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인도신화 - 신화부터 설화, 영웅 서사시까지 이야기로 읽는 인도
황천춘 지음, 정주은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나라나 많은 신들, 정령들을 신화 체계에 담고 숭배합니다만 인도 신화처럼 많은 수를 빚어낸 체계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한국이나 중국도 고대에는 신화를 갖고 있었지만 공자, 맹자의 가르침을 존숭한 이래, 이른바 객관적 관념론으로 정신 세계를 무장함에 따라 거의 잊어버리다시피 했습니다. 여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뚜렷한 다신교 체제를 가진데다, "무엇을 믿든 간에 결국 나를 믿는 것이다" 같은 포용성을 과시하는 신념도 매우 개성적인 게 인도 신화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무수한 전쟁과 다툼으로 가득하듯, 인도 신화에도 온갖 신들과 영웅들, 정령들이 싸움을 벌입니다. 그 싸움은 때로 창조 작업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p61 같은 곳을 보면 브라흐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하데바시여, 당신의 도움 없이는 창조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바는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나는 고행자로서 오로지 수행을 통해서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마하는 "큰", 데바는 "신"이란 뜻입니다. 신부를 맞으라는 권유에 "향락은 필요없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 전쟁의 신은 결혼을 그저 쾌락의 통로로 여기나 봅니다.

싸움을 일삼는 자는 대개 철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도 가정을 일구고 자녀를 보다 보면 철이 들 수도 있죠.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은 역지사지, 즉 부모의 입장에서 철없는 아이를 길러 봐야 어른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리스 신화 체계 속에서처럼, 이 인도 신화의 신과 불멸의 존재들도 마치 철없는 아이들처럼 갈등과 계산과 화해와 대립을 거듭합니다.

인도는 마치 중국처럼 거대한 단위 안에 풍부한 자원과 물산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자연 조건이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에서 일찍 문명이 피어나는 게 당연했으며, 기후 조건도 참으로 다양했기에 그런 풍토를 반영한 다양한 신들을 상상으로 빚어낼 수 있었던 듯합니다.

불교는 힌두교에서 썩 반기지는 않는, 기껏해야 하나의 지류 취급이지만 여튼 이 책에서는 비중 있게 다룹니다. 중국이나 우리나 머나먼 인도를 잘 모르다가, 붓다가 불교 신앙을 완성하고 그의 후계자들이 널리 전도함에 따라 비로소 인도 문명권의 정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도 불교 설화를 여럿 접했지만, 일단 붓다부터도 제바달다 같은 악인과 대결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완성하고 널리 중생에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부처의 분투기를 읽으면 일단 재미도 있을 뿐더러 무엇이 세상에 참 평화를 가져다 줄지 깊이 있는 사색도 가능하게 돕습니다.

신들의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친구가 된 네 명의 브라만처럼 재미있는 설화도 등장합니다. 사람은 타인의 도움으로만 행운을 얻는 게 아니라, 때로는 불운으로부터 뜻밖의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나 이를 자신의 이익으로 전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지혜를 요구하는 단계입니다.

자신의 장점이 영원할 줄 알고 교만하던 자 역시 한순간에 "늙은이"가 되어 과오를 반성하는 등,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인간이 어리석은 잘못을 가능한 한 회피하며 올바른 길을 걷도록 돕습니다. 동양의 신화와 설화는 이처럼 서양의 그것에 비해 다분히 계도적 성격을 갖는 게 독특합니다. 어떤 가르침을 꼭 얻어야겠다는 강박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재미를 느껴가며 낯선(꼭 낯설지만도 않은) 인도 문화와의 만남을 갖는다고 여기면 좋을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