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테라
소현수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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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SF 읽으면서 가장 이해가 안 되었던 게, 왜 우주를 "스페이스"라고 표현하는지였습니다. "스페이스"는 그냥 "공간"인데, 그게 우주를 뜻하려면 앞에 다른 한정어가 붙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같은 생각. 이는 우리 한자 문화권이 한 음절 단어를 단어로서가 아니라(예: 물을 그냥 "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다못해 물질로서는 "수분, 마시는 물이라면 "음용수" 등으로 꼭 앞뒤에 말을 덧붙이죠) 형태소로 교묘히 활용하여 의미 분화를 이루는 관행과 저쪽 사정이 꽤 대조적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저쪽 사정을 폄하할 건 아니고, 저쪽은 저쪽대로 pragmatic에 기대어, 혹은 일종의 "제유법"으로 사상의 분기를 표현하는 겁니다. 이런 경향은 독일어에서는 좀 덜하고, 프랑스어가 아주 심한 편이죠. 영어는 후자의 영향을 받은 거고.

아무튼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쓴 SF를 읽으면, 적어도 이런 번역상의 오해, 미숙 때문에 괜한 착오를 할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번역은 아무리 잘 해도, 그 최상의 포맷 속에서도 벌써 독자를 착오로 이끄는 겁니다. 의역을 통해 말을 길게 늘이면 원문의 간결한 함축미가 확 줄어듭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역주를 단다 한들, 대체 원문만의 그윽한 맛이 전달될 길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솜씨와 센스, 상상력, 과학적 지식 등의 기반이 탄탄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많이 활약해야 할 필요가 따로 있다는 거죠. 한국어만의 감각과 풍미, 우리 동시대인이 공감하는 박자 속에 표현된 sf의 세계가 과연 어떨지 아직 우리 독자들은 본때를 보지 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밀리터리 sf 장르에 대해 잘 모르실 법한 분들도, 유사 내용 게임 탄생의 모태가 된 폴 버호벤 감독의 <스타십 트루퍼스>는 익숙할 것입니다. 이를 지루해하는 이들은 내내 얼떨떨한 기분으로 관람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이런 명작, 볼거리가 다 있냐면서 정줄을 놓고 빨려들더군요. 씬과 시퀀스가 액션으로만 채워질 때, 이에 특별한 선호나 공감대가 없는 관객은 이를 쏜다, 부순다, 죽인다 같은 텍스트로 만 바로 해석, 정리하기 때문에 아주 지루해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 <프린테라>처럼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a가 품에서 총(혹은 무슨 중화기라도)을 꺼내 b를 쏜다, 파괴한다, 내장을 조각낸다(...) 같은 단순한 동작 묘사의 반복이 아니라(불가능하죠. 누가 그런 걸 읽겠습니까?), 작가만의 찰진 감각으로 영리한 묘사가 이어지면 사정이 또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장르 문학이란, 그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여태 좋아하지 않았기에) 이번의 소비가 처음으로 뜨는 한 술인 독자에게는 말입니다. 이후, 이걸로 충분하다며 다시는 같은 장르를 안 접할 이들도 있겠으나, 심지어 이 경우에도 이 작품만은 성공을 제한적이나마 거둔 셈입니다.

어떤 사람은 패기 있고 가능성 창창한 작품에 대해서도 천박한 정치적 계산 끝에 생각없는 폄하를 하며, "까다로운 독자" 티를 남들 앞에(그래봤자 지극히 미미한, 똑같이 무지한 거짓말 수다쟁이들에 불과하지만) 꾸미려는 목적으로 온갖 희한한 거짓 감상을 다 지어내는 걸 다 봤습니다. 이런 사람은 작품을 읽고 내실을 가꾸려는 게 아니라, 있지도 않은 허상을 꾸미고 가당치 않은 자기 만족을 위해 혼자 연극을 벌이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자꾸 반복해 봐야 그 속에서 파묻혀 즐거운 건 자신뿐인데도 이 정도면 남들도 같이 속겠거니 어리석은 착각에 빠지는 거죠.

