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화의 무기, 친화력 - 협력을 통해 무리에서 사회로 도약한 이야기
윌리엄 폰 히펠 지음, 김정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발달시킨 맹수들이나 과거에 엄청 덩치를 키우고 지구를 호령한 공룡들을 보면 진화의 종착점은 공격성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같은 종 개체나 타 생명체를 무작정 공격하는 게 능사는 아니며 오히려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생존을 위한 진정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 분석틀을 활용하여 친화력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팩터가 인류의 성공적인 생존, 진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두뇌에게 무엇보다 어려운 도전은, 물체를 다루는 것보다 동료 구성원을 대하는 일이다.(p48)" 사회에서 높은 대접을 받는 성원은 일단은 아마 일을 잘하는 재능을 갖춘 사람일 것입니다. 남들보다 특별히 뛰어난 손재주로 물건을 잘 만들거나 여러 기술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타 구성원으로부터 더 존중을 받고 많은 자원이 기여의 대가로 부여되었을 터입니다. 그런데 문명이 발전할수록, 그런 단순한 기술을 잘 구사하는 사람보다는, 타인(들)의 심리를 잘 읽고 이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할 줄 아는 이가 훨씬 사회적으로 높은 랭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런 걸 정치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의 첫 단계는 바로 친화력입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선거구민, 대중들에게 잘 어필하는 능력을 지닌 이가 자주 선거의 승자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이치 때문입니다. 


"호모 에렉투스 말고도 더 정교한 도구를 만든 종(種)이 있었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계획한 종은 호모 에렉투스가 처음이었다.(p59)" 계획을 세운다는 건 무리들 사이에 일감을 분배한다는 걸 뜻할 수 있고 일감을 분배한다는 건 서로 소통할 능력을 발전시켰다는 뜻도 됩니다. 분업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던 그들은 불을 다룰 줄도 알았고 불로 익힌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신진대사가 더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여 큰 뇌 용량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p99에는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족이 나오는데 이 부족의 이름을 표기할 때는 독특한 음가 때문에 느낌표를 반드시 붙여야 합니다. 개별 소유보다는 공유 질서를 중히 여기는 이 부족에 대해서는 제래드 다이아몬드 박사의 어느 저서에서도 언급된 적 있죠. 또 이 책 저자는 마르크시즘과 소유의 본능이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는지에 대해서도 p97에서 잠시 분석합니다. 


사람은 재산이나 기타 유익한 자원을 독점하려는 욕구도 강하지만 모순되게도 그 반대 욕구 역시 강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에 중요한 정보를 간혹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털어놓는 사람도 있으며 누군가의 질문을 무상으로 해결해 주는 사람도 있는데 이기적인 개인 모델로만 접근하면 이런 현상은 설명이 안 되는 겁니다. 감정과 경험을 공유(p155)하려는 욕구와 본능도 인간은 충분히 지니고 있으며 문제를 잘 푸는 능력 못지 않게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형성하는 능력도 개체의 생존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인간은 이처럼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기에 그를 담당하는 뇌의 부분 역시 그에 알맞게 진화했다는 게 이 책 저자의 입장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기술적인 방법을 먼저 찾는 선택이 있고, 사회적 방법(타인의 도움을 구한다든가)에 먼저 의존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의 part 2에서는 이런 두 방법의 관계와 성질에 대해서 매우 자세한 논의가 이뤄집니다. 사회적 협동이 밀접히 이뤄지는 곳에서는 기술 발전이 더딜 수 있는데 근대 과학의 중요한 발전이라는 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에서 근대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건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저자는 대체로 "아싸"들이 이런 기술적 해법 발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영업 등 사교를 중시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저런 기술적 능력이 대체로 약한 편이라고도 주장합니다.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진실한지 구별해 내는 기술은 자신(개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나 모두 중요합니다. 사람은 남을 속이는 기술도 지니게끔 진화했지만 반대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데도 능숙합니다. 자연계에서 이런 예는 그리 힘들지 않게 발견되기도 합니다. 객관적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생존에 지장이 있을 텐데도 이런 능력까지 발전시키는 쪽으로 인간이 진화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건 적대적 집단 사이에서도 공감과 협력이 일정 수준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종 전체가 공멸하리라는 점입니다. 


그저 경쟁만 팽배한 사회라면 무한 갈등 끝에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웃음과 유머라는 본능도 인간은 발전시켜 왔으며, 때로 다른 종에게까지 친밀감을 느끼며 살인적인 생존 경쟁 분위기를 무마하는 능력이야말로 고도의 진화 기술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반려동물이 크게 늘어난 것도 생활 수준의 향상 못지 않게 이런 심리적 배경도 있을 것입니다. 진화의 방향은 때로 우연이 결정하기도 하나 그 우연이 포착해 준 큰 행운은 우리가 쉽게 흘려보낼 수 없습니다. 친화력은 그게 같은 사람을 향한 것이든 자연과 다른 생물을 향한 것이든 우리의 안온하고 평화로운 생존에 큰 도움이되는 본능임이 분명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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