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나를 이겨라>에는 작가 성지혜님과 고 박경리 선생 사이의 여러 인연, 또 유명한 문인들의 사연이 나옵니다. 소설의 형식이지만 회고담이나 마찬가지인 듯 보입니다. 박경리 선생뿐 아니라 <등신불>, <무녀도>, <화랑의 후예> 등 훨씬 앞선 시기에 걸작을 남긴 거장 김동리 선생도 등장하며, 거제와 통영이 낳은 위대한 시인인 청마 유치환 선생이라든가 이영도 선생, 교과서에도 작품이 여럿 실린 시조시인 이호우 선생 등 전설적인 문학가들이 두루 언급됩니다(실명 언급은 없으나 "사위분"인 김지하 시인도 아주 잠시 출현). 바로 다음에 나오는 작품에 쓰이기도 한 단어(동음이의어)인데, 유치환 선생은 특히 시 <깃발>에서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란 명 구절로 사랑 받은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영도 선생에 대해서는 "섬섬옥수가 아닌 손"이란 묘사가 특히 기억에 남네요. 작가님은 ㅈ여고 출신이라고 나오며 독자인 저도 개인적으로 진주 출신 지인들이 꽤 되는데(고교 은사님 포함) 하나같이 자부심이 높고 명문교를 나온 엘리트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고장 자체가 교육을 중시하고 문장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뿌리 깊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진주, 통영, 고성 일대가 다 그러하죠. 


작가님이 언니처럼 따른다는 김지연 작가님도 원래 이름이 "명자"이셨으며 성 작가님도 본명인 "명숙(밝을 명이 아니라 숨 명 자라고 나옵니다)" 대신 김시종 선생에게 새 이름 "효장"을 받습니다. 이처럼 젊은 시절에 거장에게 손수 필명을 지어 받은 체험이 정말 큰 영광이었을 듯합니다. 박경리 선생의 <시장과 전장> 창작을 둘러싼 비화도 소개되는데... 이 <나를 이겨라>는 30쪽 남짓 분량입니다만 사연과 인물들이 묵직해서인지 읽으면서 아주 긴 장편처럼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모친이 통영여고 졸업자라서 더 관심 깊게 읽었습니다.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는 이 책의 표제작입니다. 냄새에 관해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연이 있는 화자 새미와 그 딸 토리, 또 남편분 항조, 돈 많은 70대 과부이신 "마님", 이분이 키우는 개 린드버그, 돌아가신 남편 루이 등이 등장합니다. 터키에는 터키석이 없고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으며 새미가 모으는 향수병에는 정작 향수가 없습니다. 왜 컨텐트인 향수는 간혹 버리기까지 하며 병만 모은 컬렉션인지는 작품만 읽어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 있으며 최대한 돌려 말하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주제에 대한 감도 잡힙니다. 수집가들이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발견했으나 현금이 부족할 때 자신의 다른 수집품과 교환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향수는 香水이며 鄕愁가 아니지만. 


오동은 왜 그저 오동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느티는 항상 뒤에 "나무"가 붙어야 하는가. 한남동 회장님 댁에서 정원사를 지낸 기현은 미조 앞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내내 "나를 낳은... 생모"라 지칭하며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대화의 말투라든가 인생에 대한 씁쓸한 관조 어린 그 내용만 보면 인생의 황혼을 벌써 지난 두 분이 나누는 말 같습니다만 사실 두 사람 다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입니다. 미조는 자신이 근무하는 유치원에 일일 강사로 기현을 초빙합니다. 원아들에게 들려 줄 강연치고는 좀 내용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만. 여튼 앞 작품의 새미처럼 미조도 크리스천인지 예루살렘 등 성지 순례 이야기가 또 등장합니다. 맨 앞 작품 <나를 이겨라>에도 민족주의 관련 언급이 자주 나왔는데 여기서도 가상의 원로 목사님 설교를 통해 단 지파와 우리 민족 사이의 연관이 짧게 코멘트됩니다. 두 사람 다 생계가 막막할 뻔한 상황에서 부유한 인척 등의 연줄로 직업을 마련한 사연도 비슷합니다. 서신 교류 말고 몸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어디서 별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지요. 김광섭 시인 作 <저녁에>의 한 구절처럼. 


