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식당 3 : 약속 식당 특서 청소년문학 25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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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야속한 건, 어차피 필멸의(mortal) 존재일 뿐인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게 새삼스러워서가 아니라, 그간 간직해 왔던 기억과 애착을 다 털고 가야 한다는 그 사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100년을 살아도, 어디 무인도 같은 데에서 아무리 호화로운 의식(衣食)을 소비하며 살았어도, 그 행복한 기억을 공유할 다른 상대가 없이 혼자 살았다면, 백 년 정도라면 그게 지겨워서라도 가야 할 때 별 미련이 남지 않을 것입니다. 주관적으로 미련이 남는다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사정일 뿐 남들이 딱히 공감을 해 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설이와 채우처럼, 어린 나이에 온갖 애틋한 감정을 다 쌓고 지냈다면 그 어린 나이에 이루지 못한 관계와 감정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제3자가 보기에도 말입니다. 이렇게 아까운 나이에 죽는 것도 아깝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어디서 결실을 따로 맺어도 맺어야 마땅하겠는데.... 미국 영화 중에서도 로다쥬가 나오는 <알렉스 두 번 죽다(Chances are)>같은 게 이런 내용이죠. 한 사람은 전생의 기억을 갖고 다시 태어나며,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한 비극... 혹은 이병헌 주연의 한국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도 크게 봐서 이 범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베스트셀러의 전작을 미처 읽지 못해서 처음에는 왜 주인공 이름이 남자 같은 채우일까(였을까) 생각했는데 남자였으니까 이름이 저런 게 당연했네요. 채우는 식당 아줌마로 다시 태어나고.... 그러나 설이는 아직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기억은 (만호의 룰에 따르면)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짜장면 열 그릇을 먹었다는 왕 원장(이 동네 남자 미용사)일까? (지금은) 키 160cm 정도에 70kg이 넘어 보이는 아줌마인 채우는,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기에 더욱 조급합니다. 


이 아주머니도 살아 온 세월이 있을 텐데 왜 하필 지금 자신이 전생에 채우였으며 이제 설이를 만나 "파감 로맨스"를 이뤄야 하는 미션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을까요? 앞서 말한 영화 <알렉스...>는 어려서부터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으니 일생을 잘 조절해가며 전생에 못 이룬 사랑을 이룰지 안 이룰지 조절할 수 있었으나, 약속식당 아줌마는 그렇지 못합니다. 갑자기 아줌마가 되어서(채우의 영혼 입장에서는 그렇죠), 이제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막 재면서 동시에 설이도 만나야 합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며 (겉모습은 중년 아줌마지만 영혼의 나이는 어린) 채우가 기특했던 건, 설이가 지금 이 생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상관 없이 설이를 만나 "파감 로맨스"를 이루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난 생은 고사하고 이번 생의 로맨스조차도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옳았을 아사코"를 만나 행여 (그녀가 아닌) 내 감정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만나지를 않습니다. 내가 기대했던 설이, 아니 아사코가 아니면 (그녀가 아닌) 내가 얼마나 실망할까 그게 두려워서이죠. 그러나 채우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생의 내 자원을 다 써가며 그녀 설이를 기어이 만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생에 나만의 설이를 갖고 살아갈까요? 아니면 이미 만났는데 서서히 감가상각을 해 가며 사는 걸까요? 이기적이고 동물적으로 원초적인 욕망과 이기심만 충족한 채 막상 "설이"가 없는 생이라면 당장 마감한다 해도 별반 가치 있는 생 같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줌마처럼 어느 순간(자의가 아니겠으나) 나의 설이가 있었음을 깨닫고 그 남은 시간 동안 만남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면 얼마 안 남은 생일망정 매 순간이 보석처럼 빛날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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