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읽는다 지리와 지명의 세계사 도감 2 지도로 읽는다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노은주 옮김 / 이다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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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리뷰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이 책은 "지명"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매 항목마다 언급, 설명이 되는 게 단연 장점입니다. 우리는 여행책이나 역사서를 읽을 때 처음 접하는 지명에 대해선 당연히 궁금함이 생깁니다. 하지만 찾아볼 곳도 마땅찮고 인터넷에서 알아보자니 왠지 믿음도 안 가는 게 보통이죠. 그럴 때, 2권으로 나뉜 이 책을 넘겨가며 듬직한 상식을 챙길 수 있어 참 좋습니다.

p58에 "바다의 여왕" 찰스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본래는 "찰스타운"이었으나 독립전쟁 이후 저리 개명이 되었다는 설명인데 그 사정 말고도 세월이 흐르며 음가가 변한 까닭도 있지 않겠나 생각했으나 그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찰스 1세가 아닌 2세의 이름을 땄으므로 대략 백 년 정도 후(명예혁명이 1688이므로)인 1783년에 정식으로(주 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이렇게 철자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링컨의 연설(1863)로 잘 아는 "게티스버그"의 경우 1780년에 해당 도시를 설계한 제임스 게티스의 이름을 땄다는 친절한 설명도 책에 역시 나옵니다. 찰스턴이 또 중요한 이유는 남북 전쟁이, 바로 남군 측의 찰스턴 포격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발발했기 때문이죠.


"미국은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이지만 그 앞 시기에는 신대륙 변방의 작은 신생국에 불과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한 지배력으로 지구인의 사소한 일상에까지 (소프트파워를 통해)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힘을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일 어린 학생들에게는 꼭 필요한 설명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p53에 보면 지도가 나오는데, 저희가 중등 교육 과정에서 배울 때도 미국 영토의 확장 과정을 묘사한 이런 지도가 꼭 제시되었더랬습니다(교과서는 아니고 사회과 부도라든가 참고서에). 단지, 당시에는 "구입" 같은 어색한 용어가 쓰인 게 달랐죠. "구입" 자체가 어색하다는 게 아니라, 사무용품 구입도 아니고 특정 필지의 땅을 국가 사이에 매매할 때 그런 용어를 쓰는 게 어색했다는 소리인데, 아마도 일본식 용어의 잔재였을 겁니다. 이 책은 하물며 일본 저자가 쓰신 책인데도 "(프랑스 나폴레옹 1세로부터의) 루이지애나 매입", "멕시코로부터 매입" 등 한국인의 감각에 맞는 더 자연스러운 말로 번역이 이뤄진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단, 1853년에 이뤄진 "개즈던 구입(이것도 물론 이 책처럼 '매입'이 좋겠습니다만)"이 명확히 구별 안 된 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그 정도는 일러 줘서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역시 이 책은 취지가 취지이다보니, 왜 버지니아 주의 이름이 "버진"에서 유래했는지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이뤄져서 매우 좋았습니다. 저희 선생님 같은 경우는 마돈나의 히트곡 "라이크 어 버진"에서와 같은 뜻이라며 (도에 지나친) 자세한 설명까지 하던 기억도 나는군요 ㅎㅎ "뉴욕"의 이름도 그 "요크 공"이 누구인지에까지 설명이 이르는데 물론 오라녜 공(중에서도 영국 왕 제임스 2세가 겸직한 그 직위. 물론 이후에 등극한 사위 윌리엄 3세가 아니죠)을 뜻합니다.


p42에도 흥미로운 지도가 나옵니다. 저는 예전에 케네스 C 데이비스의 대중서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미국의 역사>란 책을 읽었는데(당시에는 성인용 포맷이었고 지금은 없어진 고려원에서 출간했었으나, 지금 나온 책은 타 출판사에서 어린이용으로 다시 쓰여진 것이네요), 여기 보면 "프렌치 인디언 전쟁은 프랑스인들과 인디언이 서로 싸운 게 아니다"라는 재미있는 서술이 등장합니다. 이 책의 p42에는 전쟁의 전과 후 미국의 영토 획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다 명확하게 도시(圖示)가 이뤄졌습니다. 거대한 프랑스 식민지가 영토의 좌안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면 미국이란 나라의 형세가 얼마나 옹색했을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브라질의 이름은 왜 대체 브라질인지 궁금해한 적 없을까요? 새삼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의 경우 웬만큼 지식이 쌓이다 보면 어원이 대충 짐작이 갈 수 있으나 브라질의 경우 도통 기원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적색 염료의 원료인 브라질나무 홍목(그러니 고유명사인 셈입니다)에서 유래했다고 명확히 그 기원을 밝혀 줍니다. 같은 페이지 바로 아래 "리우 데 자네이루"의 경우, 대강은 무슨 뜻일지 형태만으로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태평양은 지구를 모두 삼켜 버릴 정도로 거대한 바다이다." (p90) 역시 같은 동양인 저자답게 미야자키 선생님은 이 대목에서 곤여만국전도를 언급합니다. 물론 마테오 리치의 번역 "태평양"에 대한 서술인데, 하긴 이 정도 중요한 항목이면 서양 저자라고 해서 그냥 넘길 수도 없겠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보면 이 미크로네시아니, 폴리네시아니 하는 이름들이 (그 뜻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 붙여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집니다. 이 책도 역사책이다 보니 사관의 스탠스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길 만한데, 제가 읽어 보기로는 대체로 진보 사관에 조금은 기울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좌파로까지 규정될 정도는 아니고, "식민지, 제국주의, 패권" 등의 용어례에서 다소는 비판적인 색채가 감지된다는 정도입니다.



