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며 습관적으로 몇가지를 선택했다.

언제고 읽겠노라고 담아 둔 것이니 어떤 것을 선택한다한들 어차피 읽지 않겠나.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이거나 두 번 정도씩 주문하니까 한 번 주문에 네 권에서 다섯 권 정도씩 주문하게 된다.

그 정도가 적당하다.

배달을 해주시는 아저씨가 들고 오시기에도 무겁지 않고, 다니러 오시는 기간도 적당하고..

 

오늘도 다섯권을 주문했다.

 

 

 

 

 

 

 

 

 

 

 

 

 

 

 

 

 

 

 

 

 

 

 

 

 

 

 

     요즘들어 부쩍 들뢰즈를 언급하는 이들이 늘었다. 들뢰즈의 글들은 알아들으면 대단한 깨우침이지만 대부분 못알아듣거나 머리를 쥐어뜯게 한다. 특히 난문(難文)으로 유명한 차이와 반복, 천개의 고원은 읽다가 죽을 뻔했다. 겨우 한 번씩 읽고 미뤘다. 내상이 회복되지 않는다..

 

  사상의 진화를 읽으며 좀 추스리긴 했다. 근데 이게 무지 매력적이다.

 정신을 잃고 쓰러질만큼 매운데도 자꾸 손이 가게 되고 입에 넣게 되는 매운 족발 같은 중독성이 있다.

 

 그렇게 먹다 보면, 읽다 보면 인이 배기겠지. 그럼 좀 쉬워지겠지..단순한 바람으로 또 들뢰즈를 본다.

 

 쉽게 썼다고, 입문서라고 소개는 했지만, 들뢰즈가 쉬울 턱이 있나.

 

 

수학선생이 "이번 시험은 쉽게 냈어"라고 하는 말을 믿는게 낫다.

 

나는 언제나 술래..페북에서 좀 까불고 놀다보니 건너건너 이래저래 보게 되셨는지..친구 신청을 해주셨다. 감사하게도..

지난 번에 샀는데, 집에 다니러 온 아들놈이 돌아가는 길에 읽는다며 가져가 버리고..다시 사야지 생각만하다 잊었다.

읽어야지.

빅보이는..얼핏 본 그림이 너무 좋았다. 그림 보는 눈도 없으면서..그냥 보고 있으니 좋았다.

L의 운동화는, 사실 찬찬히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뾰족한 송곳이 되어 정수리 어디쯤을 찔러대는데..일단은 데려온다.

고맙습니다는..알다시피..보다시피..나의 주기율표 때문이다.

 

주문을 하고보니 온통 파란 책들이다.

파랑을 좋아하고 파랑파랑에 너그러워지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좋은 걸 어쩌겠나. 습관처럼, 의식처럼 다섯권의 책을 주문하고 한 주를 마무리 한다. 다음 주에는 파랗게 읽고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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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지음, 안진옥 옮기고 엮음 / 비엠케이(BMK)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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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이름을 웅얼거리는 순간 작은 전율이 시작된다. 불꽃으로 태어나 불길이 되고 기꺼이 불 속으로 사라진 여인.혹은 예술가, 혹은 사람.

반으로 접힌 표지를 열면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이 펼쳐진다. 창문으로 조심스레 밖을 응시하던 여자는 진한 눈썹을 한 채 ' 내 일기를 읽은 댓가를 치를 준비는 되었지?'라고 되묻는 것 같다.

프리다 칼로를 이야기 할 때, 같이 떠올려지는 이름들. 나혜석, 까미유 끌로델.

어떤 이들은 그녀들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고도 하고, 고통과 절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도 하고, 비극적이라고도 했다.

단 하나도 동의하지 못하겠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녀들은 시대를 선택할 수 없었고, 선택할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시대 따윈 그녀들의 삶과 창작에 간섭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고통과 절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과연 그럴까? 그녀들은 자신의 상황을 예술적 창작물로 남기려고 안간힘을 썼을까?

단지 그녀들은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냈을 뿐이다. 인간이 품은 가장 순수한 것 까지, 희고 말랑하며 공격당하기 쉽고 방어가 되지 않는 감정들을 치장없이 진술했을 뿐이고 그것이 그대로 드러난 것 뿐이다. 고통과 절망, 상실과 불안이 그녀들을 관통하는 순간을 저항없이 그대로 보여낸 것. 그것이 예술로 승화한 것인가? 그녀들 자체가 예술이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나?

