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행정사
김석준 지음 / 부크크(bookk)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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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는 반도에서 단일 민족이 형성되고 오랜 연혁을 이어온 점도 놀랍지만 일찍부터 중앙집권국가가 만들어지고 체계적인 행정이 이뤄진 점도 크게 주목할 만합니다. 이에 비하면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시절을 겪으면서도 제대로 된 중앙권력 통치가 부재했으며 그저 지방 군웅이 할거하는 봉건 사회에 불과했습니다. 임란 후 에도 막부가 들어서서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누렸으나 이 역시 고려, 조선 같은 체계적인 중앙집권식 정부는 아니어서 열도의 백성들은 동질적인 통치를 받은 게 아니었으며 일본이라는 국민의식 형성도 부재했습니다. 


역성혁명이 일어난 후에도 조선의 시스템은 전조인 고려의 그것을 대폭 계승했으며 이색이나 정몽주 등 충신들이 고려 왕실에 대한 절조를 끝내 버리지 않은 것도 그만큼 고려의 행정과 정치가 독자적인 장점, 미덕, 완성도를 갖추었다는 이유가 적지 않습니다. 신진 사대부가 구태여 역성 혁명의 길을 택한 건 북로남왜의 국난을 거치며 노정된 왕씨 왕실의 무능 노정이 한계에 달했으며 권문세가의 부정부패가 상상을 초월했고 마침 대륙에서도 정권 교체가 이뤄져 권력의 거대한 이동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왕씨 조정과 권문세가는 이미 지는 해였던 원조(元朝)에 깊은 연줄을 대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고려가 중세 동아시아사에서 전쟁의 1/4 이상의 분량을 담당하며 수행한 국제적 역할이 무척 컸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현종 연간에 벌어진 귀주 대첩이 특히 초점이 놓일 만한 대사건일 텐데 거란은 이후 한참 뒤 여진에 망하고 서쪽으로 쫓겨가 서요를 세운 후에도 중앙아시아 제 민족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거란을 그 전성기에 상대하여 대회전에서 궤멸을 시킨 고려의 저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란은 송 정벌에 앞서 후방을 편히 하려고 선제적으로 고려릎 침공한 건데 불의의 참패를 당함으로써 이후 대륙 정복은 꿈도 못 꾸게 되었습니다. 만약 병자호란 당시에도 조선이 이런 저력을 보였다면 동아시아사는 명-청-조선의 삼국 정립으로 아마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고려는 송, 요, 금에 대해 형식적으로 사대했으나 대내적으로는 엄연히 황제를 칭했으며 황제를 정점으로 한 세련된 관료제의 작동이 극치를 이룬 성공적인 행정을 만방에 과시헸습니다. 문종, 선종, 숙종 대에 이어진 번영은 이런 확고한 국가이념에 기반한 행정에 크게 힘입었으며 이는 인접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수준이었습니다. 저자는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동시성의 비동시성"을 논하며 같은 시대 존재했던 다른 국가 시스템과 비교하여 고려의 행정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생산적으로 작동했는지 치밀히 논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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