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리듬의 과학 - 밤낮이 바뀐 현대인을 위한
사친 판다 지음, 김수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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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리듬"이라고 해서 한국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큰 주목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일간신문에서도 자신의 생일생시 기준으로 오늘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려 주는 코너가 있었을 정도였는데요. 이후 이에 대한 "과학적 비판"이 일어나며 신뢰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과학적 근거 유무에 무관하게, 나의 두뇌와 신체가 최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어떤 주기가 있긴 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던 듯합니다.

이 책의 저자 사친 판다는 일종의 "게임 체인저"와도 같은 젊은 학자분입니다. 생체리듬이란 분명히 존재하며, 이것의 작동 원리가 막연한 기분, 컨디션 따위가 아니라 유전자 단위에서 기인한다는 겁니다. 이 "유전자 시계"는 일제히 켜졌다가 꺼지며, 켜지는 계기는 빛의 지각이나 영양분의 섭취 등인데, 무엇을 섭취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이에 대해 분명한 증명, 근거를 갖춘 연구는 이분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세계 최초였다고 하네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생체리듬은 그저 컨디션 조절 수준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몸에 생기는 자잘한 병은 바로 이 생체 시계를 조절 못해서 일어난다는 겁니다. 몸은 본디 병 안 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리듬이 정해져 있는데, 사람이 나쁜 습관으로 이를 흩뜨리기 때문에 병이 생긴다고 하네요. 그저 습관을 고치는 것만으로 유전자 시계를 제때 켜고 끌 수 있다는 결론이 놀랍습니다. 또, 이런 기제를 조절하는 신체 부위는 뇌에 한정한 게 아니라 우리 몸 전체라는 결론입니다. 그저 마음만 굳세게 먹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바른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거죠.

"1900년에 태어난 아기는 기대 수명이 47세에 불과했다(p88)." 이 생에 육신을 갖고 태어난 것만으로도 축복인데 고작 47년밖에 못 산다면 슬퍼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도 인간이 자신의 수명에 대해 그 정도 기대밖에 못 가졌다는 사실이 또한 충격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파스퇴르 같은 학자의 위대한 일생에 대해 배우기도 하지만, 사람을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사실은 그만큼 경이롭고 감사한 일입니다. 인간은 본디 맹수의 폭력으로부터도 취약한 신체구조이며, 아무리 도구를 써서 문명을 발달시키고 자기 보호에 능해졌다 한들 미생물 차원에서 신체를 좀먹고 드는 데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서양 문명이 이런 문제를 먼저 극복한 건 정말 큰 공헌이며, 동양인들이 서세 동점 추세(그보다 한 세기는 먼저 시작된)에 수동적으로 굴복한 것도 어쩌면 이런 성과에 기인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이야 동양 출신의 훌륭한 학자들도 많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인도 분입니다. 인도를 비롯해서 우리 동양인들이 서양 의학의 한계를 지적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치료는 그저 증상에만 작용할 뿐이다(p81)." 병을 근본에서부터 잡으려면 증상이 아닌, 그 원인을 알아내고 이에 효과적으로 접근해야 하죠. 생체 리듬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를 다스림으로써(조율함으로써) 만병을 치유한다는 생각은 확실히 우리 동양인들이 대뜸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무엇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언제'이다"라는 결론입니다. 하긴 생체 시계 이야기니까 타이밍을 지적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어떤 강박 관념, 혹은 과도한 문제의식 때문에 "무엇"을 먼저 따지지 "언제"의 문제는 부차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분명 있습니다. 또, "결론은 알았으니 일단 됐다"는 식으로 문제 해결을 미루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태도가 잘못이라고 저자는 지적하며, 답을 알았으면 머리 말고 몸이 즉시 실천에 옮길 일이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p112에는 체크리스트가 나오는데 기상 시각, 첫 음료 섭취 시각 같은 걸 꼼꼼하게 묻습니다. 이런 제안을 하는 전문가(?), 책 저자는 여러 명 있었겠으나 사친 판다 박사님은 과학적 근거를 세계 최초로 밝힌 분들 중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다릅니다. 게다가, 학자들이 이처럼 일반인의 일상에 바로 적용할 수 있게 구체적인 자료, 방법론을 제공하는 건 드물기도 하기에 더욱 귀한 내용이겠습니다.