47년간의 세상의 시간을 견딘 프리다 칼로. 그 뜨거운 사랑과 열정. 수없이 반복되는 사고와 수술로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그녀는 고스란히 제 몫의 고통을 받아낸다.


프리다 칼로가 죽기 전 10년간의 기록, 스페인, 라틴미술 전문 기획자로 잘 알려진 안진옥이 옮겼다.

그대로.

그대로 옮기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프리다의 그림과 일기장 뒷면에 배어난 잉크, 물감까지 재현해 낸 편집. 프리다가 지운 부분은 같이 지우고, 밑줄 친 부분은 같이 밑줄 치고..

당시 프리다의 상황과 그림에 대한 해설이 작은 글씨로 예의바르게(?) 쓰여있다.

아이들의 탐정소설처럼 앞페이지의 어느 부분과 연관되어 있는 그림. 뒷쪽 어딘가에 쓰인 글과 연결된 그림..하는 식의 안내(?)는 참으로 유용했다.

매일 매일 한페이지씩 차곡차곡 써내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예측했을테고, 아무데나, 혹은 이전에 쓴 일기 위에 덧쓰거나 오려붙이거나..프리다의 자유로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기장.

알지 못하는 언어임에도 번역과 함께 한 단어씩 짚어가며 읽는다. 프리다의 일기를 필사해보기도 한다. 그림 속에 샅샅이 숨겨진 암호같은 상징들을 찾아낸다. 크게 보고 세심하게 보며 오래오래 읽는다.


책을 금방 읽어내는 편이다. 오래 읽는다고 해서, 더 깊이 있게 읽어내지 못할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이해되는대로만 읽는다. 새로운 것이 들어가면 딱 그만큼 있던 것이 나가는 총량을 지켜내는 단순한 기억장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더 넓히거나 늘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어쨌든, 이 책은 닷새나 걸려서 읽었다.

허우적거린거다.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게 아니라, 거기 더 있으려고 버둥거린 거다.

끈끈이에 붙은 파리가 날아가려고 버둥대는게 아니라 더 단단히 달라붙어 있으려고, 기꺼기 거기서 죽어도 좋겠다고, 끈끈이가 너무 좋다고 파닥거리는 꼴과 닮았으려나?

끈끈이를 좋아하는 파리가 있을 수도 있잖아? 파리가 좋아하는 냄새로 유인하는거니까..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장. 엄청난 책을 읽었다. 한동안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실려있는 그림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 속에서 단단하게 드러나는 프리다. 사랑과, 이념과, 다양한 연구들..그림그리는 프리다가 아니라, 디에고를 사랑한 프리다가 아니라, 고통에 신음하던 프리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충분히 살아낸 프리다를 보게 된다.


아마, 사람들은 이 책을 읽게 될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의 해방구같은 그녀를 말이다. 위로가 아니라, 힐링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

그녀의 불행을 앞에 두고, 이렇게 절망적인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을 해내다니..라든가, 그녀의 온전치 못했던 육신을 두고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은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따위의 비교가 아니라..'프리다'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날개를 단 프리다. 제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프리다. 사랑을 당당하게 외치는 프리다..


운이 좋다면 재쇄를 찍을 수도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좋았으니까. 좋으니까.

몇군데의 오류를 관계자에게 보냈다. 여기저기 물어보고..오지랖이다. 그 작은 오류로 괜히 말이 나오는게 싫었다. 요즘 독자들 어지간히 깐깐해야 말이지.

우연히 책을 보고, 친구를 졸라 강탈한 책 한권이 한 주일 동안 같은 꿈을 꾸게 한다.


날개를 달고 한쪽 다리를 절단한, 부서진 척추의 프리다가 노란 하늘에 암청색으로 쓴다. "나의 디에고"

(노란색과 암청색. 프리다에겐 색이 갖는 의미와 상징이 있었다.)

당분간 내 꿈은 프리다에게 내주어야하나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모두가 수근댈 것이다 : 불쌍하군!그녀는 미쳤어.
무엇보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것이다. 나의 세계를 건설할 것이다. 사는 동안, 내 것이 될 것이다 = 동의한 대로 = 모든 세상과 일(日). 시(時), 또는 분(分), 삶은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것이 될 것이다.
나의 광기, 그것은 "작업"으로의 도피는 아닐 것이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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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쁜 여자가 좋다..고 습관처럼 이야기한다.

