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미 와 있는 미래
롤랜드버거 지음, 김정희.조원영 옮김 / 다산3.0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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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의 <미래 충격> 등 여러 고전들은 지금도 널리 읽힙니다. 노환으로 작년에 이미 타계한 분의 책이, 요즘의 첨단 추세를 시원히 해명하거나 곧 다가올 미래를 예견해 주리라는 기대 때문이 당연히 아니죠. 그가 말한(말했던) "미래"는 벌써,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이거나, 아니면 이미 과거에 편입된 시간들일 겁니다. 그런데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 그의 예견이 이처럼이나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놀랄 만큼 많은 대목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의 예견은 과거에 속한 사항이 아닌가? 우리가 다시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 이처럼 정확한 예언의 맥락을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가고 없지만(대신 그의 따님이 있긴 하죠ㅋ), 이 신통한 책의 취지를 다시 탐구하면, 혹시 "후편"에 대한 내용 짐작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입니다. 토플러뿐 아니라 영역을 달리하는 다른 모든 고전도 마찬가지죠. 뻔한 소릴 갖고 혼자만 깨우친 진리인 양 부풀려 떠드는 건 바보들이나 일삼는 짓입니다. 현명한 사람, 혹은 현명해지려 노력하는 사람은 미래의 향방에 주시합니다.

이 책은 앨빈 토플러에 버금간다 할 덴마크의 저명한 미래학자 롤프 옌센이, 믿어지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에 저술한, 어떤 의미에서는 "고전"입니다. 21년 전이 먼 예전이라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21년 전이라는 시간의 핸디캡을 딛고 이처럼이나 미래(즉 현재)를 정확히 내다보았다는 그 통찰력이 놀랍다는 뜻에서입니다. 만약 롤프 옌센이 누군지도 모르고, 21년 전의 저술임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있다면, 1) 담론이 시원하다. 다른 이론가의 체계를 엿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야에 의해 "이야기(이 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미래는 이야기의 세상이다, 이 정도로 한 줄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를 풀어놓고 있다. 2) 많은 대중 경제경영서, 혹은 자계서 등이 요즘 써 대는 주장과 내용이 비슷하지만, 고품격의 철학이 전 내용을 관통한다 3) 디테일에는 다소 동의가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미래의 대세가 무엇일지에 대해, 실감나는 정신 무장이랄까 시야 전환을 힘있게 촉구해 준다, 뭐 이 정도 반응들이 나오지 않을지 짐작합니다.

21년 전에 쓰여진 책치고는 놀랄 만큼, "4차 산업 혁명"이란 말만 본문 중에 등장하지 않을 뿐, 이 책은 아날로그식 감성이 사회 전반의 산업적 지향을 "다시" 지배할 미래를 생생히 그려냅니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이른바 "제3의 물결"이라 일컬어지던, 정보화의 도도한 흐름이 세계를 휩쓸 시절이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가정마다 PC가 보급 안 된 곳도 있었을 시절이고, 우리가 지금 TV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접촉하는 그래픽 인터페이스(MS 윈도라든가)가 아직 결정판이랄 만한 게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정보화 사회가 채 성인기에 접어들기도 전이었는데, 옌센 박사는 "꿈과 스토리와 낭만이, 산업화 시대가 안긴 기계적 효율과 마음의 상처를 모두 덮어버릴 세상"을 논하고 있는 거죠. 물론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리로 향해 모두가 발버둥친다는 것, 이제 그 지점이 대세가 되었다는 것, 이 포인트를 잘 공략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고 기업들이 혈안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동의합니다.

옌센 박사는 놀랍게도, 인공지능이 등장하여(이 말은 물론 이보다 훨씬 앞선 시점부터 등장했었지만, 옌센 박사님이 거론하는 범주는 훨씬 구체적입니다. 게다가 지금 구글(이 책이 쓰여질 무렵 이 회사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과 애플, IBM 등이 컨셉화한 내용[상용화했든, 아니면 마케팅 구호에 아직 머물든 간에]과 거의 일치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합니다. 물론 한 번의 대세 전환기에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는 건 지난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운 바입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사람들이 잃은 일자리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에게 "로봇세"를 물려야 한다는 등의 절박한 논의가 나오는 사정을 반영하여, 아직 그런 위기를 꿈도 꾸지 않았을 무렵의 독자들에게 미리 위안을 건네는(ㅎㅎ) 투로 책을 쓰는 분은 당시에는 한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이는 저자가, 매우 vivid하게 미래를 내다보고 확신을 가진 채 책을 썼다는 방증이죠.

