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보다 칼보다 더 강한 혀로 세상을 날개짓한 사람, 김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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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 -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화경 지음 / 뿔(웅진) / 2010년 1월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전기수가 있었다.   소설을 실감나게 읽어주던 전기수들, 그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청중들에게 현실과 책을 착각할 정도였으니 일면 연극무대의 배우가 되어 일인 다역을 하는 격이었다.  어떨 때는 영웅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여인네가 되기도 하면서 그렇게 청중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책을 읽어주는 일, 매력적이다.

 

  쇠 금에 검을 흑을 사용하는 김흑이라는 자,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여, 모험도 사랑도 고통도 꿈도 맛깔나게 버무릴 줄 아는 재담꾼이 되고 싶었다.   조선의 그 누구보다 이야기를 잘 파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붓이 칼보다 더 강하다지만 그는 혀가 더욱 강하다고 믿었다.  그가 어린시절 모셨던 이결 선생은 이야기꾼을 빈 데에 시렁을 쌓고 생각을 쌓아 올리고 뜻을 포개어 기이한 말을 지어내는 자이며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저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김흑, 그의 명성은 도성을 들끓게 한다.

 

  김흑이 활약하던 시대는 정조가 왕으로 있던 때이다.  정조, 그가 누구던가.  바로 문체반정을 일으킨 이이지 않던가.  당시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패관소품체로 열하일기를 써서 유행을 일으켰던 박지원, 그의 문체가 세상을 어지럽힌다하여 싫어했던 정조였다.  헌데 김흑은 소설을 읽어주는 이야기꾼이었으니....

 

  이야기 꾼 김흑이 아름다운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앞장서고 있는 노옹, 그의 딸로 다리가 불구인 그녀의 발은 늘 치마 안에 감추어져 있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소설의 세상에 파고들어 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야기꾼 김흑의 소문을 듣게 되고, 그를 불러들이는 유리,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묶여들게 되고 만다.  신분적 차이라는 일차원적인 사실을 떠올려 본다해도 그렇게 그들의 사랑이 쉬울 수는 없다는 것을,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안타까운 순간인 것이다.

 

  세상에 소설만큼 재미난 것이 어디 있던가.  바로 그 소설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이야기 꾼이라니,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한 직업이 아닌가 싶다.  물론 현대에도 이야기를 재미나게 할 줄 아는 재담꾼으로 산다는 것은 무한히 재미난 일일 것이지만 말이다.  검은 놈, 김흑, 단단하게 강한 사내이고 싶었던 사람이다.  붓 보다 칼보다 더 강한 혀로 세상을 날개짓했던 이야기꾼,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기에 그가 내뱉는 이야기에 흔들림을 느끼지 않을 이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조선시대의 남자,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라니 새롭게 만나게 되는 내용이라는 생각에 무척 기대되는 설레임으로 읽어나간 책이다.  신분적인 제약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 하지만 소설을 좋아했고, 하여 이야기를 파는 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 그렇게 붓보다 더 강한 혀를 사용하여 조선을 움직거리게 한 사람, 김흑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