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뱅크가 온다 - 2025 미래 금융 시나리오
다나카 미치아키 지음, 류두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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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많은 편의를 제공하는 쪽으로 바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편의의 모습이 어떨지는 아무도 쉽게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그의 인적 정보를 스캔해 내어서는 관심사에 따른 광고를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의 쇼핑 패턴도 과연 그 정도로 편하게 바뀔까요?

"아마존 고"라는 혁신적인 상점은 이미 미국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점포에는 점원이 없고, 상품을 산(?) 후 가게를 나설 때 따로 값을 치르는 절차도 없습니다. 이를 두고 그들은 "노 체크아웃 스토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이런 혁신이 가능했을까요?


놀라운 건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건 살 돈이 부족한 고객들에게 적정선에서 돈을 꾸어주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이후 상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평가를 그들은 "귀신 같이", 기존의 덩치만 큰 채 우둔한 은행보다 정확히 해 낸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취향을 (아마도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확히 파악한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니즈를 알고 적절한 상품을 선제적으로 추천해 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아마존이 가까운 장래에 도달하기 위해 애 쓰는 하나의 이상상이며, 벌써 한 걸음 한 걸음 무섭도록 현실화하는 중인 목표입니다. 물건 파는 백화점이 고객 주머니 사정까지 정확히 꿰뚫고는 나중에 받아낼 수 있을 만큼만(혹은, 자신들의 물건을 살 수 있을 만큼만) 빌려 주고, 정확히 원하는 물건을 배송까지 마쳐 주는 똑똑하고도 무서운 소매점. 아마존이니까 꿈꿀 수 있는 야심찬 미래입니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아마존 경제권의 확대이다(p114)." 과거 한 가지 시장을 단일 기업이 다 손에 쥐면 독점으로 규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여러 시장을 똑똑하게 지배하는 행태는 아직 법의 단속 대상이 아니며, 무엇보다 소비자를 편하게 해 주는 혁신이 회초리를 맞아야 할 이유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없습니다. 물건 팔아 이익도 남기고 물건 살 돈도 꾸어 주면서 이자까지 챙기는 영리하고 무서운 백화점을 상상해 보십시오.

일본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공부했고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에서 근무한 저자는, 이런 아마존의 혁신을 지적하기에 앞서 우선 같은 동양권의 "알리바바", "텐센트" 등의 놀라운 도약에 주목합니다. 결제의 편의성을 꾀하고 자신들의 결제 플랫폼을 어느새 사회 인프라 수준으로 도약시킨 공은 이들 중국 기업이 먼저였다는 겁니다. 이 점에 한해서는 아마존도 그들의 후발주자에 불과합니다. 또, 알리페이나 위챗 등도 이미 결제수단을 넘어 금융의 영역에 몇 발을 들여 놓고 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학자들, 애널리스트들은 "금융 디스럽터"라고 말합니다. 일본어로는 "金融破壞者"라고 부른다는 걸 p111의 책(사토 모리노리 저) 제목 소개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한국식으로도 뜻이 통하는 건 물론이고요). 훌륭한 제도라면 애써 파괴할 이유가 없고, 잘 가꿔서 유지해야만 합니다. 문제는 일본의 금융이 아주 실망스러울 만큼 저조하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일본인인 저자는 이 점을 신랄하게 꼬집는데, 이는 아마 한국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니 더했으면 더했죠).

금융이 금융 구실을 못 하고,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이니 누군가가 나서서 이들을 갈아 치워야 합니다. 바로 이 역할을, 온라인 스토어에서 시작한 IT 기업들이 자처하고 나선 겁니다. 한국에서는 특이하게 메신저로 전 국민의 스마트폰 안에 자리잡은 (주)카카오가 이 역할을 맡았는데, 많이들 이용하시는 인터넷 은행이 바로 그것입니다.

개인의 신용을 정확히 평가해야 은행 측에서도 효과적인 대출이 가능합니다. 대출은 은행 입장에서 (당연히) 장사이므로 상환 능력이 있는 고객이라면 최대한 찾아내어서 대출 상품을 안겨야 합니다. 이 상환 능력이라는 걸 종전 전통 금융 기관은 그저 보유한 담보 재산만으로 평가했습니다만, 아마존 등은 소득의 흐름, 특정 재화를 갖고 싶어하는 취향 등이 상환 의사로 연결되는 과정까지를 포착하기에 이릅니다. 능력 있는 사람한테 돈을 빌려 주는 건 그 사람 좋은 일 시키고 마는 게 아니라 은행 자신이 바로 남는 장사를 하는 겁니다. 이 일을, 그동안의 구매 이력 등을 통해 고객의 성향과 능력을 정확히 평가한 IT 기업이 해 내는 거죠.

이런 우량 고객 한두 사람 발굴(?) 한다고 해서 장사가 될 리는 없는데, 이들 IT 기업들은 빅 데이터의 정밀한 발굴을 통해 그간 기존 은행이 실패해 온 과업을 멋지게 달성해 냅니다. 이러니 (건설적 의미에서) 금융 파괴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상류(商流)"라 부릅니다. 상류라는 단어는 일본어에서 원 의미는 좀 다른데 여튼 이 책에서 저자는 그리 개념 규정을 합니다.

p55에서 저자는 금융 파괴자가 자신이 개발해 낸 플랫폼을 통해 운용하는 3대 기능을 상류, 물류(物流), 금류(金流) 셋으로 요약합니다. 이 세 가지는 종래 다른 기관이 제각각 맡았습니다만 현대 경제 체제가 만족스럽게 느낄 만큼 효율이 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건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하나의 기업이" 시너지를 내며 결합시켰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크겠냐는 겁니다.

