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 생각의 기술 - AI 시대, 직원부터 CEO까지 메타인지로 승부하라
오봉근 지음 / 원앤원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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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학창 시절이나 더 어렸을 때 "똑똑하다" 소리를 듣는 사람은 직접적인 인지능력이 뛰어난 편일 겁니다.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본다거나, 한번 습득한 지식을 잘 기억하고 제때 척척 떠올린다거나, 혹은 모아 둔 우표 컬렉션 구성품을 다 눈에 익혀 두고선 자신이 가진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을 다른 컬렉션 속에서 정확히 분별한다거나 말입니다. 이런 능력도 물론 중요하고 무엇보다 이쪽이 예민하면 본인이 일상을 사는 데 참 편합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전 경제구조를 집어삼키는 작금에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차원의 능력이 더 필요합니다.

공자는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라는 말을 했습니다. 해석하면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아는 게 진정 아는 것"이란 뜻이죠. 이는 물론 인지과학적 명제가 아니라,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할 줄 아는 도덕적 태도"에 더 강조의 포인트가 놓인 말이지만, 인지의 층위를 구별할 줄 알라는 논리학적 요구로 못 해석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떤 대상을 아는 것과, 그 알고 모르고에 대해 한 위상 높은 판단을 하는 것은 별개의 작용입니다. 이 둘이 서로 다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체험의 매 순간 "이것은 인지적 작용이요, 저것은 그 인지를 인지하는 작용"이라며 분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잘 모르겠다" 싶을 때 경솔한 결정을 보류하며 위험한 결과 초래를 예방하는 건 대부분이 할 줄 압니다(안 그런 사람도 꽤 많아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꼭 뭔가를 지르고 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아 이렇게 하는 게 메타인지로군" 이라며 이를 분명하게 의식하는 사람은 꽤 드뭅니다. 즉 자신의 어떤 행동과 이에 대한 의식적 평가(혹은 메타인지)는 또 다르다는 거죠.

AI는 연산능력과 기억, 저장 능력이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되게 빼어나지만 이 메타인지를 행하지 못하기에 사람보다 열등하다고 말하는 입장도 있다고 합니다. 이 책 p36에 인용되는 김경일 교수 같은 분이 그렇다는 거죠. 다음 페이지에는 "AI도 자신이 대답을 내릴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검색을 할 수 있고, 이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과는 경우가 다르겠습니다만 예전에 김장훈은 알파고 대국을 해설하면서 알파고의 다음 수가 꽤 오래 걸리는 걸 보고 "어, 왜 저러지?"라고 재밌어한 적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걸 두고 구글의 속임수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죠.

여튼 작업에 따라 검색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의 상식에 비추어 실망스럽기도 하다는 건 부인 못 하죠. 검색이 느려진다고 다 메타인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현 기술 단계에서는 매타인지가 AI에게 좀 힘든 태스크인게 분명합니다. 또,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상황이면 인지와 메타인지에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이 서로 큰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설령 익숙지 않다 해도, 다른 어떤 의도가 있지 않는 한, "이 문제는 내가 모릅니다"라는 대답이 나오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습니다. 헬기의 조정간 버튼 중 어느 것이 연료 관련입니까? 이 두 장기 중 어느 것이 이자이며 쓸개입니까? 라는 질문에 평범한 시민이 자존심 때문에 한참을 망설인다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대부분 "전 모릅니다"라고 대답하며, 모른다 안다를 판단하는 데 아마 0.1초도 걸리지 않겠죠.

