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너의 심장이 멈출 거라 말했다
클로에 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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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뜨겁게, 자신의 모든 걸 하얗게 불태울 만한 사랑을 한 번 해 보고 죽어도 죽어야 세상 구경을 한 보람이 있다고 하겠는데요. 개인적으로 "버킷리스트",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드는 이 말을 구태여 써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원을 곧잘 잊기에 별 거리낌 없기 남들 따라 쓰며 나만의 목록도 작성해 보곤 합니다. 그런데 곁에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면 이 목록을 채우는 작업이 더 각별한 느낌일 듯도 합니다. 물론 실제로 이런 걸 해 본 사람이라야 느낌을 논할 자격이 있겠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내 얼굴 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는데 넌 여자 아냐?(p74)" 남성 독자 입장에서 등장인물의 이런 대사를 읽으면 좀 오글거리지만 여튼 그럴 만한 사람이 그러겠다고 여기고 이야기에 몰입해 나갔습니다. 생각 외로 이 소설은 남성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1인칭 시점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배경이건 간에 사람은 자신과 영혼의 빛깔이 비슷한 사람과 만나 연을 만들어나가는 법입니다. p33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라는 여주의 "중2병 같은 대사(원문 그대로입니다)가 나옵니다. 제 느낌으로는 남자 주인공의 이런저런 대사가 더 그런 듯 싶었지만.



3억(p26) 같은 큰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금하고 또 받아챙기는 게 배경이 한국이라고 해도 정말 이국적인 분위기입니다. 여자는 마치 그레이스 켈리(p33) 같은 외모에 주디라는 이름의 개인비서까지 곁에 둔 30대 여성인데 이런 여성에게 "일단 허우대는 멀쩡하니 합격"이란 말을 듣는 게 남자 입장에서 부럽기도 했습니다. 대체 누구인데 초면인 상대를 두고 전과 조회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둘이서 과연 뭘 하겠다는 건가. 이게 예사롭지 않으니 버킷 리스트가 이 정도면 찐으로 그런 이름이 붙어도 될 만한 내용입니다. "아니지, 어을-티메이틀리(ultimately). 궁극적으로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p81)." 그러나 언제나 신경 쓰이는 건 "중량 초과(p82)"죠. 인생(전체)이건 그 특수한 극점에서의 관계이건 적당한 게 힘든 겁니다.



매 챕터가 시작할 때는 로버트 하인라인이라든가 소크라테스라든가 프리다 칼로라든가 혹은 유명한 영화의 대사라든가에서 선발된 제사(題詞)가 독자를 맞는데 p120의 10장 첫머리는 이 소설의 작가 클로에 윤의 <감사>에서 인용구가 뽑힙니다. "하찮을 것을 주고 빛나는 것을 받아라." 제 생각일 뿐이지만 그 반대가 돼야 좋지 않을까요? 쉽지도 않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짝사랑이란 다 그 나름의 애환이 절절합니다. 이 대목에 나오는 게 정말 짝사랑인지는 살짝 의심이 되지만.



<메멘트 모리>는 유명한 구절이긴 하나 그 제목으로 된 책(p189)이 누구의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개밥이 될 만큼 자유롭다." 살벌하군요. 도로타는 당연히 알겠지만 우리의 미스터 전은 왜 여기서 무지를 드러내는 걸까요. 그렇다고는 하나 두 사람 모두 저 구절에 깊이 공감할 듯은 합니다.



"나는 언제나 여자들과 사랑 비슷한 것을 했지만 사랑이 뭔지 모르는 나로서는 내가 사랑을 했는지(중략) 답을 내릴 수 없었다(p220)" 역시 그 다운 말입니다. p221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중2병 같은 대사"가 여기서 또다시 나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영문을 알았기에 더 이상 그리 들리지는 않습니다.



"때 묻지 않은 건지, 어느 구석이 모자란 건지 (중략) 지나가는 모든 것에 손을 흔들었다(p278)." 이도 저도 아닌, 아마 이제는 달관의 경지에 들어서가 혹 아닐까요? 시한부 인생뿐 아니라 그 어떤 "한정판"도 인간의 눈에 아름답게 보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 사고, 행동은 그처럼이나 이국적인데 배경은 또 이곳이라 더 시크한 장편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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