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 데모크라시 일본 근현대사 4
나리타 류이치 지음, 이규수 옮김 / 어문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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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는 대략 세 구간으로 분류되는데 1) 무단 통치기, 2) 문화 통치, 3) 민족 말살 등이라는 건 우리가 중고교 때 배워서 아는 바입니다. 1)과 2)를 나누는 기준은 3. 1 운동이며 사이토 총독도 스스로 평가하듯 조선인들의 역량이 날로 향상하므로 앞으로 무력 진압 같은 것으로는 저항을 막지 못할 것임을 내다본, 어떤 장기 정책 레벨의 전환이었습니다. 


그 전, 일본은 유럽 대륙에서의 전쟁 추이를 관망하다 승전이 유력한 연합국 측에 가담하였는데 연합국의 반대 진영인 동맹국(Central power)의 중심은 독일이었고 이 독일의 세력권이었던 칭따오 등을 장악해 버립니다. 이어 참칭 황제인 위안 스카이에게 21개조를 내밀어 관철시키는데 이게 1915년의 일입니다. 연합국이 완전한 승리를 거둔 건 1918년, 조약 등으로 패전국의 이권을 갈라먹게 된 건 1919년이며 이때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등이 나옵니다. 이 와중에 조선에서는 3. 1 운동, 중국에서는 5. 4 운동이 발발합니다.


다이쇼는 메이지 덴노의 뒤를 이은 군주의 연호이며 한자로는 大正이라 씁니다. 일부 기록에 보면 다이쇼 시대가 정식으로 그 군주가 대례를 올린 1915년에 시작한다는 말이 있으나 근거가 없고 1912년 즉위 시점을 기점으로 삼는 게 당연히 맞습니다. 다르게 평가할 이유가 없으니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이쇼 시대의 개막이 1920년대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문화통치기와 다이쇼 시대를 동일한 구간으로 오해한 결과입니다. 


21기 31주차에 제가 올린 독후감 중에도 그런 말을 썼지만 이 군주는 행사 도중 청중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틈을 타 연설문을 돌돌 말아 망원경처럼 봤다고 하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그만큼 인지나 판단 능력 쪽에 뭔가 큰 문제가 있었다는 뜻인데 다만 정말로 해당 인물한테 심각한 의학적 기준의 장애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지배층에서 군주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광기, 발병, 정신박약 등으로 핑계를 만들어 섭정을 세우거나 왕위에서 축출하는 건 생각보다 드물지 않습니다. 그의 시대는 군주의 자연사와 함께 막을 내렸지만 저런 평판 악화로 인해 실제로는 진즉부터 권한의 올바른 행사가 어려웠습니다. 묘하게도 현대 일본의 직전 군주인 아키히토 역시 헌법 개정 이슈와 맞물려 조기 퇴위했는데 이 사람이나 저 다이쇼 덴노나 친한 성향이었다는 점이 공통입니다. 


일제 때 만들어진 악법 중 하나가 치안유지법인데 물론 일본 국내에서도 널리 적용되었고 심지어 지금도 그 후신이 있습니다만 저 치안유지법이라는 게 1925년 중반에 제정되었습니다. 다이쇼 덴노가 죽은 건 1926년말이니 이 또한 묘하게도 한 시대의 종막과 악법의 발효가 살짝 겹치는 셈입니다. 치안유지법은 이후 독립 운동가의 탄압에 쓰이니 사실상 문화통치는 1920년대 중반부터 그 가면을 일찍도 벗어던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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