우유같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자연스레 웨이브진 긴 머리..이런 것이 아니라 '이 여자 진짜 이뻐'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프리다 칼로를 아껴 읽는다. 그림을 읽는 맛이 대단하다. 번역과 원본을 왔다갔다 하며 읽다보니 본의 아니게 오자를 발견해 신고도 했고..여튼..빨리 읽지 못하겠다. 계속 허우적대고 싶은거다. 나혜석이 잠깐씩 스쳐지나가곤 했다. 까미유 끌로델도, 이사도라 던컨도, 시몬느 베이유도, 로자 룩셈부르크도, 자니스 조플린도..패티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잠깐 사이에 그림과 글과 행간을 스쳐간 예쁜 여자들.

고통과 광기 속에서 자유로웠던 사람들, 강했던 사람들..나는 그녀들이 '사람'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기에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예쁜 여자가 좋다'고 말해도 좋을 변명을 얻는다.

 

 

 

 

 

 

 

 

 

 

 

 

 

 

 

 

 

 

 

 

 

 

 

 

 

 

 

 

 

 

 

 

 

 

 

 

 

 

 

 

 

 

 

 

 

 비가 올것 같다. 장마가 시작될거라고 일기예보를 들었다. 비가 쏟아지면 예쁜 여자를 앓을것 같다. 동경과 애정에 시달리며 한참을 앓을 것 같다. 프리다 칼로가 깊은 사랑을 끄집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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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를 선물 받았다. 거의 뺏은거나 다름없지만..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징징대면 거의 대부분 기프티북을 쏘는 친구가 있다. 얼마 전에도 울지마 아이야를 사려다 게공선을 사는 바람에 아쉽다고 징징댔더니 이내 보내주었다.

이는 곧 복수로 이어졌고, 친구의 위시리스트를 훔쳐보곤 바로 책 한 권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책..

이렇게 일면식도 없이 책 하나로 아낌없이 내어주고 보태주지 못해 안달인 친구가 있다는 건..행운이며 신기하기까지 하다.

 

 

 

 

 

 

 

 

 

 

 

 

 

 

 

프리다 칼로의 책..이 책을 옮기고 엮은 안진옥님이 대단히 섬세한 분이구나 싶다. 프리다칼로의 심경까지 읽어낼 만큼 심미안이 대단하다는 생각..응구기 와 시옹오의 책은 두 말하면 입아프다..노벨상 수상 예상 투표같은 걸 하면..나는 늘 시옹오를 뽑는다. 이만큼 문학적이며 뚜렷한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이가 있을까?

프리다 칼로의 책을 받고 욕심은 또 이것 저것 책들을 고르게 한다.

 

 

  발음도 힘든 작가의 우크라이나 이야기. 인성을 만들어준다고 ..??

  어쨌든 한동안 신화와 민화에 빠져지낸 탓에 눈이 갔다. 그러다 그림을 그린 이가 박건웅이라는것을 발견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어느 물푸레 나무의 기억을 그렸다.

 

 

 

 

 

 

 

 

 

 

 

 

 

 

 

박건웅의 그림은 이야기를 한다. 모든 그림이 '나는 말야..'라고 말을 거는 것 같다.

그린 이를 보는 순간 이 책을 데려와야지 했다. 박노자선생이 추천사를 쓰셨다.

확실히 데려와야겠다.

480개의 이야기가 있다니 두께가 장난 아니다. 거의 벽돌책의 반열에 들 것 같다.

 

   그리고..빅보이. 파랑색을 좋아하는 것을 들켜버린 것 같다.

 이 표지를 보고 숨을 잠시 참는다. 하..이쁘다

 

 

 

 

 

 

 

 

 

 

 

 

그림을 잘 볼 줄 모른다. 그냥 좋으면 좋다. 문학적 소양 따위 없듯, 미적 소양도 없다.

그냥 좋은 것.

 

그냥 좋은 그림.

그냥 좋은 글.

그냥 좋은 사람..

 

사람을 기억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단순 명쾌한 동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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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돌머리
임명희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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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돌머리를 찾아봤다.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음 영탑리라는 지도가 하나 나온다. 작가가 서산 출생이라는데 여기가 맞겠구나.

작가의 유년시절을 회고하며 적어낸 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한 시기를 지나온 사람의 역사를 적은 듯 했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 설핏 스쳐지나갔던 글이다. 비슷한 시기의 서술은 비슷한 색감으로 읽히겠으나 이것은 작가가 책을 펴내며에  '수두룩한 엄살들은 내 방식의 사모곡일시 분명하겠다' 라고 썼듯 어머니와 가족과 형제들이 함께 걸었던 시기에 대한 애정이며 애증이었다.

