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 - 김유정 단편선 한국현대문학전집 (현대문학) 8
김유정 지음, 김미현 엮음 / 현대문학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봄•봄> 말고도 김유정의 단편 16작이 같이 나옵니다. 우리는 김유정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 실린 작품 정도는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그를 논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동백꽃>을 처음 읽은 건 중1때였는데 월간 학습지의 부록에 전문이 실려서였습니다. 마지막에 점순이가 주인공과 함께 넘어질 때 저는 청소년용 읽을거리라서 몇몇 문장들이 삭제되었겠다고 여겼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이처럼 적절하게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선택과 센스 역시 빼어난 필력의 소치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봄•봄>은 표제작이기도 하고 역시 김유정의 해학과 특유의 미학이 가장 잘 구현된 대표작일 듯합니다. 무엇보다, 현대 독자들이 읽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순박한 주인공만 모를 뿐 지금 그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었으며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두가 다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점순이가 자신의 어머니와 "에그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라며 주인공을 구타하는 장면은 주인공의 황당해하는 모습과 함께 너무도 우습습니다. 

나무위키 같은 데 보면 이때 점순이가 주인공을 배신했다고 하는데, 그건 그야말로 어리석은 주인공 입장에서나 그리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점순이가 처음에 주인공과 살짝 만나 반란을 사주한 것도 맞고, 그 사주에 주인공이 과하게 호응하여 장인을 고자로 만들 뻔한 걸 보고 딸 입장에서 급하게 구조한 것도 맞습니다. 두 행동과 그에 깔린 심리는 전혀 모순된 게 아니며, 이런 모순 아닌 모순이 빚는 해학 때문에 우리 독자가 크게 웃을 수 있습니다. 점순이나 주인공이나 나아가 그 장인 될 사람이나 모두 당장만 생각하는 단순하고 순박한 사람들이라서 이런 반응이 가능합니다. 

장인 될 사람도 약간 모자란 젊은이를 이후 무한 반복 패턴으로 부려먹는다, 뭐 이렇게만 새길 것도 아닙니다. 아마도 터진 머리를 간호해 줄 때 이번 추수 후엔 반드시 장가 보내 주겠다고 한 건 적어도 그 순간엔 진심이 아니었겠나,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아 물론 그 진심은 시간이 지나면 다른 진심에 의해 얼마든지 번복이 가능합니다. 적어도 어떤 그랜드플랜에 의해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속이는 건 아닐 뿐.  

<봄•봄>은 21세기 들어 HD로 KBS에서 단막극으로 만들어졌는데 배경이 일제 강점기 어느 시골이 아니라 우리 시대 제주도이며 점순이나 주인공이나 제법 큰 젊은이들입니다. 점순이는 키가 작은 걸로 유명한데 여기서는 늘씬하며 이름도 점순이가 아닙니다. 후반까지 극을 찬찬히 보면 장인 될 분과 그 아내야말로 수십 년 전 머슴(주인공)과 점순이였던 커플임을 알 수 있으며 이걸 알아야 왜 나이도 지긋하신 저 남편이 아내한테 꼼짝도 못하고 쥐여사는지 이해가 가능합니다. 처음 극을 보면 아니 왜 나이도 많은 아저씨가 젊은 놈한테 저런 대접을 받나, 혹시 남편, 가장이 아니라 늙은 머슴 비슷한 처지인가 갸우뚱해지는데 이런 느낌도 아주 틀린 건 아니며 다분히 각색자의 의도가 그러했던 겁니다. 

또 왜 주인공을 그렇게 챙기며 (착취를 하기는커녕) 용기를 잃지 말고 자기 딸한테 꼭 청혼하라는 의도로 증서까지 받았는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젊은이한테서 자신의 젊었을 때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도와 주기만 하면 자존감이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겠으므로 스스로 해 내는 자립의 성취를 도우려고 그렇게까지 속 깊은 배려를 하는 것이죠.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우며, 사실 김유정의 이 원작부터가 대단한 구조를 지녔기에 이런 해석까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장인 역은 박근형씨가 맡았는데 머슴한테 주인집딸이 먼저 대시할 정도면 적어도 젊었을 때 인물은 엄청 훤칠했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도 아주 적절한 캐스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