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언니 시점 - 삐뚤어진 세상, 똑부러지게 산다
김지혜 외 14인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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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그래서 때로는 영악한 계책으로 난관을 빠져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에 호소하기도 하며, 때로는 대담한 배짱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합니다. 힘든 사회에서 그 나름 터득한 지혜에 대해 여러 당찬 여성들이 털어놓는 비결을 들어 보면 남자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게 많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 외도 중인 남편들에게 고하나니 들킬 거면 출산 후에 들켜라.(p58)" 홍소영 필자는 실제로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겪은 엄청난 고통담을 털어 놓습니다. 임신 기간 중에 남편들이 외도를 하기도 한다는 속설 같은 건 해당 부정행위를 결코 합리화할 명분이 못 됩니다. 산모가 이런 충격을 받았으니 출산도 순탄치 못했고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리원에서 미역국 냄새만 맡아도 토했다고 하는데 임신이나 출산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는 일인데다 정신적으로 그런 충격을 겪기까지 했으니... 저는 처음에 저 문장을 "외도 중인 아내들에게 고하니 제발 아이 하나 낳고 들켜도 들켜라."로, 정반대로 읽었습니다. 제 생각이 썩었나 봅니다. 

"당신 딸이 제 아이의 앞길을 망쳤어요.(p65)" oo이란 남성이 갓난아기의 아빠인 듯한데, 그 부모 되는 분이 여성의 양친에게 저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은주 필자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책에 나오는 대로 정말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선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쩜 저렇게 자기중심적일 수 있는지, 본인이 남에게 끼친 피해는 전혀 생각 않는 건지, 이런 사람들은 꼭 보면 어디 다른 데서 얻어터지고서 엉뚱한 데다 분풀이를 하려 들더라구요. 눈물을 흘리는 건 필자(여성의 이모)이지 남친(즉 애 아빠)이 아닌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삶에는 어느 정도 지침(인디케이터)이라는 게 있어야 합니다(p118). 아무리 소신이 강하고 마이웨이 스타일이라 해도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뷰렛 테스트, 베네딕트 시약... 외국에서 공부한 젊은 여성들(놀랍게도 필자의 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끝에, 이제는 적지 않은 연령의 필자도 새삼 어떤 불합리한 경계를 그들(?)과 자신 사이에 그어 왔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각성은 반갑고 놀랍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것입니다. 한숙 필자님 용기가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입니다.  

길에서 도를 아냐는 질문을 들으면 대개 뿌리치고 내 갈 길을 가게 마련이며 애초에 기억에 이런 걸 담아 두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김소애 필자님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어느 분의 말솜씨와 논리가 대단히 정연하며(!) 묻는 질문에 척척 대답까지 하는 걸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길에서 저런 분 만났을 때 이렇게 하자는 게 아니고, 우리가 무작정 남의 말에 귀를 닫을 권리까지는 없지 않냐는 생각인 듯하고 여기까지는 저도 동의가 되었습니다. 물론 결론은 "단돈 오천원으로는 안 됩니다!"였고 거기서 그분의 진정성이란 바닥을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우습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지만 이  필자님은 그날 당일 신출내기 멤버 한 사람을 구했고, 한참 뒤 비슷한 사이비 종교에 빠졌던 남자친구(이 사건과는 직접 관계 없음)의 진로도 일단은 구했습니다. 이게 바로 분별력(p166)의 힘이란 거죠.  

"결론은 버킹검이다(p189)." 이 드립을 알아 들으려면 나이가 최소 40대 중반은 되어야 할 듯합니다. 이의진 필자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거꾸로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는데 썩은 해골물이 감로주로 맛들여지는 건 다 마음씀에 달린 문제이며 남 눈에 타조라도 내 눈에 기린, 사슴일 수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콩깍지는 때로 내 눈에서 안 떨어지는 게 이롭기까지 합니다.  

읽기 전엔 마음이 무거워질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역시 내공 있는 언니들의 "썰"이 최고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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