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아리랑 - 항일독립전쟁 유적에서 외치는 광복 70주년의 함성
최범산 지음 / 주류성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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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자들에 대해 우리 후손들이 갖는 존경심에 대해서는 어떤 다른 의견 같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국사 교과서에 무장 독립 투쟁을 다룸에 있어 청산리 대첩, 봉오동 전투 등까지만 고작 다루곤 했었으나 최근에는 연구 결과가 확장되어 이후 시기의 다른 전투들도 널리 취급합니다. 이에는 중국과의 수교 후 이념적 장벽이 상당 정도 해소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추측도 해 봅니다. 


봉오동 청산리 양 전투는 1920년대 초의 일이며 이후 간도 참변 등 일제의 대대적 보복이 있었습니다. 특히 간도 참변은 민간인 학살의 성격이 크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입니다. 독립 운동의 지형은 자유시 참변 이후 큰 변화를 겪었는데, 더군다나 1926년 이후로는 대대적 각성이 일어 민족유일당 운동이 반도 내에서는 물론 만주 일대, 혹은 교민 사회에 널러 퍼졌습니다. 이 영향을 받아 기존의 3대 군정부가 통합 움직임을 겪고 혁신의회(책진회)와 국민회(협의회) 계열로 나뉘었다는 사실도 지난주차, 지지난주차 서평들에서 정리한 적 있습니다. 


1930년대에는 여튼 이런 민족 역량 결집의 효과로 성과가 제법 큰 전투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이 중 몇 가지는 그 순서까지 잘 알아 두어야 한능검이나 공무원 시험 등에서 좋은 성과가 날 수 있을 듯합니다. 물론 공리적으로 무슨 시험 등에서 성과를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런 사항은 후손으로서 잘 알아 두어야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셈이기도 합니다. 


혁신의회-책진회 계열의 한국독립군이 벌인 전투로는 쌍성보 전투, 경박호 전투, 사도하자 전투, 동경성 전투, 대전자령 전투가 있고 지도자는 지청천입니다. 대체로 이 순서까지도 알아둘 필요가 있고, 각 전투의 경과나 장소까지 알면 더욱 좋겠죠.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저런 자료에는 경박호 전투의 연도가 1932로 나온 것도 있으나 오류이며 저 다섯 전투 중 쌍성보 전투만 1932년의 일이고 나머지 넷은 모두 1933년도의 사실입니다. 


반면 국민회-협의회 계열의 조선혁명군이 주도한 전투는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가 있습니다. 또 이는 과거 참의부가 주관한 남만주 일대에서 벌어졌는데 참의부 주류가 혁신의회에 합류했음을 감안하면 다소 아이러니입니다. 조선혁명군은 양세봉 장군 계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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