이런 메타인지는 어떤 정보를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모르면 모르는 대로, 아 이 사람은 특정 정보를 모르는구나 하는 것도 정보입니다)하는 데서 그 효용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런 체험은 메타인지를 겪은 당사자가, 자기 반성을 하게 돕습니다. 모르니까 알아야겠구나, 혹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모르고 있었구나, 이런 데 생각이 미치면 그 부분을 연구를 통해서건 혹은 깊은 사색을 통해서건 더 다듬어야 한다고 여길 겁니다. 매타인지를 통해 인지는 다음 번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려고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어떤 전문가는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무인화" 한 마디로 요약하더군요. 이 정의는 좀 거친 감이 있지만, 여튼 시대가 바뀌는데 컴퓨터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실력, 자질, 적성만 갖고 만족한다면 머지않아 자기 자리를 뺏기리라는 정도는 누구나 예상 가능합니다. 나아가, 이 책에서 "레벨1 메타인지"라고 부르는 정도의 인지도 누구나 가능하죠. 주어진 일을 내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해 내는 것이 있다면, 이를 다시 리뷰하며 혹시 오류가 없는지 검토하는 것이 말하자면 레벨 1 메타인지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가능합니다. 물론 이 간단한 게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 자신이 내뱉은 말은 옳고, 다른 사람이 이를 비판하는 건 그저 그 비판자의 속이 좁아서 다른 생각을 수용 안 하는 탓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물론 그리 여기는 자신은 또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결코 용납 안 합니다. 의견 충돌이 있으면 그 다음은 무조건 "투쟁"으로 해결하려 듭니다.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그 사회는 유지될 수가 없죠.

하지만 우리는 레벨 1에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자, 나는 방금 내가 마친 작업에서 몇 가지 오류를 찾아 고쳤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일까? 이 이상의 다른 오류는 없는 걸까? 내 자신이 해 놓은 작업에조차 오류라고 스스로 인정한 부분은 누가 봐도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내가 오류 아니라고 넘어간 부분은, 객관적으로 봐도 역시 오류 아닌 채 남는 걸까?" 여기서부터가 문제입니다. "아니 자체 오류 체크까지 끝냈는데 왜 시비를 거는 겁니까?"라고 반발을 하니 조직 안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겁니다. 생각이 짧은 사람은 이 단계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사실 레벨 1에 활용된 오류 판명 기준 역시 자신의 것일 뿐인데 말이죠. 혹 조직 내 계급 관계 때문에 의지가 꺾였다고 여기는 사람은 이 때문에 원한을 품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속으로 정리하기 때문에 내상을 입습니다(또 그 조직 안에서 그 사람은 그만큼 더 쓸모 없는 사람으로 떨어집니다). 반대로, 명백히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견책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건 개선하면 되니까요.

또, 거꾸로, 내 기안이 좋았는데 상사나 동료한테 부당히 지적 받았다, 이런 경우에도 메타인지가 습관화된 사람은 유리합니다. 이른바 "논파"를 할 때 효과적으로 이걸 잘 하는 사람은 무슨 생떼를 쓰는 게 아니라 정말로 상대방의 주장 허점을 잘 파고듭니다. 그뿐 아니라 관전하는 제3자의 동의까지 시원하게 이끌어냅니다.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은 평소에 자기 자신을 남처럼 객관화하여 메타인지를 습관처럼 행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자신을 잘 까 본 사람이라야 남도 (필요하다면) 제대로 깔 수가 있는 겁니다. 이런 메타인지는 누가 누구를 이기는 문제가 아니고, 제3자의 객관적 입장에서 봐도 더 개선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죠.

이게 아니라 평소에 무슨 한 맺힌 게 있어서 같은 말만 자기 입장에서 계속 되풀이하는 게 목적인, 정신이 미숙한 사람은 애초에 메타인지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오류가 다 보여 여태 잘못 살아온 게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사회 생활하면서 가장 골치 아픈 부류가, 몇 년이 지나도 자기 속 편한 대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정신승리밖에 없고, 그런 정신승리를 행하면서 오히려 자신 아닌 다른 사람이 정신승리한다고 여기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죠.

메타인지의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게 CEO의 사고가 된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상식, 혹은 논리적으로도 맞는 게, 특정 회사에서 더 높은 직급은 바로 아래 직급의 여러 기안 중 최선의 것을 판단하고 다른 것을 기각하거나 고치는 입장이니 말입니다. 과장은 여러 대리들의 제안을 판단하고, 팀장은 그 과장들의 판단을 판단하고,.. 이런 식으로 올라가면 CEO는 최상위 판단들의 당부를 판단하는 직 아니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확장하면, 대리 시절부터 CEO의 퍼스펙티브로 모든 것을 봐 버릇한 사원이 승진도 빠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도 나옵니다. 이것은 제 주제도 모르고 눈높이만 높이라는 주문이 결코 아니라, 자기 입장 말고 다른 입장도 가능하다는 걸 이찍부터 생각으로 연습하라는 뜻입니다.

