성과 성노동자 사이에 편가르기를 유도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의 경우 여성운동가들조차 미숙한 인식에 그치는 경우를 흔히 보며, 기껏해야 시혜적인 스탠스에서 누구의 죄를 사한다는 식으로 patronizing하는 반(反)진보적 퇴행도 드러내곤 합니다. 어떤 자는 캐서린 하킴의 매력자본 개념을 왜곡, 견강부회하여 자신의 값싼 처신, 성상납, 타락 행위를 합리화하는 막장 태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페미니즘에 대한 역적행위를 하는 셈이죠.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는 규모가 아니라 능력에 달렸다(p196)." 어떤 기준과 태도로 여성 이슈, 나아가 (결국 여성 팩터로 대부분 환원 가능한... 이 책 원서 제목도 참조하십시오) 사회 문제에 접근하냐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가릅니다. 제인 험프리스 같은 이는 "애초에 경제학은 성차별주의자들이 만든 것으로서 그 자체가 성차별적 체계"라고도 했지만, 경제학의 풍성하고 뛰어난 현실설명력이 기존에 존재했기에 그에 대한 반론, 혹은 페미니즘적 재해석도 이처럼 재미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새는 좌우의 두 날개로 날 뿐 아니라(제시 잭슨), 암수의 두 축이 균형을 이뤄야 애초에 개체가 탄생,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책 중 최고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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