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법정에 서다 - 허승 판사의 공부가 되는 법과 재판 이야기
허승 지음 / 궁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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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관계가 불법이기 때문에, 원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법이 아니라 민법 746조에서 이런 청구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하죠. 단, 수익자쪽에만 그 불법원인이 있을 경우에는 당연히 그에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계약은 계약이고 법은 법 아닌가?" 같은 주장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법은 특별히 이런 경우를 조문으로 따로 규율한 거죠. 이것 비슷한 게, 민법은 제2조에서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 그 권리 행사를 들어주지 못하게 정해 놓고도 있습니다. 또 103조의 경우,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에 어긋날 경우 역시 권리 행사 자체를 부정한다고 명정합니다.

대법원1999. 6. 11판결99도275의 경우, A가 B더러 C에게 뇌물로 전해 달라고 부탁한 경우, B가 C에게 주지 않고 마음대로 써 버렸다고 해도, 이런 행위가 A에 대한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두고, "법은 불법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법언(法諺)에서 그 근거를 찾기도 하죠.

그런데 과연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불법이 아닌지는 "국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결코 아닙니다. 자신은 전혀 죄가 안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명예훼손을 저질렀을 경우, 고의가 없다고 항변하거나, 취지가 옳으니까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경우 개인의 내면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세상에 죄 짓고 벌 받고 감옥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죄를 지어야지. 저놈에게 해코지를 해야지." 이렇게 또렷한 의식으로 다짐을 해 가며 어떤 행동에 옮기거나 하는 경우는 백에 하나도 찾기 힘듭니다.

내심으로는 다 끊임없이 합리화를 하는데, 이게 합리화인 줄 희미하게나마 의식을 하는 인간, 전혀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줄 모르는 인간, 아예 무슨 의적질이나 하는 줄 착각하는 인간 등 그 고의의 정도는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바가 모자라다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산다고, 머리 속에 견강부회 회로 말고는 들어선 게 없다는 이유로 다 무죄 방면을 해 줄 것 같으면, 세상에 죄인은 아마 한 사람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전 모 스포츠 선수가 한 여성 직업인(유명인)에 대해, 평소에 습성이 어떻느니 행실이 어떻다느니 하며 메신저상으로 길게 전 여친에게 늘어 놓은 것이, 전파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바로 기소를 하려 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설령 사적인 공간에서 나눈 대화라고 해도, 얼마든지 명예훼손을 이룰 수 있고 한국의 사법 제도는 대개 이런 경우 엄격히 취급하는 편입니다. 저 선수의 경우와는 또 별개로, 보물선 따위의 허랑방탕한 꿈을 꾸는, 정신이 맑지 못하고 지려천박하며 사회경험도 현저히 부족한 자가, 하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 가치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미성숙한 인간은, 일종의 정신적 근친상간의 쾌감에 빠져 영원히 정도에 복귀할 수 없는 수준이라 봐야 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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