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불 - 김동리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3
김동리 지음, 이동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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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단편이라기보다 중편에 가까우며, 한때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명작입니다. 객관적인 평가가 그러하나, 개인적으로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며 너무도 비관적이고 극단적인 상황 설정이 눈에 거슬립니다. 이 작뿐 아니라 같은 작가의 <바위>도 비슷하게 봅니다.

소신공양은 실제로 오래전부터 있었던 불교 전통인데 이 작이 1961년에 발표되었고 베트남 승려 석광덕의 일이 1963년에 있었으나 두 일 사이의 어떤 연관은 없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산 채로 자신의 몸을 태우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열반에 도달하는 건 확실히 불가능에 가까운 경지이며, 만약 도중에 고통을 표현한다거나 하면 이는 수양이 부족했다는 뜻이므로 대형 참사만 빚을 뿐 아니 시도함만도 못하게 됩니다. 태운다는 이벤트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몸을 산 채로 태운다는 이벤트도 자극적이지만 소설 액자 속에 펼쳐지는 사건도 매우 엽기적입니다. 한 여인이 재가한 후 전처 소생들을 학대하다 마침내 독살을 시도하고 이를 감지한 만적(그 여인의 아들)이 살인을 막으며, 이후 집안에서 쫓겨나다시피한 전처 소생은 거지가 되어 떠돌다 나병에 걸리며 주인공 역시 집을 나와 중이 되었는데 나중에서야 이들을 조우하고 소신공양을 감행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김동리는 꽤나 먼 거리를 두고 관찰하거나 심지어 경멸, 적대시하면서도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작품 속에서 다루었던 편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만적은 회개의 기미가 안 보이는 그 어미를 대신해서 자신이 죽는 건데(성불이라는 다음 단계는 일단 차치하고, 이것이 소신공양의 일차 동기입니다) 누구의 죄를 대신해서 갚는다는 발상부터가 다분히 기독교적입니다.

다만 액자 밖의 주인공이 지금 이 사연을 자신의 드라마틱한 인생 한 단계와 결부시키기엔 너무도 속물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됨이며, 그래서 액자와 액자 안이 서로 너무 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비극적인 사건과 그에 따르는 위인의 한없이 고상한 결단을 진행시킴에도 불구하고 문체가 너무도 드라이해서 정작 이를 전달하는 사람이 거룩한 행동과 사건에 별반 공감을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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