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사용법
캐럴 해이 지음, 강수영 옮김 / 인간사랑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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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페미니즘은 공부를 많이 해야 그 본령의 정확한 이해가 가능한 분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값싼 행동주의나 공명심, 혹은 출세지향적 매명만을 동기로 삼은 이들이 판을 치는 통에 본연의 취지가 많이 왜곡되고, 이에 대한 거센 백래시가 무분별하게 일어나서 대립하는 통에 아예 수습불가의 난맥상으로 귀결된 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무엇을 위한 논쟁이요 다툼이었는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하다고나 하겠습니다. 

이 책은 캐럴 해이 교수의 다소 유쾌하고 가벼운 저작이지만 저자 본인부터가 현재 논쟁의 한복판에서 허활약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매 챕터 말미에 달린 많은 주석만 봐도 알 수 있듯 주장이나 개념마다 일일이 출처를 명기(원주)한 진지한 저술인데다가 아직 주제의 본령에 낯설어하는 한국 독자들을 위해 많은 설명까지 붙은(역주), 술술 잘 읽히지만 마냥 쉽게 읽어내려갈 수만은 없는 공붓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도 진화심리학 논의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 되는 요즘입니다. p28을 보면 양성불평등의 기원에 대해 진화심리학 역시 하나의 설명을 제공하는데 저자는 꼼꼼하게도 데이빗 버스 같은 이의 논거를 정확히 인용해 가며, 이들이 생물학적, 사회학적 기원에서 현상을 설명하여 듦을 전제한 후 그 논파의 영점을 조준합니다(^^). 박학다식하고 영민한 저자의 책은 이래서 재미있습니다. 그 주장의 방향성과 결론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논쟁에 있어서는 일단 자신이 공격하려는 진영이 정확히 무엇을 주장하는지를 알고 난 후 공박이 이어져도 이어져야 하니 말입니다. 똑똑한 이는 반박이건 논파건 재치있으면서도 유효하게 이끌어가기에 (소속 진영에 무관하게) 보는 이들마저 유쾌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빌 - 힐러리 클린턴 부부의 등장 이후 이른바 문화투쟁이 격화되어 좌우 양 진영의 갈등상이 화해 불가능의 국면까지 치달은 판에, 2010년대 들어서는 트럼프 같은 인사들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까지를 얻게 되어 이제 이 싸움의 종착점이 어디가 될지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이 책에도 트럼프나 마이크 펜스 같은 인물들이 자주 인용되며 적기(eneny flag)의 좌표를 더욱 선명히 잡습니다. p13의 펜스 아저씨 운운은 단순히 정치인 이름의 거명이 아니라 이른바 "펜스 룰"로 불리는, 반대 진영으로부터의 거센 백래시를 상징하는 주장(원칙)을 신랄히 비꼬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미투라든가 이제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페미니즘 용어, 사건, 개념들은 이 책 속에서 더 쉽게, 더 정확하게 풀어져 설명되며,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지난 세기 활발히 저술, 행동한 페미니즘의 시조새도 자주 등장하는 등 읽디 보면 뭔가 사상의 근본이 잡혀 가는 느낌입니다. 섹스, 강간, 포르노그래피 등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선명하고 정통적인 관점을 유지하되, 적대적일 수 있는 독자들에게조차  충분한 공감, 적어도 반대의 유보를 끌어낼 만큼 지적이고 꼼꼼하게 논의를 전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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