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겉보기에 노력하고 있을 뿐 - 천만 열혈 청춘의 사고를 혁명한 인생지침서
리샹룽 지음, 박주은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마법을 부르는 동작, 주문 따위를 표현하는 말은 여럿이 있으나 그 중 하나는 conjure입니다. 이 단어는 로마 시대 법정 등 공공장소에 나가 선서, 증언하는 행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사람이 자신의 사적(私的) 공간에서 하는 말과, 여럿 앞에서 행하는 공언(公言) 사이에는 그만큼 큰 무게감의 격차가 있음을 짐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말의 무게가 전혀 없고, 장소에 따라 다른 장르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생은 조만간 법정에 불려 나와 대체 어느 버전의 횡설수설에 자신의 진의가 깃들었는지 "증언"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돈 몇 푼의 지출로 과연 빠져나올 수 있는 곤경이 될지, 사람이 어리석으면 집안에 쌓아 둔 돈 몇 뭉치가 그 행실의 파국을 감당 못 할 지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상만 험악했을 뿐 속에 든 지혜가 전무한 무지렁이가 과연 결정적인 순간에 무슨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고 말이죠.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힘을 갖고 태어난 이(저자의 표현입니다)라 해도, 그 잠재력이 적절한 수련 과정을 거쳐 온전한 사회적 능력으로 계발되지 못하면 그저 영원히 램프 속에 감금된 지니 신세에 그칠지도 모릅니다. 많은 이들은 "어차피 힘을 들여야만 계발이 되는 잠재력이라면, 그게 과연 나의 것으로 불릴 수나 있을까?"라며 노력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어차피 나는 안 돼!" 같은 체념과 부정과는 또 다른 차원의 반응이어서, 무관심이나 적대감이 아닌 단순 회의의 단계입니다. 이런 이들은 자아의 실현과 능력의 각성에 일단 관심은 유지하는 그룹입니다. 저자는 이처럼 노력과 계발, 재발견에 미온적인 태도만을 여태 보인 이들에게, 꽤 자극이 될 만한 희망어린 주장을 펼칩니다.



"당신은 여태 놀라운 일을 많이 이뤄 왔다! 다만 당신이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혹은 대학에 들어온 후, 친구들 여럿과 모여 집단 과제를 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라. 매번 성공적이진 못했어도, 몇 번 정도는 놀라운 성과를 내었을 것이다." "혹은, 수능 시험은 어땠는가? 당신은 과연 지금 다시 수능을 치면, 19세때의 첫번째 시련과 관문에서 보여 줬던 그 놀라운 집중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재현할 수 있겠는가? 이미 그때 절박함이 무의식에 작용한 기적으로, 현재의 학벌을 마련했던 건 아닌가?" 책에서 저자분이 제기하는 질문은 여럿으로 변형, 응용할 수 있습니다. 혹은, 현재 영위하는 자격증이라든가 직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른 시험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시행하는 공인 자격 고사란 난이도도 높고 출제 범위도 광대합니다. 어쩜 그 어린, 혹은 젊은 나이에 (비록 벼락치기일 수도 있으나) 그 많은 내용을 머리에 담고 이해하며 적용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내가 그 시험을 통과하는 게 당장 버겁고 귀찮다며 게으름을 피웠다면 지금쯤 어디에서 뭘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저자는 답합니다. "절박한 심정이 무의식에 들어가 결국 기적을 낳았다." 남들 다 하는 일이라고 우습게 볼 건 아닙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 간단한 통과의례를 못 겪어 내어 훨씬 우스운 모양이 된 이들도 많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그 열등감을 극복 못 한 나머지, 괴상한 패턴의 반인륜적 소통을 시도하다가(자신이 이러고도 무사히 넘어가는지 아닌지 스릴 테스트), 공권력에 의해 아예 치명적인 불이익 선고를 당하며 그러잖아도 부실한 커리어를 불가역적으로 망치는 한심한 인생도 적지 않습니다.



무의식에 내재한 잠재적 능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졌고, 이를 발현시킬 기회도 아직 어느 나이에나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가로막는 건 부정적 사고의 습관, 몸에 밴 게으름, 어설프고 근거 없는 선민의식(선민이 아니라 천민이라고나 해야),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강박적 체질적 악습 따위입니다. 무의식에 내재한 무서운 힘을 나의 것으로 끌어오는 순간, 한때는 불가능하리라 체념했던 경지에 어느 순간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방합니다. 전에 내가 하지 못했던 생각과 아이디어를 지금 떠올릴 수 있고, 남에게 받지못한 인정과 크레딧을 얻어내며(페쇄 집단의 낙오자 품앗이는 제외), 지금까지 벌어 보지 못한 액수의 수입을 거둘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얼마나 큰 희망이요 자기 능력의 확인이겠습니까? 주부는 비록 가난할망정 살림살이를 키워가는 재미, 애들이 하루하루 커 가고 적당히 머리가 굵어가면서 효도 시늉이라도 내는 보람에 세상 부러울 바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태어나 옆지기를 만나 2세를 낳고 키우는 일부터가 기적이요 공동체에 대한 중대한 공헌입니다. 이 모두가 나를 긍정하고 세상을 밝게 보는 데서 첫걸음이 떼어집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내가 나를 올바로 지휘하는 삶에 눈뜨는 그 기적을 만남에 있어,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나의 생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바로 최고의 기적이며, 인간이 신의 경지로 접근하는 몸부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