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톨스토이 단편선 처음 만나는 초등 고전 시리즈
김유철.이유진 지음, 민소원 그림 / 미래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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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모두 세 편의 톨스토이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바보 이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두 노인> 등 세 편입니다. 톨스토이 단편선은 이미 국내에 여러 버전이 나와 있고, 이 세 편도 아주 잘 알려진 작품들이라서 내용은 익숙하겠는데, 이 책은 톨스토이를 처음 접하는 어린 독자를 위한 것입니다. 친숙한 컬러 삽화와 쉬운 문장 덕분에 한글만 깨쳤다면 누구나 쉽게 읽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페이지 수가 175니까 생각보다는 두껍다고 느꼈고, 그런데도 세 편만 수록되어서 약간 의아했습니다. 성인이 읽었던 톨스토이 단편은 <코카서스의 포로> 같은 논픽션 비슷한 것만 빼면 대개 길이가 짧았기 때문입니다. 하긴 <바보 이반>은 원래 좀 길었습니다. 다 읽어 보니 약간, 텍스트가 더 자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몇 대목에서 설명이 조금 더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군인 시몬이 돈을 걷으려고 자기 땅으로 갔는데 농부들의 불평을 듣고 나서, 부자 농부인 아버지를 찾아갈 때, 원문에는 그 사이에 설명이 없으나 여기서는 "농장의 물건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픈 아내를 어찌할 수 없었던 시몬(p11)"이라며 더 부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 농장에 농기구, 말, 젖소 등이 없는지 성인 독자도 이해가 안 될 수 있는데 이걸 "시몬의 아내가 씀씀이가 헤퍼서 이런 자본 시설까지도 다 팔아야 했다"고 독자에게 설명을 해 준 것입니다. 앞에 씀씀이가 헤픈 아내에 대한 설정(p10)은 이미 나와 있었으니 이렇게 연결시킬 수도 있겠죠.

또 원문에는 시몬에게 불평을 하는 건 집사 한 사람인데, 이 책에서는 농부 여럿입니다. 이렇게 좀 각색하는 게 어린 독자들이 (집사가 뭔지 왜 그런 직책이 있어야 하는지 추가 지식 없이) 바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으로는 p20에 처음 이반이 등장합니다. 원래는 이반이 청년이긴 하나 제법 나이도 있고 또 생김새도 바보 같아야 맞겠으나 이 삽화에서는 머리도 단정하고 나이도 생각보다 더 어리고 똘똘하게 보입니다^^

사실 이반은 착한 거지 바보가 아닙니다. 악마를 만났을 때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서서 이익을 얻어내는데 악마를 상대로 이처럼 침착하고 현명한 대처를 하는 게 파우스트 박사도 못한 일입니다^^ 하긴, 바보니까 복잡한 생각을 안 하고 그저 내키는 대로 행동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반은 궁지에 몰린 형 시몬과 그의 (귀족 출신) 아내가 아버지와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다시 모욕을 당합니다. "내 아내가 거름 냄새가 나서 너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고 하니 나가서 먹어라." 원문에는 아내가 한 말이 "더러운 농노와 정찬을 할 수 없네요"인데 이건 딱히 냄새 문제라기보다 신분 차이를 강조한 언급으로 보입니다. 이걸 시몬이 다시 동생 이반에게 전한 건 "나쁜 냄새가 난다"인데 거름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튼 이 편이 어린 독자에게 더 잘 이해될 듯합니다. 사실 거름 냄새가 나는데(난다면) 식사를 같이하는 게 뭐 곤란하기도 하겠습니다.

여기서 이반의 대처가 현명한 게, "마침 (고생한) 암말에게 먹이도 주어야 하니 나가서 먹을게요."입니다. 어차피 자신은 해야 할 일도 있고 하니 구태여 형과 형수와 마찰을 안 빚겠다는 태도인데, 사람 사는 세상에서 최소한의 자존심 때문에 구태여 충돌하고 마는 게 보통이죠. 이처럼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건 분명 지혜이지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진짜 바보는 스스로를 필요 없이 괴롭히다 병이 나죠. 원문에는 암말에게 그냥 먹이를 주지 고생했다는 말은 없으나 농사일에 쓰는 말이 고생하는 건 당연하고, 이렇게 쓰면 이반의 착한 마음이 더 드러나서 좋습니다.

두번째 악마가 찾아와 풀밭을 진흙으로 만들어 이반의 일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이반은 바보라서(?) 진이 빠지거나 좌절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하루가 걸리더라도 이 일을 마치고 만다"며 더 의지를 불태웁니다. 불운에 직면했을 때 "이렇게 재수가 없는데 아 일할 맛이 나야 말이지"라며 중도 포기하는 게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이반은 정신적으로 지치질 않습니다.

악마는 이반이 쥔 낫의 날을 땅으로 밀어내어 또 일을 방해하나 이반은 아랑곳않습니다. 원문에는 낫의 끝을 잡고 땅 안으로 보낸다고 나오지만 이 말은 이해하기 좀 어렵고 이 책처럼 해석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때 악마가 하는 말이 "내 손이 잘리더라도..."입니다. 악마도 어지간히 무식한 게, 가망이 없는 일을 구태여 끝을 보려고 저리 힘을 낭비하니 말입니다. 이반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지만.

