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묘청은 서경 천도를 주장했을까? - 묘청 vs 김부식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16
이윤섭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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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왜 묘청은 서경 천도를 주장했을까? : 묘청 VS 김부식

* 저 : 이윤섭
* 그림 : 황기홍
* 출판사 : 자음과모음

고구려를 계승한 민족이라고 하여, 통일 신라 말 귀족 신분제 때문에 차별 받던 6두품과 호족들이 주 세력이 되어 건국된 고려.
하지만 안정된 세월이 오면 역시 혁신 세력도 다시 기득권 세력이 되는 것처럼 이들 고려 초의 모습도 서서히 변해갑니다.
호족들이 권문 세족이 되면서 이들도 변해갑니다.
특히 이자겸은 자신의 딸들을 왕가에 시집을 보내면서 외척 세력으로 군림합니다.
심지어 왕이 자신의 이모와 결혼하게 되는 상황도 생기게 됩니다.
혼인에 있어서 이복 남매까지도 가능했다고 하니...
혼란스럽고 민심이 어지러운 시대였습니다.

고려 17대 임금 인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왕이 됩니다.
이때 외할아버지이자 장인 어른이기도 한 이자겸은 자신이 결국 왕이 되고자 난을 일으킵니다.
여진이 금나라를 1115년에 세우고 송 나라를 멸망 시킨 고려 외적인 상황과
1126년 이자겸의 난으로 인해서 고려는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낸 것으로 보여요.
이때...
묘청은 바로 풍수지리설 등을 이용해서 수도를 천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경에서 서경으로요.
그래서 묘청의 서경 천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파인 김부식파에 의해서 서경으로의 천도는 좌절되고 합니다.
여기서 끝을 내지못한 묘청은 1135년 반기를 들어 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고 김부식 파에 의해 진압이 되고 말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죠.
삼국사기가 자료로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라 중심으로 쓰여 있기에 고구려, 특히 백제의 기록이 거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깝기도 합니다.
묘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재판의 결과는 나온 상태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고민을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대를 요구하는 금나라에 맞서서 고려 대내.외적으로 힘든 시기 고려의 자주성을 위해서 칭제건원, 금국정벌 등을 주장했던 묘청의 의견은 개인적으로 타당했다고 생각됩니다.
조선 초의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에서도 마찬가지고, 후기 광해군의 대외 정책도 마찬가지지요.
역사에서 if라는 가정을 하기는 참 힘들지만, 이미 지난 과거지만 그래도 고민해봅니다.
신채호 선생님께서 "조선력사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 이라고 말한 내용도 꼭 찾아서 봐야 합니다.

역사를 한 면에서만 보면 답은 하나입니다.
하지만 눈을 조금 돌려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의외의 사실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의 주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계속 공부를 해가면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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