제3의 물결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정보화의 물결이 일상과 문명 전반에 가져다 줄 편의만 꿈꿨을 뿐, 실직이니 직업의 종언이니 하는 걸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뿐만 아니라, 언제나 그래왔듯 이 대세가 적어도 반 세기는 지속되리라 보았죠). 박사님은 정보화사회가 일찍 종말을 맞고, 본인이 내다본 "드림 소사이어티"가 빠른 속도로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장담합니다. 제가 눈여겨 본 건, 산업화 사회건 정보화 사회건 간에, 이런 변혁의 물결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는 식으로 저자께선 보고 계신 대목이었습니다. 그럴 만도 하죠. 정보화 사회는 그간 사람들이 정을 붙이고 존재의 곁에 가까이 두며 위안을 구했던 많은 추억을, 메마른 부호 덩어리로 대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육체 노동의 상당수를 자동화 시스템으로 갈아치우기도 했지요(제가 한 달 전쯤에 리뷰를 쓴 <더 박스>라는 논픽션에 그 실상의 상징적 일부가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산업혁명(1차, 2차)의 물결은 수공업 장인들의 설 자리를 대거 빼앗았습니다. 러다이트 운동 같은 것은 그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 심각한 파문 중 하나였고요.

스토리를 만들고, 팔고, 산다! 이는 2년 전쯤 제가 이미 읽고 리뷰도 여기 남겼던 <르네상스 소사이어티>에도 나옵니다(이 책이 그 책보다 훨씬 앞서서 저술되었습니다만). 요즘은 아이들 수학 커리큘럼(국가에서 기획, 집행하는)에도 이 개념이 반영되었을 정도로, 파편적이고 냉정한 지식 덩어리는 미래(현재) 사회에서 퇴출되어 가는 게 현실입니다. 저자는 잃어버린 꿈과 낭만, 그리고 가슴을 가득 물들이는 "스토리"야말로, 사람들이 진정으로 소비하고 향유하는, 그래서 존재의 일부로 편입하고 그만큼 더 행복해지는 궁극의 상품이자, 모두가 제작자로 나설 수 있는 산업의 장이라고 말합니다. 기업 역시, 고용주가 피용인과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쌓았던 과거와 달리, 생산의 본체를 이루는 만인 경영의 시대가 열려, 종업원의 모임이 곧 기업이 되는, 계급 구조와 산업화 사회의 본격 해체를 선언합니다.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소비하는 세상에, 독점적 대량 생산 설비가 무슨 소용이겠냐는 뜻입니다. 이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저자는 "마르크시즘은 이 점에서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도 하는 대목이 있는데, 아마 요즘 독자들은 무슨 소린가 싶을 겁니다. 물론 이 책은 소련 붕괴 한참 후에 저술되긴 했지만요.

학교 다닐 때 저는 어느 미국인 저자가 쓴 책을 부교재로 삼았던 수업 시간에, "예컨대 코카콜라 광고 같은 건 아무런 실용적 정보를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있지 않다. 그럼 소비자는 왜 이런 광고를 소비하며, 기업은 무슨 까닭으로 거액을 들여 집행하는 것일까?" 같은 질문(과제)을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신입생이었기에, "경제학 논리에만 파묻혔기에 이런 어리석은 의문이 드는가 보다"하고 넘겼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엉뚱하게도 "그래, 이런 건 다 쓸데없는 사회적 비용에 지나지 않아"라며, 교재의 취지에 맞게 세계관까지 새로 세팅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영문판으로 대략 십 년 전에 읽고서야, 학부생 시절의 그 당돌한 반발이 오히려 정당했다는 각성이 들더군요. 그 광고는 (방향이 건전하든 그렇지 않든, 꿈이든 환각이든 간에) 시청자에게 "스토리"를 팔고 있었던 게(심지어 지금도 그렇죠) 분명하고, 오히려 시대를 앞서갔던 셈입니다. 나만의 꿈을 정직하게 간직하고, 타인에게 희망과 긍정을 불어넣는 능력으로, 미래에는 서열(!)을 매기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 뜻에서, 저자는 "드림 소사이어티야말로 그 이후의 단계가 없는, 사회 발전의 궁극적 귀착점"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곱씹을 만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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