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도 -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 페러그린 시리즈 4
랜섬 릭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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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불교에서는 생로병사의 인과 연으로 오묘한 수수께끼를 설명하려 들지만 정답이 무엇인지는 우리들 중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순간순간 다가오는 힘든 현실의 숙제를 해결하는 데 골몰하고, 대체로 우리는 이런 이들을 성실하고 현실적이라며 칭찬합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정신이 딴세상에 가 있는 양 집중을 못하고 산만한데,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사람들은 혹시 어떤 특별한 사명을 띠고 다른 세상 다른 시간대에서 하는 일이 따로 있었던 건 아닐까요?

"예의 바른 사람들은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게 아니다.(p21)" 그렇다고는 해도 때로는 예의 바른 이들조차 달갑지 않은 엿듣기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이콥은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 적응해 나가지만, 만약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어느 정신병원에나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위태위태한 신세입니다. 이 시리즈에 나오는 "이상한" 아이들, 이상한 사람들이 으례 그렇듯, 이들은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는 주위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세상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분명 남 보기에 이상한 사람들,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는 분명한 목적 의식이 있다는 게 중요하죠. 또, 알고 보면 이 세상이 이런 이상한 사람들의 노력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놀랍습니다. 물론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은 설레며 할 수 있다는 게 페러그린 시리즈를 읽으며 언제나 느끼는 바이기도 합니다.

이상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즉 우리)에 의해 방해 받기도 합니다. "그들을 죽일 수도 있나요?" "그레서는 안 된단다." (p65) 규칙이 그러하며, 우리 생각에도 그 선을 넘으면 이미 세상을 지킨다는 그들의 명분이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합니다. 생명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며 이런 절실한 마음가짐 하나하나가 세상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기도 합니다. 남의 목숨과 재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나쁜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 수가 일정 선을 넘는 순간 세상은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을 이처럼 응원하게 된다는 자체가 우리 독자들에게는 드물고 때로는 벅찬 경험입니다.

돌이켜 보면 세상은 언제나 위태로웠습니다. 특별한 악의를 갖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인간들로 위기에 처했으며, 이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딱히 있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나쁜 자들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며 그들이 응징을 받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세상은 용케 버티며 여기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피부색이 검다고 이유 없는 차별을 받기도 했으며 도저히 용서 못 받을 살상이 끔찍하게 벌어졌고, 그럼에도 반성이란 전혀 없이 보복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도 그들 나름대로는 명분과 합리화가 있습니다. 들어 보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우리도 어떤 식으로건 풀어야 한다"며 필사적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그들의 못된 의지를 막으려는 선한 움직임에 저항하며 "이상하다, 잘못되었다"를 자격도 없이 외칩니다. 참 뭐가 정상이고 이상한 건지 끝없이 헷갈리는 판입니다.

세상을 지키려는 누군가(들)의 몸부림이 없었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진즉에 망했을 터입니다. 페러그린 여사와 이상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소명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압니다. 그 하는 일이 얼마나 막중한데도 밖에서 이들의 분투를 엿보는 우리들은 유쾌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들은 과연 자신들이 세상을 망치는 데 가담하는지, 아니면 작은 무엇이라도 기여하는지, 그저 낄낄거리며 방관하는지 의식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들 누구나 특별해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 첫걸음은 착한 마음의 회복과 냉철하고 정직한 반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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