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 - 신의 입자를 찾아서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0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엮음, 김일선 옮김 / 한림출판사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힉스! 이미 그가 자신의 대담한 가설을 발표했을 당시부터, 진지한 다수 과학자나 저널에선 그의 입장이 단순한 가설을 넘어, 언젠가 발견되고야 말 확증에 의해 뒷받칭될 진리라고들 여겼습니다. 2013년 CERN이 보유한 입자가속기(LHC) 덕분에 문제의 입자를 발견하고, 그의 이론은 드디어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노벨 상이란 건 물론 도널드 트럼프도 내심으로는 원하는 지상 최대의 영예이지만, 물질계 궁극의 원리를 구명하는 이론이 (현재까지로선) 심각한 보완이나 대체의 필요성 없이 그대로 그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는사실만으로도, 그의 업적은 일개 상 따위의 존부에 의해 경중이 가려질 만한 게 아닙니다.

책 제목은 그저 "힉스"입니다. 여태 미디어에 의해 "신의 입자"로 다소 거창한 별명이 붙은 이래 많은 대중서들이 출간되었지만, 어떤 책은 교과서나 다를 바 없이 건조한 설명 일색이고, 어떤 책은 주제에서 이탈한 잡담의 비중이 더 높습니다. 주제에 충실하면서도 내용의 깊이, 정합성도 희생하지 않는 대중서가 필요한데, SA 시리즈가 유독 힉스라는 물리학자 한 분에만 초점을 두고 평소와 비슷한 볼륨으로 새 책을 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힉스라는 주제, 글감보다, SA 시리즈의 브랜드 파워(?)가 더 큰 기대를 부르는 요인인 듯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만큼 이 기획에 대해 신뢰가 크고 여태 만족도 해 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고교 교육 과정에서 전체가 두 파트, 즉 실수부와 허수부로 나뉘는 복소수란 범주를 배운 적 있습니다(요즘 아이들은 안 배울 수도 있겠네요). 엄연히 실수도 복소수에 포함되며, 단지 허수부의 i 계수가 0일 뿐입니다. 실제 세계에서, 제곱할 때 음(-)이 되는 수는 존재하지 않기에 저걸 허수(imaginary number)라 이름 붙인 건데, 이 책 1-2 "힘과 기본 입자 사이의 게이지 이론"을 보면 특히 p49이하에서 왜 허수가 도입되어야 하는지 잘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 이 분야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 허수는 "허(虛)"하기는커녕 그보다 더한 실감으로 다가올 수도 없을 만큼 절실(實)한 도구이고 존재입니다.


"두 파동의 위상이 같으면 간섭에 의해 진폭이 커지고, (중략) 위상이 다를 때는 두 파동의 차(差)가 도달하므로 전자의 수가 줄어든다." (p49)

이 문장의 원문은

Where  the  waves  are  in phase  the  interference  is  constructive and  many electrons  are  counted  at the second screen; where the  waves are  out of  phase  destructive  interference  reduces  the  count. 

입니다. 원문에는 없는 부분도 이 한국어본의 역자께서 친절히 행간을 보충하여 더 읽기 쉬운 문장이 되었음을 특히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래서 한림출판사의 기획을 언제나 신뢰할 수 있다는 거고요. 사실 학교 다닐 때 고교 물리만 충실히 배웠어도 이 문장은 어렵지 않게(혹은 당연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겁니다.

여튼 이 대목에서 게이지 대칭이 무엇이고 양자장이 무엇인지 필자(헤라르트 엇포르트. 네덜란드 학자라서 영어권 이름에만 익숙한 한국에선 발음이 어려운데도 이처럼 표준 외국어 표기법에 맞추어 정확히 적어 주셨다는 게.... 힉스의 표준 모형 이론이 주제여서만은 아닐 겁니다 ㅎㅎ)는 쉽고도 명확하게 서술합니다. 어렵게 풀자면 한도끝도 없는 사항인데,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가독성과 신뢰도를 동시에 이룬다는 게 과학 서적에서는 매우 까다로운 과제입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이토록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관되이 잡아 주는(독자에게 만족시키는) 책은 SA의 이 기획 말고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럼 허수가 왜 나왔는가. 위의 번역문에도 그렇고 원문에도 "위상(phase)"란 말이 나오죠. 실수뿐 아니라 허수까지 포함해서 복소(複素. element가 두 가지라는 뜻입니다) 좌표를 동원해야 파동의 "위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허수부의 위상은 실수부와 90도 어긋나 있으므로.... " (p48)

이 문장은, 복소 좌표의 개념이 무엇인지 아는 독자라면 바로 한 번에 이해되는 구절입니다.