애써 수확한 농작물이 저장을 잘못해서 썩기라도 하면 정말 난감한 일입니다. 악마는 귀리 더미 안으로 들어가 몸에 열을 내어 귀리를 썩게 만드려 시도하다가 ㅎㅎ 잠시 잠이 듭니다. 여튼 어린 독자들은 서늘하게 보관 못 한 곡물이 썩을 수도 있다는 점도 배울 수 있을 듯합니다. 혹은, 갑자기 썩은 곡물을 보고 악마가 제 몸을 데워 장난을 쳤나 보다 하고 옛 사람들이 여겼음을 이해하겠죠. 마치 "바로워스 민담"처럼 말입니다.

pp,30~31에는 악마가 낱알을 병사로 바꾸는 주문을 가르쳐 주는데 이 부분은 박스로 처리되고 빨간색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주문을 좋아하죠. 나중에 실습 해 보고 효과가 안 나서 실망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대체로 이반 3형제의 부모는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프로디걸 썬의 아버지보다도 더) 합리적으로 생각을 하는 이들이라서 손위 두 아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고 이반의 역성을 들어 줍니다. 그러나 p51에는 아들의 바보 같은 행동에 실망했는지 바보라며 야단을 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왕건은 자신의 아내에게 약초를 주지 않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 상주 토호 아자개에게 그 귀한 걸 줘 버리는데, 이반은... 여자 거지에게, 공주한테 가야 할 약초를 줍니다.

이 대목은 마치 톨스토이의 다른 단편 <구두장이의 꿈>에 나오는, 마태복음 25:40의 가르침, 즉 가장 미미한 자에게 베푼 게 바로 예수에게 베푼 것이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제가 어려서 읽을 때에도, 아니 왜 약초도 없이 몸만 달랑 간 이반이 곁에 이르자마자 공주가 낫는 건지, 이건 반칙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사실 약초가 중요한 게 아니죠. 톨스토이의 서사적 과감함이 돋보입니다.

위(p22)에서 시몬의 아내는 귀족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려 들었지만(또 본디 귀족이 아닌 남편 시몬 역시 그녀의 말을 따랐지만), 여기서 공주는 무려 왕의 딸인데도 멍청한(?) 이반의 말을 따라 자신도 같이 일을 하며 이반 같은 바보의 삶을 택합니다. 이 대목이 너무도 재미있습니다. 하긴 시몬은 처가에 폐나 끼치는 식충이이지만 이반은 아내의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이니 발언권의 크기가 다르죠.

여튼 이반의 부친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었는지(?) 그 세 아들이 모두 왕이 됩니다. 이반은 그렇다쳐도 첫째 시몬은 무력으로, 둘째 타라스는 재력으로 둘 다 왕이 되었다는 게... 물론 이반이 준 군사, 금화의 밑천이 없었으면 턱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러시아에는 이처럼 특별한 아들들을 둔 부친이 또 있는데 블라디미르 클리첸코, 비탈리 클리첸코 두 세계 복싱 챔피언을 낳으신 분...

전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읽을 때에도, 왜 시몬은 "키가 크고 얼굴이 깨끗한 병사(p52)"만 모집했을까가 의문스러웠습니다. 키가 큰 건 그렇다 쳐도 얼굴은 왜 깨끗해야 할까요? 어느 나라 군대나 의장대, 근위병은 이렇게 뽑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몬이 필요한 건 전투병일 텐데 말입니다. 이 책에는 키가 크고 얼굴이 깨끗한 사이에 "튼튼한"을 더 넣었습니다. 이게 사실 상식에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제 마음대로 생각하기로는, 시몬 왕은 적국을 상대로 전투를 하기보다 자국민에게 위압감을 줘 수취하는 용도로 이 군대를 쓴 듯합니다. 농담이지만 시몬이 거지가 되었을 때 이반 왕은 군대에게 노래를 가르치라고 하는데(p64) 그렇다면 키 크고 잘생긴 문선대(?)가 필요할 듯도 합니다.

러시아는 역사상 사실 인도와 접점이 없습니다. 러시아와 접점이 있었던 건 투르크나 페르시아겠죠. 톨스토이는 특이하게 이반의 두 형이 인도와 적대하게 이야기를 꾸미는데, 톨스토이의 시대에 인도는 영국의 손에서 꼼짝도 못했지만 여기서는 러시아인들의 군대를 격파할 만큼 강합니다. 제정 러시아가 인도를 넘볼 생각은 잠시 품었으나 자신들의 힘이 영국을 물리칠 만큼 강하지 못했기에 실행에 옮기지를 못했습니다. 훨씬 후에 나치의 외교장관 리벤트롭은 스탈린더러 유럽을 넘보지 말고 저 아래 인도로 진출하여 영국과 대립할 것을 부추겼지만 스탈린도 바보가 아니었죠.

p75에서 악마가 변한 신사가 손이 깨끗한 걸 보고 게으름뱅이를 미워하는 이반의 동생 말라니아가 나옵니다. 공주는 그녀를 두고 "(친족호칭으로) 아가씨"라 칭하는데 원문도 비슷합니다. 영어 텍스트를 보면 이 여동생의 이름이 마르타, 마사, 이를 보고 옮긴 한국어 번역본 중에는 심지어 "몰타"도 있는데, 이 책에는 말라니아(Маланья)라고 정확히 톨스토이 원작대로 나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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