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MZ들 - 일단 공정할 것
킴 스콧 지음, 석혜미 옮김 / 청림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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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는 적어도 1980년대 이후 미국 산업에 새로운 동력을 계속 불어넣어 온 원천이며 끊임없는 혁신의 바탕입니다. 이 책 저자의 전작이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이었는데 아마 같은 저자의 또다른 역작임을 강조하기 위해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 같습니다. 물론 실리콘밸리는 그 탄생 이래 언제나 젊은이들의 직장이었으며 지금 역시 MZ들이 그 주역이고 책 내용을 다 읽어 봐도 역시 제목이 잘 붙었다 싶습니다. 전작 <... 팀장들>도 찾아서 읽어 봐야겠네요. 이 책 원서 제목은 좀 터프하게 붙었는데 아마 저자분이 평소 말하거나 행동하는 스타일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스포츠 브랜드 나*키의 어느 슬로건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직장에서 타인의 선입견에 대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부터 책이 시작되는 게 좀 특이했습니다. 미국은 아마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다 보니 실리콘밸리 같은 똑똑이들이 모인 직장에서도 "선입견"이 어떤 소통상의 마찰을 빚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이 책에서 가르쳐 주는 방법은, 의사 표현을 할 때 주어를 "나"로 분명히 표현하여 내가 현재 이런 피해를 받고 있다, 혹은 당신이 이런 피해를 나에게 끼친다는 걸 분명히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인종차별 같은 이슈는 덜하지만(비슷한 IT나 스타트업 기준), 대신 남녀차별이나 성희롱(3류 창작 소설이 아닌)은 빈발합니다. 젊은 직장 초년생 여성들은 행여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르침을 응용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사실 읽다 보면 꼭 IT나 스타트업 아니라 젊은 직장인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며 저자분 킴 스콧이 여성이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p82에 나온 내용은 꽤 놀랄 만해서 이게 정말 21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일인가 싶었고, 다른 지인이나 사례담에 나온 게 아니라 저자 본인이 직접 겪은(퇴치한...) 사람 이야기라서 또 놀랐습니다. 과연 책제목(원제)을 저리 터프하게 붙인 저자 답다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PC 주입엔 또 반대하는 듯한 입장인데 배려가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겠다는 찐 직장인의 당찬 의지로 보였습니다. 세상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 터프하게 굴 필요는 있죠. 또 미혼 직정 여성에 대한 편견은 세상 어디라도 별다를 게 없구나 확인도 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 초, 행동경제학이란 분야를 개척하여 노벨상을 받았던 댄 카너만의 말이 p128에 인용됩니다. 역시 여기서도 자기객관화, 메타인지 같은 것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자기 성찰, 자기 앞가림 없이 무슨 투사나 된 양 설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남에게 폐가 되는 사람은 아닌지 먼저 점검을 하자는 게 책 4장의 주제입니다. 이 부분은 중간관리자나 남성 직원이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애초에 중증의 망상장애에 빠진 인간은 뭘 읽어도 구제가 안 되니 제외). 자신도 모르게 선입견 편견 발생의 출발점 노릇을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p143에는 장폴 사르트르와의 세기적 사랑으로도 유명한, 현대 페미니즘의 개조 격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이 인용되네요. 어떻게 보면 선입견이 인종차별, 성차별 같은 특정 영역에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무엇보다 낫다 못하다 같은 서열적 가치 판단 자체를 폐기해야 이성적 사고와 감정 작동이 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일부 사이비 여권주의자들의 도착적 행태를 비판할 수 있는 좋은 논거가 되겠죠. 

견제와 균형이라는 게 거창한 헌법 레벨의 권력 구조론에만 통하는 원리가 아니라 작은 조직, 회사 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p220 이하에 펼쳐지는 논의는 저자가 자신의 회사에서 직접 겪고 검증을 거친 구체적인 사례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읽으면서 아 이런 경우가 있겠구나 하며 몰입하고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몇 해 전 한국 전체에 큰 충격을 준 여군 성추행 사건을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게, 피해자가 그토록 애착을 갖고 존중하며 평생 직장으로 삼고 몸담으려 했던 그 조직, 상관이 그런 소중한 믿음을 산산조각내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해당 조직을 나와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마음 자체를 못 먹게 되죠. p313에 인용되는 제니퍼 프리드가 코인한 "조직적 배신"이란 현상은, 개인의 피해가 그저 개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런 애착과 리스펙트를 완전히 잃은 성원들로부터 조직 전체에까지 타격이 번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p502 후주 18번에 나오듯 <The call to courage>라는 책, 아직 한국에 번역되진 않았으나 원서를 전에 봤던 독자로서 꼭 읽어볼 만하다고 추천합니다. 

동호회적 경영, 무의식적 배제... 배경은 실리콘밸리, 주역 중 하나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성 관리직" 샐리인 p454 이하의 에피소드는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합니다. 그나마 합리주의가 지배한다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이런저런 한국의 작은 기업이라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지 눈에 선합니다. MZ세대라면 이런 명백한 비위를 참지 말아야 합니다. 왜? 무엇보다 내가 몸담은 소중한 직장에서 일이 안 돌아가게 하는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아웃!"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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