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가 사랑을 의심할 때 - 관계 번아웃에 빠진 커플을 위한 실천 뇌 과학
다니엘라 베른하르트 지음, 추미란 옮김 / 불광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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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건 혹 그 사랑이 잘못되었을 경우(그런 일이 행여 없어야 하겠지만)의 부작용도 부작용이지만 사랑을 한창 진행 중일 좋을 때도 문제입니다. 이 책 p26을 보면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를 인용하여 "단기 뇌 손상 상태"라 규정하는 말도 나옵니다. 또 "사랑에 빠지다"는 뜻의 독일어 verliebt 역시 그 비분리전철인 ver-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뜻임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laufen은 역주에 나온 대로 길을 가다라는 뜻이지만, run, 즉 뛰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제목인 라 트라비아타("춘희")도 탈선한 여인이라는 뜻이 되죠. 여튼 무엇인가 강렬한 감정에 빠진다는 건 그게 당사자에게 아무리 쾌감을 주어도 일단 "상궤(常軌)"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랑이 잘못 접어드는 단계라도 된다면, 당사자는 정말 조심해야만 하겠죠. 


보통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을 쓰는데 이걸 두고 저자는 "상대를 미화했던 엔도르핀이라는 안개가 걷힌 상태에서 보이는 그 존재"는 이제 투박하기 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제 실체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상대와는 그럼 과감히 관계를 접기라도 해야 마땅할까요? 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아주 실용적인 관점에서 시작하고 최대한 상대나 나나 대미지를 줄이는 관계를 어떻게 만들지를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책에는 여러 리스트가 있습니다. "상대 비판" "자기 비판" "바람직한 관계" 이런 툴(tool)들은 그와 나와의 관계가 어디서 어떻게 손상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살려볼 시도를 할 지점이 남았는지, 아니면 정말 당장 kill해야 할 만큼 망했는지(?)를 점검해 보게 합니다. 현 상태가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는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진단하여야 하며, 그저 감정적으로 판단하거나 괜한 미련으로 어떤 여지를 남기고 어쩌구 할 일이 아닙니다.


책 p45에서는 직업적 번아웃이란 상태의 열두 단계를 제시합니다. 1) 자신을 증명해 보고 싶은 갈망을 느낀다... 에서 9) 주변 세상은 물론 자신에 대한 관심도 사라진다 10) 공허하다 11) 우울하다 12) 무너진다의 12단계가 나오는데, 공감이 가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직업적 번아웃이라고 하니까 무슨 직장에서 겪곤 하는 번아웃(이것도 물론 심각하고, 또 널리 퍼진 증상입니다만)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사람과 겪곤 하는 관계의 번아웃입니다. 매번 이런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직업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거죠.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사랑하는 대상에게 무엇을 열렬히 증명하려는 마음이, 역설적이게도 번아웃을 더 이른 시간 안에 가져온다"는 분석입니다. 


우리 인간은 여러 욕구를 가집니다. 많이 놀고 많이 먹고 많이 자는 욕구 말고도, 매슬로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높은 랭크에 자리합니다. 문명 사회가 발전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인정 욕구를 근본 동인으로 삼고 노력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직 문화에 강한 정도로 동화되고 싶어하며 업적 숭배 전통이 강한 독일에서 번아웃 환자가 유독 많죠. 책에서는 또한 번아웃 잠재성을 가진 이들을 따로 구분합니다. 왠지 이 일이나 관계가 실패할 듯한 느낌이 들 때(사람인 이상 이런 느낌은 반드시 옵니다) 이런 사람들은 추가로 일을 더 떠맡습니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으나, 그저 평균 정도인 능력자라면 추가로 맡은 이 일이 반드시 성공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 경우 일의 좌절은 빠른 번아웃을 가져오고, 또 일을 맡는 과정에서 욕구의 추가 억압이 발생하였으므로 이것이 따로 문제가 됩니다. 


일단 관계를 더 알차게 가꿔 가고 싶다면 명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첫째 충고를 삼가야 합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유가 명쾌한데 "그 충고를 듣는 상대를 '작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둘째 원칙으로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십 수 년 동안 살아 왔는데 각각의 원칙을 만들지 않고 살았을 리 없습니다. 이 원칙은 자신에게야 절대적이지만, 상대방에게 당연히 그럴 리는 없습니다. 물론 정말로 상대를 존중한다면 이런 원칙을 상대가 끄집어들기 전 먼저 존중해 주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그러지 않았다 해도, 지레 원칙을 끌고 나와 "왜 이것을 지키지 않냐?"며 따지는 건 그 관계보다 원칙을 더 중시한다는 선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그 관계는 원칙 아래에 놓이고, 얼마 안 가 무너지지 않을까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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