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시간 - 40일을 그와 함께
김헌 지음 / 북루덴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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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처럼 극심한 고통, 열렬한 사랑, 극적인 깨달음으로 그 길지도 않았던 생을 점철한 위인도 드물 듯합니다. 특히 이른바 기독교에서 사순절이라 일컫는 40일간의 행적은 참으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줍니다. 40일간의 행적은 아니고 그보다 전의 일이지만 예수는 광야에서 실존의 극한 수행을 통해 악마의 유혹을 겪은 적도 있고, 이것이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딱히 쓰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를 믿건 안 믿건 무관하게, 예수, 특히 그 고난의 체험은 인류에게 영원한 영감의 소재가 되는 듯도 합니다.

악마는 예수더러 절 한 번에 지상의 모든 권력을 주겠다고 유혹했으나 예수는 그 덧없음을 잘 알았기에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만약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이, 세상의 모든 권력은 고사하고 작은 이권이나 이익이라도 걸린 어떤 사악한 제안을 받았을 때, 과연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인상이 고약하거나, 혹은 이야기책에서처럼 머리에 뿔이 난 악마가 한눈에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차림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유혹한다면 차라리 고마울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배운 바가 많기에, 아 이게 악마의 유혹이구나 라며, 모르긴 해도 득보다 실이 많을 이런 제안을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겁니다. 착해서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의 결과인데, 그래서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거죠 ㅎㅎ

그러나 실제는 어떨까요? 악마는 많은 경우, 그처럼 허술하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 많은 경우, 이 제안을 받는 게 나보다 내 주변 사람들을 덜 피곤하게 한다거나,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많아서 이보다 더 나쁜 짓도 서슴없이 할 것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차라리 그냥 내가 더 부자가 되고 싶어서, 내가 더 편하려고 한다며 솔직해지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나쁜 짓을 하는 동시에, (필요도 없는) 거짓말까지 덧붙입니다. 이게 바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도장까지 찍는 짓이라 하겠습니다.

"믿음은 결단의 노력이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착각하는 게, 무조건 믿는다고들 합니다. 그 말 뒤에는, 아 차마 안 믿기지만 그냥 나중에 천국 가려고 무조건 믿는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이건 믿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말과 행위로 또하나의 죄를 짓는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태연히 죄를 저지르기에 그게 죄인지 뭔지도 모르고 일상적으로 죄를 저지르죠. 이걸 매순간 바로잡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야기한 대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고치고 또 뉘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무조건 믿는다니, 어디 그 믿음이 온전한 것이겠습니까? 믿는 게 아니라 매 순간 불신하는 겁니다. 문제의 그날밤 베드로가 스승을 부인했듯, 또 다시 찾아온 스승의 손에 뚫린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고서야 믿겠다던 불신의 도마와도 같습니다. 이 사도들도 나중에서야 그리 크게 뉘우쳤으니 우리 인간들의 약함과 어리석음이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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