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인 - 상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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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속담에 "나도 살고 남도 살린다(Live and let live)"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나라 말에도 활인지불이라는 게 있어서 결정적인 상황에 척 나타나 궁지에 몰린 이들을 돕는 정의로운 존재를 칭송하는 어구로 삼기도 합니다. 신분제의 족쇄가 엄연하고 특히 천인으로 낙인 찍힌 이들에게는 사회 곳곳에서 숨통을 조이며 활로를 막는 전근대 사회였다고 해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어서 운명적인, 혹은 기묘한 우연이 끼어들어 귀한 목숨을 살리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통쾌하고 감동적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고귀한 행동은 꼭 영웅적인 결단 같은 게 아니라 해도, 그저 소소한 선의에서 비롯했다 쳐도 결과가 심대하며 아마 어디서건 어떤 방법으로건 그 의당한 보상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아니라면 그건 이미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대비원은 동서 두 곳이 있어서 고려 시대부터 급한 환자를 살리고 빈민을 돕는 기능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름도 부처님의 대자대비에서 유래했겠죠. 의료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을 살리는 필수적인 사회 직능인데도 이상하게 고려, 조선 시대에는 중인의 몫이었고 근세 유럽에서도 간호사는 천시되던 게 일반적이었다 하니 모순도 이만저만 모순이 아닙니다. 캐릭터 탄선(p39)은 명문가의 자제라고 나오지만 양홍달은 노비 출신의 어머니를 만나 태생부터 천인이었습니다. 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심지어 더 나은 숙련도와 기여를 하는데도 천대를 받아야 할까요? 부당한 게 당연히 여겨지니 그게 미개한 시대인 겁니다. 여튼 그들이 하는 일이 활인,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에 그 기관은 활인원(p39)으로 불립니다.



재미있는 건, 뜻있는 이들(주로 유생)에게 천하의 패륜이자 역적질로 여겨졌던 이성계의 역성 혁명이, 탄선 같은 이들에게는 은둔과 두문의 계기가 되었으나, 반대로 양홍달 같은 이에게는 그나마 신분 이동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이는 호재였다는 사실입니다. 천인뿐 아니라 많은 빈농들에게도 권문 세가의 대거 몰락과 과전법 실시 등 전제 개혁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변화와 조치, 정책 전환이었습니다. 양홍달(과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방원의 총애를 얻어 역으로 권문세가의 반열에까지 올랐다는 건데 소설 속 사정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천한 신분을 말끔히 씻고 문자 그대로 팔자를 고친 이들이 많았습니다.



여흥 민씨는 조선 말뿐 아니라 고려 시대부터 명문가였고 심지어 신흥 무인 이성계 가문과 처음 혼사를 틀 때에도 여전히 많이 자측으로 무게가 기우는 대단한 벌열이었습니다. 노상직, 윤철중 등을 이방원의 장인이자 원경왕후의 부친인 민제가 가르쳤다고 나오는데(p90), 민제는 요즘 방영되는 KBS 사극 <태종...>에서 사위 이방원도 직접 가르치는 걸로 설정될 만큼 학식이 높은 이였습니다. 하필이면 이방원의 즉위 후 그 처가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이뤄지는 통에 (이미 죽은) 노상직 등에 대한 공초가 더욱 불리하게 진행됩니다. 제아무리 한때 세도가 등등하던 이들도 한번 권세로부터 끈이 떨어지면 이처럼 처량한 신세로 떨어지니 권력이란, 위세란, 이처럼이나 무상하고 무상합니다.



"의술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러나 중례는 소비로부터 받은 제안을 마치 화두처럼 숙고한 끝에 몸을 추스리고 공부를 향한 새로운 마음을 먹습니다(p100). 공부는 누구든지의 진로를 열어 줄 만큼 힘이 있는 옵션이며 본디 셋째여서 대통을 이을 가망이 없던 충녕대군도 <대학연의>를 파고드는 그 학구열과 재능 덕에 부왕에게 주목 받습니다(이 소설 속에서요). "그놈 참 귀도 밝다. 잔소리 말고 어서 활인원으로 가자!(p124)" 충녕은 노대에게 핀잔을 줍니다만 그 마음 속은 사뭇 다릅니다.



몸에 꼭 중병이 들어야 사람이 죽는 게 아니겠으며 이런저런 소소한 잡병이 하나 둘 들어서면 어느 순간부터 육신이 버텨내질 못합니다. 소철의 아내(p165)도 이런저런 압박, 스트레스, 시름으로 반쯤은 벌써 저세상에 발을 들여 놓았었으나 중례의 호침, 환약은 죽을 사람을 살립니다. 말 그대로 활인(活人)의 도(道)입니다.



"활인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살인(殺人)의 길입니까?(p201)" 탄선의 일갈입니다. 실제로도 세종은 천인 장영실을 아끼는 등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죠. 세종(이 소설에서 내내 주상으로 호칭되는)은 어려서 그 부왕(즉 이방원)이 책상을 걷어차며 모후(원경왕후)의 이마에 상처를 입힌 일을 기억합니다. 소설에서는 이 세종이 배우자인 심 왕후와 함께 곡기를 끊는, 즉 단식투쟁을 벌이려 하는 걸로 나오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런 면이 있어야 인간미가 풍기죠.



"마의 따위가 뭘 안다고 함부로 침을 놓은 것이냐!(p243)" 이 질문에 대해선 앞으로 이어질 소설의 모든 뒷이야기에서 차차 답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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