군더더기 없고 클리셰(장르소설이니까요)의 깔끔한 활용으로 독자에게 최소한의 노력으로 경제적인 감흥을 안기는 진행이 참 좋았습니다. 우리가 데이빗 카퍼필드의 쇼에 찾아가는 건 정말로 바보 같이 속고 싶어서가 아니라(속는 게 기분 좋은 사람도 있을까요?), 익숙한 경로 속에 매번 맛보아도 묘한 쾌감이 느껴지는 체험을 반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반전도 알고 줄거리도 훤히 꿰는 명작을 두 번 세 번 읽는 이유도 대체로는 같습니다. 이걸 모르고 엉뚱한 데서 잘난척(도 아닌 못난 척)을 늘어 놓는, 중화요리 맛집에서 캐비어 안 나온다고 헛소리나 늘어놓는 건 참.

"테라포밍"은 우주 식민지 개척의 하위 장르로서, 지구와 똑같은 환경 여건을 갖춘(우리 어렸을 때는 이런 뉴스가 참 자주 전파를 탔죠. 찾았다는 소식부터 여전히 어렵다는 '현황"만을 전문가의 입을 통해 재확인하는 허탈한 "교양 뉴스"까지) 행성 알아내기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란 걸 알게 된 후, 자연스럽게 작가(만화가, 웹툰 작가들 포함 - 이제는 당연하지만)나 독자들 머리에 떠오를 법한 생각입니다. "어려우면, 황무지 개척하듯 아무데나 들어가서 하나 개척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개척에도 한계가 있어서 최소한 중력 조건이나 행성 표면에 도달하고 복사되는 에너지 준위는 일맞게 충족되어야죠. 문제는, 이런 장르에서 테라 포밍 "과정"이 꽤 잔인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기에, 어린 독자들에게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저희 어렸을 때와 달리 지금은 정보를 얻는 원천이 너무 많고, 자극을 왕성히 받아 머리가 활발히 작동하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불건전한 쪽으로 자꾸 자극을 원하는 것도 위험천만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내장"이 종종 목격(?)되는 등 고어 풍이 도처에서 나오고, 투쟁 과정도 잔혹하고 살벌한 면이 있습니다만, 이는 장르 경향을 생각할 때 뭐 다른 방법이 없었을 듯도 합니다. "야후"라는 종족명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에는 고전, 신화에서 영향을 받은 작명이 많이 눈에 띄며, "대충 거머리탄으로 부르기로 했다(p205)"는 등 한국적인 단순화 센스, 소탈한 구어의 매력도 웃음을 부릅니다. (꼭 SF가 아니라도) 밀리터리 장르에서 이런 구어(막말?)의 털털한 매력이야말로 독자(나 관객)를 사로잡는 요소 중 하나죠.

여전사의 역할이란, 아무리 장르물을 많이 봐서 머리에 인이 박인 독자라고 해도 또 볼때마다 눈이 갑니다. 여기서는 엘리가 나오는데.. 예전에 만화가 박무직은 영화 <컨택트>를 보고 조디 포스터의 "우는 연기"를 그렇게나 맹렬히 질타하더군요. 울지 말라는 게 아니라(안 우는 것도 물론 중요 옵션이 됩니다) 아무리 장르 속이라고 해도 뭔가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저 영화에서 여배우는 물론 감독까지 함깨 욕을 먹을 상황이었고, 저 역시 그 사정없는 혹평에 속이 다 후련해졌더랬습니다. 엘리를 꼬옥 안아주는 그, 왜 우는지 알겠다는 그이지만 글쎄요. 제가 구태여 불만이 있다면 (다른 클리셰 말고) 바로 여기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두고 반전이 상쾌하다고들 많이 하십니다. 반전은 잘 맞히면 맞히는 재미가 있고, 아무래도 너무 내가 잘 아는 반전이 나올 것 같아 예측은 최대한 자제하고 작가가 세팅한 대로 착하게 스토리만 따라가든지, 캐릭터에만 푹 빠지겠다고 결심하며 나중에 가서야 (독자로서의 능력, 관록을 푹 죽인 후) 다른 평범한 독자들과 함께 화들짝 놀라 "주는" 그런 독자도 있습니다. 본디 장르물은 정말 신기하고 놀라워서 읽는 게 아니라, 공감대 맞는 이들끼리 막 놀란 척하며 같이 노는 맛에 읽는 겁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 작품, 참 재미있습니다. 박카스 마신다고 정말 몸이 좋아지거나 자양강장 효과가 팍팍 나는 게 아니라, 시원하게 목을 축였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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