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여씨향약언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집부 엮음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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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씨향약 자체가 송대(宋代)의 한문책인데 이를 그때로부터 오백 년이 지난 중종 연간에 언해(諺解)한 것이 <여씨향약언해>이며, 이게 언해본(한글본)이라고는 하나 이미 16세기의 한국어와 현대 우리말이 통역이 필요할 만큼 큰 변천을 겪었으므로 현대 한국어로 다시 쉽게 해설한 책이 필요하합니다. 그러니 이 책은 삼중의 통변을 거친 셈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주자증손여씨향약언해>입니다. 원래 여씨들은 주자보다 앞선 시대에 살며 향약을 정리한 사람들이었고, 이를 주희가 좋게 보아 더 체계를 정리한 책이 <주자증손여씨향약>입니다. 여기서 증손이라 함은 손자의 아들인 증손자(曾孫子)가 아니고, 증손(增損)입니다. 더할 걸 더하고 뺄 걸 뺐다는 소리니 가감(加減)과도 통합니다. 쉽게 말해 편집입니다. 여씨는 그저 여씨일 뿐인데 주희는 주자로 존칭하는 게 눈에 띕니다. 


여씨향약언해는 현재 두 종류의 현대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이 책 2012년판이며, 다른 하나는 1984년에 단국대학교에서 총서 기획의 일환으로 펴낸 것입니다. 1980년대에 나온 책만 해도 이제는 그 어감과 어법이 21세기와 꽤 차이 나는 걸 느낍니다. 그러니 이런 기획은 주기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죠.


최만리 같은 세종 연간의 유학자는 세종의 한글 반포, 실시 움직임에 반대한 적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21기 15주차에 정인택 저 <최만리 상소문 해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도 했습니다. 최만리는 진서인 한문 외애 다른 문자가 널리 통용되어 정제되지 않은 정보가 경솔하게 옮아가며 갖은 사회 병폐와 국가 기강 문란을 초래할 것을 우려했으나, 그로부터 백여년이 지나 정작 사림파가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완전 장악하게 되자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에게도 유교 표준 질서를 효과적으로 주입시킬 필요가 생긴 거죠. 이런 책도 그런 사회 분위기의 일환으로 출간되었으니 아이러니라 하겠습니다. 


향촌의 규약은 그저 대략적인 마을 운용의 규칙 같은 게 아니라 개별 가문의 제사 방식이나 어른을 대하는 세세한 예절까지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다 포함합니다. 요즘 간단한 차례상 하나 차리는 것도 어려워하는 이들이 이런 까다롭기 짝이 없는 유교식 범절을 다 익히려면 아마 기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이슬람교의 경전이 하루에 어느 방향으로 몇 시에 절을 몇 번 하라는 것까지 일일이 규정하는 것처럼, 조선의 유교는 마치 생활 종교처럼 개인의 행동 통제를 거쳐 그 의식을 어떤 표준에 길들이려는 의도를 뚜렷이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그 내용을 떠나 16세기 한국어의 여러 국면을 관찰하기 좋은 국어학 자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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