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딜로와 산토끼 2 - 세 친구 이야기 아르마딜로와 산토끼 2
제레미 스트롱 지음, 레베카 베글리 그림, 신지호 옮김 / 위니더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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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친구 사이라고 해도 오해나 서운함은 언제나 쌓일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터 놓고 나누는 대화일 듯합니다.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또 서로 마음 상하는 말이 오갈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관계의 큰 그림, 본질을 바로 보고 공유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베스트셀러 작가 제레미 스트롱의 이 동화를 읽고 나서 드는 것 같았습니다.

"재규어라고!" 생쥐는 심장이 멎는 듯했습니다. (p24)

아르마딜로는 자기 집에 동물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데 그 중에는 재규어도 있습니다. 고양잇과 동물 중에는 북미 대륙에 사는 중 최상위 포식자라서 우리한테라면 호랑이 같은 느낌이겠습니다. 재규어도 배가 고프면 생쥐(만약 근처에 있다면)를 얼마든지 잡아먹을 테니 생쥐가 놀란 건 당연합니다. 책 저 뒤 p134에는 재규어가 안 잡아먹겠다고 농담을 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p101에서는 바닷가재가 지네를 보고 놀라 심장이 마구 뛰기도 하네요. 사실 지도 징그러우면서 말입니다.

산토끼는 그야말로 물에 빠진 쥐처럼 초라한 모습을 하고(책 p12에서는 젖은 행주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얼마 전(정확하게는 일년 5개월 23일 반나절[p15]이며, 그들은 "오래 전"이라고 말은 합니다) 아르마딜로의 집에 찾아와 신세를 지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르마딜로는 이 토끼를 무척 좋아하며, 토끼와의 만남을 기념하여 파티를 여는 겁니다.

웜뱃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는 낯선 동물일 텐데 호주에 살며 이름 중 "웜"은 warm도 worm도 아니고 그냥 wom입니다. 영어 어근에는 이런 형태가 없겠고, 호주 선주민들의 단어라고 하네요. 이 이야기에서 웜뱃은 손재주가 아주 뛰어납니다. 친구(손님)들 중에는 대벌레도 있는데 물론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여튼 이들과 친구입니다. 저 생쥐는 "나이가 많은 것 같(p21)"은데도 여튼 또 친구입니다. 그러니 크기도 나이도 먹이사슬상의 서열도 아무 상관 없이 이들은 모두 친한 친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벌레는 좀 곤란할 것 같은데 작가분도 이를 의식하고 매번 대벌레 앞에다 "눈에 보이지 않는"이란 수식어를 일부러 붙입니다! 독자들 재미있으라고 말입니다.

책 마지막에도 다시 나오지만 사실 이중에서 좀 특히 신비한 동물은 산토끼입니다. 얘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에게서 악기 튜바를 물려받았는데 하도 족보가 길어서 마치 기독교 신약의 한 구절을 읽는 듯합니다. 이 튜바에서는 연주할 때마다 네온사인 같은 게 막 튀어나옵니다. 아르마딜로도 결말에서 이게 신기했는지 그 내역을 물어보는데 산토끼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토끼의 대답은 아마 이 책을 어린이와 함께 읽을 부모님들이 더 마음 찡해할 것 같아요.

아르마딜로와 그의 친구들은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소리(p30)"가 숲에서 들려오는 걸 듣고 그리 향합니다. 그런데 저 국혐하는 표현은 아르마딜로의 "견해"이며 산토끼, 재규어, 거북이 등은 "박자가 있는 음악"임을 깨닫고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헤비메탈(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듯이 말입니다. 사실 유독 아르마딜로만 그 음악을 싫어한 건, 나중에 드러나듯(p74) 그 연주자의 다재다능함을 앞으로 자신이 시기하게 될 것을 알려주는 묘한 전조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미 복선이 깔린다는 뜻입니다.