여기서 아마존의 지향하는 가치가 등장합니다. 고객은 최대한의 편의를 누려야 하며, 결제 과정은 물론이고 어떤 상품을 골라야 할지, 골라서 결제한 상품을 집에 배송받기까지 "그런 줄이 일어난 줄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마칠 권리가 있다는 거죠. p91에 이런 아마존의 지향점이 잘 정리되었습니다.

1. 인간이 지닌 본능과 욕구에 응답하는 것
2. 테크놀로지의 진화를 통해 고도화한 문제와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
3.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헤아리는 것
4. "OO거래를 하고있다"는 사실이 느껴지지도 않게 하는 것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금융 파괴자의 성패를 가르는 건 플랫폼의 개발에 달렸으며, 그 플랫폼은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혁신적이라야 합니다. 이런 플랫폼이라야 "서드 파티"의 참여가 쉬우며, 우리가 이미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 등에서 보듯 서드 파티가 얼마나 바글바글하게 모여 드느냐에 따라 플랫폼이 성하고 망하고가 결판납니다.


서드 파티는 앱 안의 앱을 개발하는 데 참여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에 이어 두번째로 각광 받는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의 경우 어플리케이션 안에 온갖 에드온(add-on)을 다 끼워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웹 브라우저 시장의 강자였던 파이어폭스가 한때 잘나갔던 것도 이런 타 개발자의 애드온에 폭 넓게 융통성을 보였던 덕이었으며, 요즘 1인자인 크롬도 "익스텐션"의 매력이 점유율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톨게이트"가 아닌 "플랫폼"의 본질입니다.

야후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p225 이하에서는 야후와 소프트방크(손정의 회장의)의 제휴에 대해 설명합니다. 야후는 일본 외에서는 이미 죽은 기업 취급되지만 유독 일본에서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는데 이는 경영진의 혁신 의지가 강하고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미래를 보는 선명한 비전을 지녀서입니다. 그 비전은 예외 없이 "금융과 결합한 소매" 기능을 향합니다. p229에 이들 두 기업의 포지셔닝에 대한 도해가 나오는데 아주 직관적이면서도 야심찬 그들의 전략을 잘 요약합니다.

파괴적 혁신은 그 자체로 길이 절로 열리며, 테크놀로지에의 천착이 모든 목표를 절로 달성시켜 주는가? 저자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더 필요한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바로 "소비자의 신뢰"입니다. 당연하고 기본적인 말 같지만, 앞에서 얘기한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결제, 배송, 구매"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무서운(?) 쇼핑, 마치 꿈 꾸는 사이에 절로 이뤄지는 듯한 구매가 신뢰할 수 없는 상대방에 의해 이뤄진다면 혹시 그 사이에 어떤 트릭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지요. 이 맥락에서 신뢰라 함은 정곡을 찌른 지적입니다.

혁신은 언제나 자신을 부정하고 극복합니다. 아마존은 본디 "종이책을 보다 싼 가격에 판매"한다는 단순한 전략에서 창업되었습니다. 어떤 소매상, 도매상에게도 재고 관리가 골칫거리입니다만 책은 그 중에서도 보관과 이송이 가장 까다롭습니다. 만약 물류 창고를 여러 곳에 두고 중앙에서 통제한 채 필요할 때마다 연결하여 고객에게 팔 수 있다면 기존의 원가가 가장 큰 폭으로 절감되는 게 바로 도서 판매 사업입니다. 이랬던 아마존이, 킨들을 내놓으며 "기존 종이책 관련 종사자를 모두 실업자로 만들 각오를 하고(p288)" 새 사업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게임 규칙이 바뀌면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p335)" 책은 1968년 설립된, 이제는 세계 최강의 디지털 은행이라 불리는 DBS를 소개합니다. DBS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표준을 지난 세기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다시피한 전통의 최강자지만 현재는 디지털 분야에서 또다른 파라곤을 규정하는 중입니다. 저자가 보기에 (역시 1980년대 세계 최고였던) 일본 은행들은 결코 넘지 못할 벽처럼 군림하는 이들 디지털 시대의 패권자들은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갖습니다.

1. 가능한 한 조기에 "1) 디지털화할 분야"와 "2) 유산으로 남길 분야"를 구분해야 한다.
2. 1)은 중요한 경영 전략으로 설정해야 한다
3. 2)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한층 첨예화하여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니 참 욕심꾸러기입니다. 잘 보면 레거시 분야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나죠. 아직 빅데이터 마이닝이 그리 정밀하지 못하므로 손으로(매뉴얼로) 다루는 분야는 그대로 튜닝을 수동으로 하겠다는 뜻입니다. 요즘 AI 섹터는 모두 기계 학습에 맡기다시피 하는 것처럼들 광고하지만 정말로 그랬다가는 큰일납니다. 사람이 수시로 튜닝을 안 해 주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책의 마무리는 프레더릭 랄루의 연구를 인용하여 "오렌지색 조직에서 틸 조직으로 탈바꿈"할 것을 권합니다. 전자는 상명하복식 구조이며 관리자가 모든 걸 통제하는 반면, 틸 조직은 하부에서의 자율성이 고도로 중시됩니다. 인체에서도 물론 머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신체의 작은 말단이 고장나기만 해도 결국엔 머리까지 아파오는 게 상식이죠. 사람의 몸 같은 유기체가 콘트롤 타워와 지체의 작용이 조화를 이루듯, 금융의 혁신도 하부에서의 창의성과 활기가 조직 전체의 리빌딩까지를 도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업이 강자가 됩니다. 아마존의 자유로운 기업 분위기를 떠올리면 이 비전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그림이 그려지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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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0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