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답하다 이어령 대화록 1
이어령 지음, 김태완 엮음 / 열림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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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은 해방 후 우리 한국의 문화사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신 거인입니다. 불행하게도 그의 유작이 된 이 책에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이, 어떤 태도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할지 선생이 담담한 어조로 표현한 바가 세세히, 그러면서도 엄숙하고 장중한 필치로 잘 나와 있습니다. 


"종교란 무엇인가요?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요?" 이에 대해 몇 세기 전 프랑스의 수학자 파스칼은 대단히 실용적인 이유를 들며 "믿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 적 있고, 1990년 코폴라의 영화 <대부 3>에서 어느 추기경이 "당신은 실용적인 사람인데, 그냥 해 보시는 게 어떻소?"라는 제안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이어령 선생은 "한국에서 이병철 회장만큼 크게 기업으로 성공한 사람이 없는데, 그 역시도 같은 결론이었다"고 합니다. 또 선생은 "무신론자라고 해도, 인간이 신을 만들어낼 어떤 필요성 같은 건 인정하기도 한다"는 말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유의할 건, 선생이 말년에 이르러 <지성에서 영성으로> 같은 책을 펴낼 정도로 신앙에 깊이 천착했지만, 우리 독자들더러는 그리 강한 어조로 권하지는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저 제안하는 정도인 거죠. 이 대목에서도 선생 특유의 온화하고 무리하지 않는 성정이 잘 드러납니다. 


"지성이란, 낙타냐 바늘이냐를 따지다가 정작 본질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고 선생은 말합니다. 뭐 불교에서 말하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는 것과 뜻이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경계헤야 할 건, 디테일을 모르고 섣불리 독단과 독선으로 싸여 아무 근거도 없는 결론을 함부로 내리곤 한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근거 없이 "이것이 본질이다!"라고 단정하고 강요하는 태도야말로 지성과 영성 모두를 파괴하는 위험한 사고이자 행동입니다. 다만 일생을 두고,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명석한 두뇌를 도구삼아 인문학의 영역에서 여러 흥미로운 결론을 내어 주신 선생이, 말년에 이르러 그 지성적인 추종자, 독자들이 다소 놀랄 만한 방식으로 깊은 신앙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선생은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가 나보다 두 살이 많다"고 농담을 건네면서 이런 문화의 상징들이 인간에게 어떤 구실을 하는지 생각해 보자고 합니다. "삼총사"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미키와 타잔, 그리고 킹콩 세 캐릭터를 말합니다. 대공황의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나왔다. 이제 그곳을 다시 돌아다보자"는 욕구, 의도 하에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또 열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생이 이 이야기를 구태여 꺼내는 이유는 뜻하지 않게 감금 생활을 하는 중인 현재의 코로나 시국을 환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삼라 만상에 이처럼 존재 이유가 따로 있는데 어째서 세상의 창조와 지속에 신의 섭리 같은 게 따로 존재하지 않겠는가를 다시 묻습니다. 


이 책에 나온 24개의 질문은 예전에 고 이병철 회장의 여러 질문에 대해 가톨릭 신부들이 그 나름 제공한 해답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선생의 입장과 거의 관계 없어 보이는 "교황의 무류성" 등에 대한 해답이 나오기도 하는 거죠. 선생은 믿음의 줄기가 그쪽이 아니므로 교황의 무류에 대해서 애초에 답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본질과 현상, 수단과 목적을 제발 "분할(p178)"하여 보자는 답을 정성들여 꺼냅니다. 이 앞에,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아주 협소하게 알아듣는) 니고데모를 안타깝게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를 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선생처럼 머리가 명철하신 분이, 우리 평범한 독자가 그의 말을 혹 오해하여 이런저런 난처한 질문을 던져 오면 얼마나 난감하고 답답하셨겠습니까. 선생님의 영면을 기원하며, 우리 독자들도 속물적인 선입견과 착각을 제발 버리고 어린이와 같은 초심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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