연주자는 곰이었는데 우리도 악기 연주 잘하는 친구가 인기 좋듯 곰은 이들 사이에서 단박에 스타로 떠오릅니다. 산토끼가 곰한테 특히 관심을 보이는 걸 보고 아르마딜로는 자신도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 생각(p55)"을 갖게 합니다. 곰이 음악에 재주가 있으니 자신은 미술로 승부를 보겠다? 여튼 아르마딜로가 꽂힌 대상은 치즈입니다. 위에서 본 치즈, 아래에서 본 치즈... 치즈... 이 치즈(?)는 하늘에 뜬 모양으로 뒤에 다시(p138) 나옵니다.

바다에 간 그들은 수영을 합니다. 수영 솜씨가 가장 좋은 애는 의외로 아르마딜로였는데, 다들 이렇게 우아하게 힘 안 들이고 잘할 줄 몰랐다면서 칭찬이 자자(p78)합니다. 아르마딜로는 아빠가 수영 선수였다고 하는데 역시 재주는 부모님한테 물려받아야 하는가 봅니다. 바닷가재는 원래 여기가 홈그라운드고, 거북이는 얘가 바다거북이 아니라서 의외로 수영을 못하네요. 대벌레는 수영복이 없다면서 부끄러워하며 수영을 사양하는데 얘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잊었습니다.

우아한 기린은 어느날 다리를 다쳐 절게 됩니다. 재능이 많은 곰은 그의 무릎을 고쳐 주는데(p118), 곰은 이처럼 다재다능하고 매력적입니다. 곰은 저 앞 p38에서도 거북이를 도와 줍니다. 아르마딜로는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하고 샘이 났던 거죠. 그런데 이런 곰도, "나는 아무 쓸모 없는 애가 아닐까?"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며 솔직히 고백(p83)합니다. 그래서 곰은 드럼을 열심히 쳤던 거라고 합니다. 그런 괴로운 생각을 떨칠 수 있으니까요.

"산토끼야, 너는 가끔 이상한 말을 하더라? 물론 여기는 저기가 아니야. 여기가 만약 저기였다면, 저기는 여기가 아니지 않겠어. 안 그래?"(p94) 우리 독자는 여기서 마치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웜뱃은 산토끼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멋진 해석을 합니다. 무엇인지는 직접들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바둑이라든가 스도쿠 같은 걸 우리는 스포츠라고 잘 생각하지 않는데 이미 아시안게임에서는 e-sports가 정식 종목입니다. 기린이 요가를 하다 다친 걸 보고(p127) 더욱 아르마딜로는 두뇌스포츠(ㅋ)에 빠져듭니다.

드디어 바닷가재는 기린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여 사랑에 빠지고(pp. 144, 146) 거북이는 이를 눈치채어 매번 놀려댑니다(p132). 애들은 꼭 이런 걸 놀리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만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적이 있어 후회가 되는군요.

"음 바닷가재야 여기 흥미로운 게 있어. 네가 괴물을 만났을 때 네가 "앙녕하세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괴물이 절대 아닌 경우가 많아."(p103) 맞는 말입니다. 이 대목은 마치 생떽스의 <어린 왕자> 한 구절처럼 그윽한 의미를 담았네요. 그 괴물은 참고로 지네였습니다.

아르마딜로는 치즈가 너무 좋았는지 풍선에 매달려 달을 향해 가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합니다. 다행히 키 큰 친구 기린이 있어 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숲도 기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아르마딜로, 그건 네 기분이야. 넌 네 기분을 숲을 통해 보는 거라고."(pp.87~88)
"내가 튜바를 연주할 때 내 기분에 따라서 튜바가 그 감정과 꿈을 깨워서 밖으로 내놓는 거야."(p156)
언제나 산토끼는 아르마딜로보다 어른스럽습니다. 이래서 아르마딜로가 산토끼를 귀여워하는 것 같습니다. 안 그럴 것 같은 애가 그러니 말이죠.

"난 널 멀리서 볼 때 참 크다고 느껴. 그런데 네가 가까이 다가오면, 난 갑자기 깨달아. 네가 참 작다는 걸." (p128)

이 말은 산토끼가 역시 아르마딜로에게 한 말이고, 우습다는 듯 아르마딜로는 막 키득거립니다. 전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원근법은 법칙이 아니고 하나의 가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분에 따라 모든 걸 바꿀 수 있으니 우리는 과연 다 특별한 존재입니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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