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미천하니 거리낄 것이 없네 -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김헌식 지음 / 창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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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은 괴승으로 평가됩니다. 그가 걸었던 행보에는 분명 개혁적인 면모가 뚜렷한 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에나 당대에나 그를 마냥 우호적인 평가를 보내는 입장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도 그가 원래 몸담았던 불교 측에서 봐도 그가 이질적인 존재였고, 신진사대부 측에서는 아무리 권문세가를 타파할 필요를 공유했다 하더라도 워낙 신돈이 견지한 입장과 출발점 자체가 현격한 차이가 나다 보니 도저히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저자는 그를 둘러싼 편견,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해서까지 고찰합니다. 이는 그가 승려이면서도 색을 탐했다는 일각의 비판 때문인데, 이 비판이 제법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혹은 반야라는 천민 출신의 여인이 그의 곁에서 행한 역할에 대한 미심쩍인 시선 탓인지, 여튼 프레임이 먹혀 들어 오늘날에까지도 개혁가로서 신돈을 바라보는 데 여전한 장애가 되고 있기는 합니다. 



전민변정도감은 공민왕과 그가 함께 이룬 업적의 상징처럼 평가됩니다. 원래 찰리변위도감이라 하여 충렬왕이 개혁사업으로 그 앞선 시대에 추진하던 기관이 있었습니다. 개혁 군주라고 하면 충렬왕을 대뜸 떠올리기 쉽지 않으나 원 간섭 시기에 최대한 자주를 지키면서 친원 세력과도 싸우던 힘겨운 군주로서 우리가 기억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아무튼 공민왕 시기에 훨씬 앞서서, 이미 충렬왕 시기에도 불법적으로 귀족의 세력 하에 노비로 신세가 떨어진 양민, 또 무고하게 약탈당한 전답이 그처럼 많았다는 건 성찰을 해 보아아 할 일입니다. 원이 오히려 고려에 이처럼 만연한 노예제의 폐단을 빌미로 삼아 내정 간섭을 하고 들었으며, 비록 그 모든 게 위선적 제스처로서 오히려 부패한 부원배를 막후에서 더 키워 주는 결과를 빚었을망정 말입니다. 중국은 티벳을 병합할 때도 이처럼 내부 노예제 등의 악습을 핑계로 삼아 침략을 정당화했습니다.



역사나 문예에서 미화되기 십상이지만 보우 역시 대농장주로서의 면모가 있었고, 이에 반해 신돈은 그저 몸뚱이뿐이었다는 저자의 대조는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우는 오늘날까지도 칭송 받는 고승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는 게 보통입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과연 우왕은 누구의 아들인지 고려사 최대의 미스테리 하나를 집중 조명합니다. 혹 우왕이 정말 신돈의 자식이었다면, 공민왕은 왜 하필 그런 수상쩍은 소생을 데리고 와 후계자로 공포했을까요? 이는 신돈과 공민왕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제대로 알아야 해명할 수 있겠는데, 복잡미묘한 공민왕이라는 통치자의 내면을 시원히 들여다볼 방법이 없는 만큼 참으로 큰 난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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