사실 <초한지>에서 최후의 패권자가 된 유방은, 세부 개인기에서 다른 군웅에 현저히 못 미치는 그저그런 위인됨에 불과했었으나, 이런 메타인지, 즉 다른 라이벌의 입장에서 자유자재로 서 본 후 큰 그림을 내려다보는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그는 누구에게서건 잘못을 지적 받으면 바로 수정했는데 전혀 체면을 따지지 않고 아집도 부리지 않았습니다. 집념과 의지가 강한 것과, 쓸데없는 고집불통인 건 전혀 다릅니다.

p94에는 "관계지향형 인간과 업무지향형 인간"의 구분이 나옵니다. 흔히 전자를 두고 "일은 안 하고 정치만 하는 인간"으로 비난하기도 하죠. 그럼 메타인지에 능한 "네트워커형 인간"은 저 전자에 해당하는가? 말만 들으면 그런 것도 같지만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확연히 구별됩니다. 관계지향형 인간은 관계 그 자체에 매몰되고 관계 형성만을 목적으로 삼지만, 네트워커형 인간은 관계를 메타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사람이지 관계에 중독되거나 맹목 돌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네트워커형 인간은 업무지향형에 가깝습니다. 일을 위해 네트워크에 몰입하는 거니까요. 그 업무 지향성이 일차원이 아니라 다차원이라는 것뿐입니다.

한때는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인간이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게 군사문화의 유산 같은 게 아니라, 십대 성장기를 갖 마쳐도 아직은 미숙한 게 그 나이 또래 남성인데, 처음으로 조직 문화에 편입되어 보고, 규율의 무서움도 알고, 나를 넘어선 더 큰 공동선의 가치(전체주의의 옹호와는 다릅니다!)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취업할 때에도 군필 여부를 고과자가 들여다 보기도 하는 거죠. 군필 만능론이 아니고 미필도 다른 자질을 얼마든지 계발하여 보충할 수 있지만, 여튼 군대에서 강도 높은 조직 생활을 해 본 사람은 분명 뛰어난 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회사 생활을 해 본 사람은 기안의 통과 등을 위해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훈련이 되어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는 해당 업무에 대해 지식이 얼마나 빠삭하고 두뇌 회전이 빠르냐는 문제와는 또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도 좋고 영리하지만 결국 자신의 승리와 성취만을 위해 모든 전략과 행동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결국 이런 사람은 이기적인 목적도 달성 못 한다는 뜻입니다. 잔꾀만 부리다가 큰 그림을 못 보고 결국 자신을 망치는 함정에 빠진다는 겁니다. 반면 메타인지가 능수능란하게 되는 사람은 결국 승진도 성취도 가장 높은 수준까지 해 내며, 이런 사람이 이타적인 것도 아닙니다. 어찌 보면 아주 고차원으로 이기적인 사람인 거죠. 이게 바로 이 책 p209 이하에 나오는 조직적 메타인지입니다. 스포츠에 비유하면 독일이나 과거 브라질 국대 축구처럼 동료 팀원들이 앞으로 무슨 플레이를 할지 다 예측하고 척척 호흡이 맞아돌아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팀은 개인기만 뛰어난 게 아니라 조직력 자체가 한 몸처럼 돌아갑니다. 반면 중국 같은 팀은 개인기만 나쁜 게 아니라 애초에 팀플레이 자체가 안 됩니다.

"직관도 사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암적인 존재가, 무슨 근거도 없이 그저 자기 직관에 불과한 걸 끝까지 우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조직에서는 폭력 외에는 분쟁 해결 수단이 안 남게 되죠. 요즘 "테스형"더러 세상이 왜 이러냐고 묻는 게 유행이지만, 테스형이 단 한 마디로 강조한 건 "너 자신을 알라"였습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는 과연 소속 집단이나, 심지어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돌아보고, 나를 리뷰하며, 그 리뷰를 다시 리뷰하는 습관을 들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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