특히 p102 이하에선 아프리카 근대사가 이어 서술되는데 대항해 시절부터 에스파냐, 포르투갈 등의 침략이 두드러졌고 이후엔 제국주의 열강들이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죠. "세네갈"이 강(江)이라는 뜻인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여행 준비 과정이 결국은 집필 동기가 되었다고 저자 스스로도 밝히신 적 있고, 그 티가 나는 게 세네갈 수도 다카르를 언급하며 유명한 자동차 경주인 "파리 다카르 랠리"를  거론하는 대목 등에서입니다.

이 책은 지리의 구도를 따라 움직이지만 엄연히 "역사 도감"입니다. 그래서 오스만 투르크로 주제를 옮기면서도 따박따박 시대를 거슬러올라가서는 해당 제국의 굴곡 많은 사연에 자연스럽게 시선을 줍니다. p125에 보면 15세기의 오스만 제국을 구성한 "3대 세계"라는 이름의 지도가 나오는데, 물론 유럽-(소)아시아 - (북)아프리카입니다. 해당 지도에 큰 글자로 "비잔티움 제국"이라 표기된 게, 아니 망한 게언제인데 이 대목에서 나오나 싶을 수 있지만, 오스만 제국의 정체성은 비잔티움의 정복자, 혹은 계승자로서의 위상을 결코 배제하고 탐구할 수가 없습니다. 제국이고 황제이기 때문에 타 대륙, 타 민족, 타 신앙의 관리자, 수호자 노릇까지 (자랑스럽게) 겸해야 하는 거죠. 역시 이 책의 기획 의도가 무색하지 않게, 비잔티움이 이후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뀐 경위에 대해 설명이 또 나옵니다. "에이스 텐 폴린(εἰς τὴν Πόλιν. "텐"은 정관사이고 "폴린'은 우리가 아는 "폴리스"의 변화형입니다)"이 원 말인데, 보시다시피 당연히 그리스어입니다. 이게 음가가 변해 "이스탄불"이 된 건데, "하드리아노플"이 "에디르네"가 된 사정도 비슷합니다.

본래는 아랍 세계에서도 오스만 투르크가 맹주 노릇을 했습니다. 사우드 왕가가 지금은 성지(메카 혹은 마카)의 수호자를 자칭하며 이란과 으르렁대지만 당시만 해도 대 술탄의 위세에 눌려 찍 소리도 못하고 지냈습니다. 오히려 투르크의 술탄이 다스리던 시대에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도 자제되었고(물론 사파비나 카자르 왕조의 권위가 오스만을 견제했던 덕도 있지만), 유대인들은 하물며 무슬림과 대적할 엄두도 못 내었습니다. 이러던 게 지금은 삼면 전쟁 직전까지 왔으니.... (지금 우리는 북한 문제 때문에 관심도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중동 정세가 훨씬 심각합니다. 트럼프가 두루 신경을 쓸 여력이 없으니까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구는 거고, 김정은도 이 점을 알고 지금이 그나마 유리하게 협상을 맺을 찬스다 싶었던 겁니다) 여튼 이 책은, 왜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인지" 실감 나게, 그것도 지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납득시켜 주는 점이 좋습니다. (특히 이 책 p158 이하를 주의 깊게 읽어 보세요)

저희 때에도 동남아시아 역사를 (길게는 아니라도) 따로 배웠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전문 연구 인력이 부족하여 지명, 인명 표기가 매우 어색했습니다. 이 책은 특히 현지어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하는 점이 두드러지게 돋보이고, 무엇보다 국립국어원에서 권고한 안(案)에 충실합니다. (예: 믈라카 해협, 사일렌드라 왕조 등) 저희 때에도 부남(扶南)이란 말이 교과서에 나왔더랬는데, 이 책에서는 "산(山)'이란 뜻이라고 역시 설명이 친절하네요. 전성기에 얼마나 이슬람 세력이 극성을 이뤘으면 믈라카 왕이 스스로 회교로 개종까지 했을까 싶은데 이 흔적은 지금도 말레이시아 정치, 종교 분포도를 보면 역력합니다. 그뿐 아니라 저 멀리 페르시아에 근거를 마련한 일 칸국 역시 몽골인들이 팔자에 없는 알라신까지 자청해 믿었고(이 사항은 1권의 p163 이하를 참조하십시오), 이 점은 투르크의 술탄들도 다르지 않았죠.



제가 개인적으로 이 책 통틀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제5장입니다. 제목이 뭐냐 하면 "팽창하는 중화 세계, 국가인가 문명인가?"입니다. 몇 년 전 큰 히트를 친 <진격의 거인>이 사실 일본인들의 중국에 대한 집단 공포를 반영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아베 신조 현 총리대신이 저처럼 오래 집권하는 것도 일본 국민들의 대중(對中) 견제 심리가 크게 발동해서입니다(바꿔 말하면 일본 민주당 정권으로는 중국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역부족이라는 판단). 동양인 저자의 집필 체제치고는 좀 특이하게도 중국사가 맨마지막에 배치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고려, 조선에 대한 언급도 있고, 특히 조선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침 햇볕이 선명한 땅"이라고 하시나 ㅎㅎ 글쎄요. 여튼 일본의 건국 주체가 한반도를 거쳐 이주한 이들이란 점은 분명히 밝힙니다.

이 책 마지막 문단을 잠시 인용할까 합니다. ".. 중국은 현재 공산당이 일당 지배를 유지하면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 사이의 모순(이 용어는 진보 진영 학자들이 쓰는 맥락과 완전히 같아요)이, 공산당이 내세우는 애국주의에 가려져 있어 향후 행방은 불확실하다." 이 문장만으로도 저자의 중립성, 공정성과 깊은 숙고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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