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지배한 여인들 - 천하는 황제가 다스리고, 황제는 여인이 지배한다
시앙쓰 지음, 강성애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예전에 많이들 하던 말 중에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이며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란 게 있었습니다. 이 말이 일반적으로 타당하고 아니고를 떠나 그 레토릭이 재미있는 건 사실이며, 또 적어도 이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 중 상당수는 그런 신념으로 살았을 터입니다. 그 쟁쟁한 여걸들, 최소한 정치적으로 대단한 수완을 자랑했을 여성들의 족적에 대해 살펴 보는 건 무척 재미있는 체험입니다. 


이 책은 또한, 개인적으로 제가 책좋사 카페에 가입하기도 전인 2012년 이벤트에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카페에도 회원님들이 쓰신 여러 멋진 서평들이 아직 남아 있죠. 나의 독후감과 다른 분들의 소감을 비교 대조하는 건 그 자체로도 재미있으니 이 책을 읽는 의의도 두 배가 된 셈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책을 대하는 느낌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혹시 그새 변한 시대 분위기가 감지되는지 살피는 것도 가외의 재미입니다. 


여후, 이름이 '치"였던 그녀는 남편 유계 못지 않게 대단한 정치적 감각과 배짱을 지녔던 걸물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기질이 드센 여인이, 남편한테만큼은 결코 성격을 내세우지 않고 고분고분 굴거나 그 기색을 미리 살펴 자세를 낮춘 것도 특이한데, 남편이라서가 아니라 이 세상 천지에 자신의 권력의지와 수완을 능가할 자가 바로 이 남편이라는 작자 외에는 결코 있을 수 없음을 깨달은 소치입니다. 이런 유형의 여성 중에는 그저 만만한 자를 남편으로 골라잡아 일생을 두고 스트레스 해소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는데, 여치는 그 역시 운명이었는지 일개 시골 백수 건달에 불과했던 유계의 그릇을 한눈에 알아 보고 다른 시시한 남자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게 또 특이합니다. 


여느 남성 권력자, 군벌 지도자를 훨씬 능가했던 수완의 소유자였으나 그 남편에게만은 굽힐 줄 알고 정치적 실리를 취했던 그녀를 "황제를 지배한 여인"의 범주에 넣는 건 다소 모순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통해 세상을 간접 지배한 적은 없으나 남편 사후 자신이 직접 나서 천하를 떨게 하며 정치판을 휘잡았습니다. 아무도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마천은 그녀를 직접 본기(本紀)의 주제로 삼아 거의 황제들과 동렬에 놓았습니다. 


무미는 당태종의 후궁으로 출발했으나 흉하게도 그 아들 고종의 비로 자리를 차지하여 고종 사후 천하를 제패한 여걸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알듯 수, 당은 관롱집단의 손에 의해 창업되었으며 이 관롱집단이란 북위의 건국 주체였던 선비족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니 호풍(胡豊)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당(唐) 제국에서 이런 불편한 풍습이 용인되었던 게 그리 이상하지 않으며, 이후 송대에 저술된 사서에서는 한결같이 이 추한 풍습을 오랑캐의 후진성 탓으로 돌리고들 있습니다. 한(漢), 진(晉)이 망한 후 들어선 오호십육국 제체가 길긴 길었나 보다 하고 여길 수도 있지만 아직 미숙하고 불완전하던 유교 관습의 허점을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재연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남풍의 경우, 무측천이 괜히 욕 먹는 것처럼 어쩌면 여성 지도자의 유능함이 일일이 왜곡되어 받아들여졌던 당시의 세태를 방증하는 사례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가남풍 관련하여 제기되었던 여러 스캔들이나 루머보다는, 그 부친인 가충의 악행에 보다 더 큰 관심이 쏠려야 마땅합니다. 가충은 위의 조모를 시역하게 한 간접정범인데, 교묘한 술책을 부려 암살하거나 퇴위를 시킨 게 아니라 마치 일본 낭인이 민후를 시해했듯 과감한 군사 행동을 통해 금상을 죽인 패덕으로 악명 높습니다. 그 딸 가남풍은 황후의 자리에서, 지적 능력이 극히 부족했던 사마충을 잘 보좌한 지도자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가충은 이름을 充으로 쓰고, 그 사위인 사마충은 衷이라 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