"좋은 습관은 (다른) 좋은 습관들을 더 많이 가져 온다." 이런 속담이 인도에는 있나 봅니다. 여튼 우리 주변에 운동 잘 하는 분들, 채식 위주의 습관을 지닌 분들(너무 극단적인 분 말고요)을 보면, 첫 습관을 잘 들이지 않고는 몸에 붙이기 힘든 다른 행동도 실천에 잘 옮긴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상위 결단, 근본적인 결단"이 중요하며 아주 유익한 출발점으로 작용한다는 뜻이죠.

"호르몬 균형이 회복되면 면역 체계, 수면, 행복감, 성욕이 함께 향상될 수 있다(p115)." 그리고 이 호르몬 균형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바로 생체 리듬의 회복이요, 올바른 타이밍을 찾아 모든 습관을 조율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야식은 위산 역류의 원인이다(p141)." 특히 시리얼 같은 건 혈당 상승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고 같은 페이지에서 저자는 지적합니다.

식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한할 수 있을까요? p181에서 저자는 "8시간 제한법을 영구적으로 할 마음은 안 생기겠지만, 10~12시간 제한은 누구나 손쉽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끔 원칙을 어길 때도 있겠지만 과하게 자책하며 공황상태에 빠질 게 아니라 가급적 빠르게 원래 궤도로 복귀할 것을 권합니다.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특히 오후에 각성 상태를 원할 수 있는데, 이때 물 한 잔이나 카페인 없는 차 한 잔, 과자 등(p205)을 권하는데 그 중에서도 물 한 잔이 가장 좋다고 하십니다.

책에서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건 하루의 언제 우리가 첫번째 "빛"을 맞이할지의 문제입니다. 박사님의 원래 전공 문제이기도 하며 생쥐에다 빛을 쪼여 그의 생체 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다가 이 모든 놀라운 결론을 발견했다는 말이 책 전반부에 내내 나옵니다. 특히 청색광 센서(이 책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인 멜라놉신의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고 하는군요.

저자는 실내 생활을 많이 하는 현대인에게 빛을 언제 얼마나 쪼이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건물 설계 역시 이런 팩터를 충분히 고려한 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p208에 밤과 낮에 따라 얼마나 빛을 쬐게 되는지 잘 정리된 표가 나옵니다. p247를 보면 전자기기에서 내뿜는 빛을 거론하며, 특히 청색광 스펙트럼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쥐들에게 특정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실험 결과를 설명합니다. 유전자가 아예 태어나면서부터 손상되었을 수도 있고, 앞서 말한 대로 켜져야 할 것이 꺼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건 생체가 어떻게 고유의 리듬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뇌는 정보 처리 장치로서 가장 중요하지만, 사실 인체의 모든 세포가 서로 소통하며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다시피했습니다. p69을 보면 시교차 상핵의 개념이 나옵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략적으로" 뇌의 아랫면 중앙, 즉 시상하부에 위치합니다(같은 페이지). 저자는 바로 이 SCN이 일상리듬의 중심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또, "SCN은 빛과 시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고도 합니다(같은 페이지). 책 중후반부는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팁이 잔뜩 나오지만, 그 전에 이 p69 근방을 꼼꼼히 읽어 두시면 이 모든 주장의 학문적 근거를 우리 독자가 매우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동양인들은 머리만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몸을 다스리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팔다리와 몸통, 머리가 모두 하나라는 관념을 갖고 신체 전체의 수련을 강조하는 삶을 오래 전부터 살아왔습니다. 책 머리말에 보면 인도인인 저자가 서양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체험을 어떻게 민감하게 인식했는지 간단한 개인적 술회가 나옵니다. 그런 독특한 개인적 배경이 결국 이 놀라운 연구 성과를 낳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는 건데, 자신이 가진 자원, 때로는 자원인지 아닌지도 모를 고유한 조건마저도 모두 자원으로 승화, 전환시키는 능력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참고해야 할 바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에너지원을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쓰는 방식이 바로 생체시계의 회복이라는 책의 주제와도 서로 통하겠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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