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의 기적
케리 버넬 지음, 김래경 옮김 / 위니더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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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런 일이 벌어졌었다"고 합의한 이야기라고 해서 언제나 진실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 왜곡이라는 문제도 벌어지는 거고... 더군다나 그런 이야기가 어떤 강한 도덕적 당위를 지니고 있다거나, 그 이야기만 들으면 삶의 의욕과 희망이 샘솟는다거나, 이러면 이 이야기는 이미 사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집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걸 두고 사실과 구별되는 진실이라며 따로 의미를 부여하지만, 이런 건 악용의 가능성이 있기에 권장할 게 아닙니다.


"마블"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은 불과 다섯 살 때 어미곰한테 잡혀가 죽을 뻔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하키 스틱으로 곰을 쳤고, 이 틈을 타 어느 주민("한물간 스토니")이 총을 쏘고 곰에게 겁을 줘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연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브를 희망, 용기,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며 널리 그 이야기를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다섯 살 때의 일이지만 그 일을 겪은 당사자 마브의 기억(지금 7~8년이 흘렀다고 합니다)은 좀 다릅니다. 마브(아마 마빈 정도의 약칭이겠죠)는 그 일 이후로 경이롭다는 "마블"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마치 예전 권투선수였고 최근에 사망 소식이 들린 마빈 해글러가 마블러스라는 이름(나중에는 아예 호적상의 이름으로 바꾸었죠)을 얻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여튼 마브가 몸소 겪은 기억에는 "어떤 여자 아기, 살려는 의지가 강했고 곰보다 더 야생적이었던 아기가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고, 자신은 그 아기를 구하려 들었던 것"뿐입니다. 그러나 엄마를 포함 어떤 어른들도 "아기? 무슨 아기?"라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물론 아무리 애라고 해도 그 아찔하고 강렬한 기억을 어떻게 잊겠냐고 할 수 있지만(또 한국과는 세는 나이도 다르겠지만), 과연 다섯 살의 기억이 그리 믿을 수 있겠는지 조금은 의심이 들었습니다. 또 그 경고문에 나온 세 문장이 다섯 살의 마브에게 과연 그리 의미가 깊이 다가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스쳐가더군요. 여튼 마브, 그 일 이후로 "하키 실력도 엄청 늘었다는(!)" 15세 소년은 여전히 그 아기와 어미곰의 기억을 마음에 품고 지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을 두고 풀어야 할 자신만의 의문과 수수께끼를 가질 수 있습니다만 마브는 그 계기를 매우 드라마틱하게 마련한 셈입니다. 


"곰이야." '내 곰인가?'(p68) 사람은 어렸을 때 품은 의문을 그 일생 동안 해결하려 드는 버릇이 있습니다. 마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자신에게 위협적이었던 그 큰 어미곰보다는 아기와 가까이 있었던 새끼곰이겠지요. "여자애랑 곰이 같이 자랐다면, 둘은 서로를 특별한 마음으로 아끼는 사이일거야.(p73)"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마브 특유의 순수한 마음 아니겠습니까. 어른들은 그저 야생동물을 포획하거나 살상해야 할 위협적 존재로만 보는데 말입니다(물론 현실에서, 곰은 정말 조심해야 할 동물이긴 합니다).


"프로미스가 또 의상을 망가뜨리면 그레타가 산 채로 가죽을 벗길 거야."(p92)


이처럼 이 책은 약간 무서운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고(물론 결론은 감동적이고 모든 문장이 순수한 동심에의 복귀를 강조하는 착한 마음을 담았습니다만), 약간 내용이 좀 많습니다. 위니더북의 기존 어린이책을 생각하신 학부형들은 좀 의외로 여길 만도 합니다. 


마브는 놀랍다는 듯이 말합니다. "여자애가 스케이트를 끝내주게 잘 타는 것 같아요.(p125)" 아빠와 엄마 리언은 카니발 구경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이 시점부터 아들 마브의 일생을 둔 수수께끼에 드디어 동참하는 것 아닌가, 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 느꼈습니다. 


"이름이 왜 튜즈데이에요?" "화요일은 걔 운이 좋은 날이거든."(p135) 하지만 마빈은 벌써 직감합니다. 이 구경이 내 일생을 바꿔 놓겠구나 하고 말이죠. 왜인지 아십니까? 바로 앞의 그 곰 사건도 화요일에 벌어졌으니까요. 


"네가 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잘 알아. 그레타가 곰이랑 너를 너무 가까워지게 놔 뒀지. 그래봤자 동물인데 말이야." 서베스천이 이렇게 책망해도 튜즈데이는 여전히 기가 죽지 않고 대꾸합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우리말로 (번역)된 텍스트가 맥락의 파악에 훨씬 유리한 것 같습니다. 분위기나 인물의 내심도 더 전달이 잘 되고요.


"저건 긴 망토를 입은 여자애 아냐?" (p188) 카, 여기서 마브, 엄마곰 뒤를 여태 따라온 마브는 드디어 누구를 만납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너희 둘을 다 찾았다니 믿을 수 없어."(p190) 

"아니, 우리가 널 찾은 거야."

크.. 역시 OOOO 다운 말입니다.(누군지는 스포라서 가립니다)


드디어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고야 만다... 인생의 영원한 진리입니다. 소설 제목에도 "기적"이 붙었지만, 이 장편소설(생각보다 기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으십시오)은 정말 끝까지 읽은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우리 어른들도 어린 시절의 동심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야, 생에서 얻는 감동과 감격, 뭉클함이 더 잦아지고 많아집니다. 마브의 모험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이런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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