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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 시대 여성은 재혼을 하지 못했을까? - 함양박씨 vs 성종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7
정성희 지음, 황기홍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평점 :
[자음과모음] 왜 조선 시대 여성은 재혼을 하지 못했을까? : 함양 박씨 VS 성종
* 저 : 정성희
* 그림 : 황기홍
*
출판사 : 자음과모음
얼마전에 모 방송사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인수대비 편이
나왔습니다.
작년에 나왔던 방송인데요.
분명 조선 초까지만 해도 남자 여자의 차별이 많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우리 나라는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낮아져 있었습니다.
결혼도 재혼도 재산도 사회적 진출도 모두 막혀 말 그대로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던거죠.
분명 선사시대도 고대 사회도 고려시대도 여성의 모습은
이러지 않았는데...
심지어 신라 시대엔 여왕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런데 이런 것이 바로 몇백년 안된 조선 시대부터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바로 소혜왕후, 인수대비에 의해서 말이지요.
내훈이라는 것을 만들어 조선시대의 남존여비 사상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것이지요.
시대는 성종 임금 시대겠지만 결국 그녀에 의해서 결론이
나버렸습니다.
조선시대 열녀 칭호를 받은 함양 박씨는 조선 9대 임금 성종을
고발합니다.
자신의 열녀 칭호를 반납하고 싶다고
하죠.
그녀는 왜 이런 결정을 했던
것일까요?
남편감이 아픈것을 알고도 결혼을 결정한
여인,
이미 옷을 만들었기 때문에 (책에는 조선 시대의 결혼 절차가
나옵니다.) 지아비라 여기며 결혼합니다.
그런데 정말 결혼 후 얼마 뒤
죽은 남편.
그리고 3년 상을 지낸 뒤 그를 따라 죽은
아내.
열녀문이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그건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합니다.
젊은 나이, 그리고 남편은 없고 자녀 또한
없습니다.
여성 혼자서 먹고 살길은 재혼 뿐인데 재혼하면 범죄자처럼
여론이 형성되니...
그냥 자결을 결심하고
맙니다.
이는 비단 함양 박씨만의 문제는
아니었죠.
당시 조선 시대에 남편을 잃은 여인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재혼하면 아이들의 앞길이 막히니, 게다 가족의 시선,
주변의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조선시대가 성리학을
중시하고 나라에서 열녀, 효자를 칭송하고 혜택을 주니 이용하게 되는 결과
까지 나옵니다.
"재혼한 여자의 자손은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이런 말도 안되는 법이 나라의 법전에 들어가 있답니다. [경국대전]에
말입니다.
게다, 재혼을 하지 않으면 여성은 생계와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는데요.
성종은 말합니다.
"굶어 죽는 과부는 적지만 정절을 잃는 과부는 많게
된다."
대놓고 굶어 죽으라 말하는 왕.
법정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함양 박씨 외에 조씨 부인, 세종의 며느리였던 세자빈 봉씨, 향랑 등이 나와 당시 여성으로서 겪은
억울함
을 호소합니다.
이에 성종을 비롯 송시열, 화순 옹주 그리고 막말하는 이대로 변호사는 분명 여성이라면 분노하게 하는
말
을 계속 하네요.
'말이 많은 여자, 아들을 못 낳는 여자 - 칠거지악 중
하나'
말이 많다고 내쫒고
아들을 못 낳는다고 내쫒고...
이 모든 것들이 남존여비 사상이 커지면서 생긴 결과겠지요.
병자호란 당시 몽골의 침입으로 많은 부녀자들이 납치를 당합니다.
납치도 억울한데, 다행히도 무사히 조선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여인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살아와도 살아온게
아니었지요.
환향녀라고 하며 시댁에서 남편과 시부모과 정식 이혼을
요청하게 되는 상황도 벌어지죠.
하지만 이는 나라에서 정한 이혼 사유가
아니니 못 시키는데 거기에 저 칠거지악을 들어 강제 이혼을 시키
는 것입니다.
조선은 당시 이혼이 왕의 허락이 있어야 했던 나라입니다.
칠거지악을 드니 이혼을 허락하죠.
남자는 기생도 만나도 첩을 여럿 들여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명분하에 용인이
됩니다.
이혼을 해도 재혼에 제한이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여성은 모든 것에 제약이
됩니다.
성종 시대 어우동이라는 여인은 양반 가문의
여인이었습니다.
효령 대군의 손자와 혼인을 했는데, 남편인 이동이 기생을
사랑해서 어우동을 내쫒습니다.
기생을 들이고 아내를 내쫒았던
것이죠.
그래서 어우동은 다른 남자를 만나 사귀는데 어우동만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 경우 노비에 처하는 수준만 해도 될 것을 성종은
그녀를 사형에 처해 본보기를 삼죠.
여성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한 편으로 치우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는데요.
시집을 간다라는 말 보다 장가 간다는 말이 더 오랜 시간
사용되던 한반도.
어느 순간 완전히 역전되어 여성의 지위는 한없이 낮아진
조선시대와 그 후.
이제 현실은 어느 정도 완벽히는 아니지만 많이 변화가
되었습니다.
지금 시대의 눈으로 이 책을 보면 아마도 많은 여학생들이나
어머니들은 화도 많이 날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선의 이념 유교, 성리학
그리고 그 후 정치 모습들을 상황을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존여비사상은 겨우 몇백년 밖에 안된 구시대적 사상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배움이 중요하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것을 배워갑니다.
한국사법정에서 속 시원히 하고픈 말을 들어 조금은 개운한 책이었습니다.
아들이 읽어보면 어떻게 말할지.. 같이 이야기해보기에도 좋은 소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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