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 - 하늘의 아들, 현세의 인간
마크 C. 엘리엇 지음, 양휘웅 옮김 / 천지인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건륭제는 강건성세의 마지막 구간을 통치한, 어찌보면 중화제국을 통치한 군주 중 명군으로 꼽히는 마지막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후에 즉위한 청의 황제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거나 대단히 불운한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국내 최초의 건륭제 평전"이라고 합니다. 국내 저자에 의해 쓰이거나, 번역 소개된 건륭제 평전이 이 책 전에는 없었다는 뜻이겠습니다. 둥예쥔이라는 사람이 쓴 <평천하>라는 책이 있긴 했는데 분량도 많고 건륭제 한 사람에 초점을 두어 쓰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자계서 성격이 강한 탓에 아마 평전 취급은 못 받는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더랬습니다.


건륭제 역시 개인적으로 자질이 빼어난 인물이었고, 그 부황 옹정제가 강희제에 의해 후계자로 골라진 것도 손자였던 이 건륭제의 자질이 어려서부터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여튼 그처럼 좋은 기반을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였고, 본인도 소양이 출중하고 통치를 성공적으로 행한 군주였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붕어 후에 제국은 그저 내리막길을 탑니다. 조선도 비슷한 시기에 영정조의 부흥기가 있었고 공교롭게도 이 시기를 다스린 군주들 역시 조부와 손자 관계입니다. 정조가 죽은 후 이상하게도 왕권은 급히 쇠약해지고 급기야 세도가의 손에 맡겨지며, 청나라 역시 서태후라는 변칙적 권력가의 손에 넘어가 부패상을 겪게 됩니다. 


책에서는 만주족 성공의 딜레마를 분석하는데, 3백 년 전의 몽골은 한족의 영토 전부를 최초로 정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를 채 백 년도 영유하지 못하고 도로 북방으로 쫓겨갔습니다. 그에 비해 청조는 성질 사나운 내몽골 정통파 제 부족을 모조리 복속시키고, 수십 년에 걸쳐 중국 전토도 손에 넣은 후 대단히 효과적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부 최고위직에서 만주족은 언제나 다수를 유지했으니, 정복 왕조 중 가장 온전한 의미로 중국을 "정복"하고 "통치"한 왕조는 바로 청조라 하겠으며, 백성들의 살림살이도 전근대 체제 중에서는 청나라 때가 가장 윤택했습니다. 독자인 저 개인적으로는 심지어 마오 통치 하에서도 청조의 수준을 과연 넘었을까 싶습니다. 특히 이 강건성세 기준이라면 말입니다. 


청나라는 그 다스린 영토 역시 역대 중화제국 중 최대였습니다(원나라는 기타 한국들은 제외해야 하니). 이렇게 된 건 이른바 신장 지역을, 이 건륭제 대에 와서야 완전히 손에 넣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이 확보한 강역이라고 해서 이름이 신강이며, 지금도 이 지역의 이름이 신장인 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최근 아프간 정부가 망하고 탈레반이 최종 승자로 부상하면서 신장이 주목 받는 건 그 분리주의 운동이 과연 아프간 정세에 의해 영향을 받겠는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도 있습니다. 왕이 외교부장이 탈레반 지도자를 불러 아프간 영토 안에서 반(反) 중국 동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일대일로가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죠. 


아무튼 신강, 신장이 중국에 편입된 건 건륭제가 티벳 일부와 결탁한 중가르 제국의 무서운 발흥을 제압한 공이 무척 큽니다. 이미 북방 유목 민족은 2대 황제 홍타이지가 다 포섭하거나 평정했겠으나, 이들은 내몽골 족이고 서부의 오이라트, 외몽골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이게 150년이 지나서 드디어 세를 모아 커다란 제국을 형성하기 직전까지 갔던 것입니다. 중가르 혹은 준가르라는 말의 뜻은, 미야와키 준코, 혹은 카미무라 아키라의 연구를, 한국어 위키피디아가 인용, 정리한 바에 의하면, "두르베트 정권에 있어 좌익(=동쪽)을 담당하던 진영의 명칭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오이라트는 전통적으로 서부에 웅거해 왔는데 왜 준가르가 "동쪽"인지 의아하다면 이 부분을 참조하면 되겠습니다. 책에는 "준가르" 어원에 대한 설명이 없으므로 독자인 제가 외부 전거를 따로 살펴 보았습니다. 


중화 제국은 건륭제 대에 와서 비로소 북방 유목 민족에 대한 근심을 완전히 떨칠 수 있었으나(이로부터 수십 년 후 다시 야콥 벡의 도전이 있긴 했지만요) 불과 다음 세기에는 양이(洋夷)의 침노 때문에 제국이 완전히 끝장나기에 이른 건 아이러니입니다. 과연 習皇帝의 통치 연간에 설욕이 가능할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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