<청백리의 숨결>에는 오리 이원익, 미수 허목, 그리고 서애 류성룡 세 분 재상의 생애가 화자 류담을 통해 이야기됩니다. 잘 알려진 예송 이야기도 있고, 우암한테 미수가 비상을 처방해 준 이야기 등등 해서 마치 예전 벽초나 월탄의 작품에 구수한 옛 야사가 실린 작품을 읽는 느낌인데... 안현철 박사, 장규호 화백 등 가상의 인물들이 가끔 한 마디씩 거드는 속에 작가의 진짜 의도(?)가 숨어 있는 듯도 하네요. 이처럼 뛰어난 지성인들, 유능한 관료들이 조심스럽게 그 초석을 놓은 나라였기에 조선이 가난할망정 그 시대 다른 나라들을 고려할 때 비교적 태평성대를 누린 건데... 작품 마무리는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는 풍요 예찬"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미우새의 날개는 어디로 갔을까>. 레게머리... 1990년대에 크게 유행한 스타일인데 dreadlock(p146)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이야기는 성경 속의 나실인(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릅니다)까지 미쳐 삼손과 들릴라(데릴라)까지 나옵니다. 지혜가 두개골에 있다, 머리털은 그 알곡이다... 삼손이라고 하면 그저 힘만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개인이나 겨레나 그 생존의 비결은 지혜에 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분(문맥상 심인성 같습니다만), 지성이 약간 미발달한 청소년... 그런데도 분위기는 어둡지 않고 오히려 럭셔리에 가까운 건 저만의 착각인지. 이 작품도 <향수병...>에서처럼 방대한 인문 지식이 수놓아졌습니다.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맨 앞 작품만 빼고 외국인들이 꼭 얼굴을 내밉니다. 인물들은 외국을 자주 다니거나 외국인과 깊이 교류하거나 해서 글로벌한 감성(마인드까지는 모르겠지만)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 남자가 마냥 귀여워>에서는 한국형 미남, 외국에서 두루 통할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품평과 논의 끝에 혼혈아 이슈, 혈육에 대한 보편적인 그리움과 애정 문제까지 차분히 착륙합니다. 다른 작가 같으면 굉장히 심각하게, 그러나 뻔하게 발전할(퇴보할?) 주제인데도 말입니다. 


<결을 향(向)한 단상>에서는 신화인지 기독교 성경인지 아리송한 이야기가 많은 결, 이런 결 저런 결 들을 건드리며 몽환적으로 펼쳐집니다. 번식은 사실 야만적이고 무섭지만 생명에게는 유일한 진리이죠.


"신의 손"은 보통 귀신 같이 골을 잘 잡아내는 축구 골키퍼를 칭송하는 단어인데(반대로 뻔뻔스러운 반칙에 대한 비꼼이거나), 여기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입니다. 에피그래프에 이사야서 49장 일부가 인용되는데... 이 작품은 이 책에 실린 중 저한테는 가장 서사가 뚜렷이 다가왔으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 싶었습니다.  


문학수첩 이덕화 주간이 쓴 권말의 작품해설을 보면 "소설은 어떤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과 관계에 의한 긴장을 유발하는 서사(p265)"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와 비슷하게 "희곡은 의지와 의지 사이 갈등의 집약"이란 정의도 있죠. 그 갈등이라든가 긴장은 그리스 고전에서처럼 영웅들, 혹은 신들 사이에 벌어지는 거창한 것만은 아닙니다. 한 개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작은 망설임이라든가, 기분 상함이라든가, 괜한 젠체함이라든가, 무료하기 짝이 없어서 나 혹은 내 지인의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에 던진 작은 돌 하나가 빚은 소소한 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갈등이고 긴장인데, 때로는 이것이 거대한 역사와 사건과 작은 접점을 빚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작은 개인의 새초롬한 내면으로 별 파문 없이 복귀했다 해도 얼마든지 명작 소설의 멋진 성취가 될 수 있겠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