"쿼크와 경입자에서는 전체 입자의 질량이 거의 완벽하게 상쇄되는 걸로 보인다." (p129) 소립자를 탐구할 때 가장 당혹스러운 건, 전통적인 물리학이 절대 전제로 유지해 오던 많은 법칙들이 쉽게 예외를 허용하거나 심지어 무시된다는 사실입니다. "질량이 그저 작다는 게아니라, 구성 요소의 에너지 수준에서 측정했을 때는 거의 0"이라는게 아직도 학자들의 눈에는 그저 신비하게만 보입니다. "일부의 질량이 구조를 붙들어매는(근데 참 이런 번역도, 우리말로 너무 잘 통하게, 한 번에 의미가 와 닿게 잘 옮기신 듯해요) 에너지로 사라진다"고 쳐도, 이 문단 맨 위 문장처럼 그렇게나 "절묘한 상쇄"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게 평범한 독자의 머리로도 의문스럽거든요. 그래서 필자(이 아티클은 하림 하라리 박사, 바이츠만 연구소 소장입니다. 하라리는 셈 문화권에서 흔한 성씨이므로 "그분"과는 물론 무관합니다)는 "혹여, 프리쿼크 역학이 조금이라도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이 경우에 해당하는 대칭성을 찾는 게 필수 요소라는 뜻이다."라고 덧붙입니다. "프리쿼크"라는 말에서 왠지 현기증이 느껴지시지 않는지요.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에선 초대칭 입자의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이 많다. (중략) 모리스 골드하버는 이런 상황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가끔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적어도 우주에 있는 초대칭 입자 절반은 이미 찾았다면서 말이다."(p217)

이 농담은 마치 콜라의 절반만 남았다고 말할지, 아니면 절반씩이나 남았다고 할지로 사람의 긍정/부정 성향을 평가하는 거나 마찬가지 구조입니다. 사실 저 말 뒤에 숨은 진실은, 초대칭 입자의 확증은 아직 하나도 못 찾았다고 고백하는 거니까요(찾은 절반은 우리 물리계를 이루는 눈에 보이는, 혹은 체험된 모든 현상인데, 얘네들의 그림자가 숨어 있고 단지 우리가 못 찾아내었다고 말하는 게 이 학설입니다).

3-2 그레이엄 콜린스 기자의 글 제목은 "힉스 입자를 만나려면 아직 좀 더 기다리자"입니다. 무슨 소린가 싶을 텐데, 글이 쓰여진 시점이 책 뒤에 나오듯 2001년 2월이라서입니다. 그렇다고 이 짧은 아티클의 가치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첫째 힉스의 모형은 별반 덧댈 부분이 남아 있지 않고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비되었으며, 2013년(정확하게는 그 몇 달 전의 실험 모두를 포함해서)에 이뤄낸 성과는 그의 확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아직도 "고도를 기다리던" 시점에서 관측자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정직하게 증언하는 하나의 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책 마지막에 실린 존 호건 작가의 글은 가장 일상적인 느낌을 담은, "그놈의 힉스 소동(집필 시점은 2012년 7월이고, 이때가 바로 한국에서도 "신의 입자"로 연일 매체가 떠들썩하던 바로 그 시점입니다)"에 대해 일반인과 가장 밀접히 교감할 수 있는 짧은 감상문입니다. 친구와 내기를 했다느니, 미치오 카쿠(우리가 잘 아는 하버드 출신 물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입니다)의 저술이나 예견에 대한 단편이 아주 편한 필치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책은 "힉스(입자)에서 그 비전이 멈추는 게 아니라, 그 너머를 지향한다"는 주제를 곳곳에서 드러냅니다. 그래서 힉스는 그 이름만으로 영원한 진보, 전진, 혹은 설렘의 표상이 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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