산문집이라는 구분이 무색할만큼 소설적이기까지 한 서사는 진심 때문일것이다. 자신의 삶의 시작과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때로 휘청일만큼 감상적이거나 적잖이 왜곡하여 위안삼기도 한다. 기억의 왜곡이 주는 일종의 환각일지도 모를일이다. 한국전쟁 이후 함께 겪어야 했던 혼란의 시기를 자란 작가와 형제들, 그리고 생존의 기둥이었어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 질리게 보아 온 것들이다. 기승전애국으로 이어진 글들..고진감래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글들의 불편함과 달리 여전히 강팍하고 애절한 시대를 살고 있음을 반증하는 글. 그래서 수긍하게 된다. 어떤 치장도 포장도 없이 고스란히 적어내린 역사와 사람의 서술.

어쩌다 보니 엄마는 3.15 부정선거에도 개입하여 한 몫을 하게 되고, 친척집이라도 동가숙서가식하며 눈치를 보게 되었다.

가감없이 써내려간 글들은 때론 한숨을 때론 안타까움을 때론 희미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랬지, 이런 시기를 살아왔지. 좀체로 나아지지 않는 처지에 그래도 이만큼 살게 된게 어디냐며 최면을 걸듯 읊조리며 살아왔지. 그래서 남은건 뭘까?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낸다. 단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형화된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눈꼽만큼씩 밀고 있는 것이다. 더 빨리 더 멀리 가자고 재촉하는 채직을 감내하며 이것이 대의라고, 이렇게라도 살아내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말이다.

내 유년의 시절과 지리적 차이가 있고, 시기적 오차가 있지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며 읽어낸다. 어쩌면 이럴까..

형태만 달라진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매일처럼 죽음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젊었던 엄마를, 병약했던 아버지를, 완고했던 할머니를, 쌀쌀맞던 고모를, 한없이 다정해서 가난을 애인처럼 끼고 살던 작은 이모를..

어린 눈에 비친 어른들은 하나같이 답답했고, 하나같이 무서웠고, 하나같이 미웠다. 내가 몇살이 되야 저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살게 될까하는 끔찍한 생각도 했었다. 내 모든 불편과 불행과 부당함에 이유가 저들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적의가 어떻게 생긴건지도 모를 초파리처럼 자꾸 머리 속에 꼬여들곤 했다.

내가 그들만큼의 나이가 되어 과거의 어떤 사건들을 떠올릴 때, 그 사건의 현장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던 엄마가, 아버지가, 할머니가, 고모가, 작은 이모가, 외할머니가 개입한다.

어린 나를 이불 속에서 끌어안고 옛날 이야기 대신 4.19를 이야기 해 준 아버지,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애국자가 되라며 '국민교육헌장'을 반듯한 글씨로 적어오라던 할머니, (그걸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셨던..)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에 동원되어 울며불며 태극기를 흔드는 여학생이 되었을 때 옆에 서서 사탕을 우물거리며 박수를 치다 경찰에게 끌려나간 작은 이모, 6.10 민주화 항쟁 때 명동성당 밖에서 까치발을 하고 딸을 찾던 엄마. ..

그 후로 오랫동안 선거철만 되면 아웅다웅 다투는 엄마와 나..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새벽기도를 하는 엄마와, 사람의 나라가 되어야한다고 눈을 치켜뜨는 딸년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한 사람의 시간은 평면이 아니다. 입체적이며 역사적이다. 방구석에서 책만 읽어대는 지금의 모습도 내 아이들이 기억할 '그 때의 엄마'의 한 조각일 것이다.


산문집을 읽을 때는 습관처럼 천천히 읽는다. 생각을 다지듯..

빗돌머리는 그런 습관을 잠시 미루게 한다. 개별 에피소드들이 연결되며 큰 그림이 되고 큰 사람이 되고 큰 공감이 된다.

무조건 적인 헌신, 사랑, 믿음..이런 것이 가족이 아니라 실수하고 상처를 주고 투닥거리며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동지이며 도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아이들..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손잡고 건너는 동지일게다.

내 부모와 친천들..나를 지치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근원이 되어주는 시작일게다.


빗돌머리..재밌다.

개인의 역사가 시대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면 어떻게 살아내야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나라에서 하는 일에 개인이 나설게 아니라는 말을 더는 못하게 할 구실이 찬찬히 쓰여졌다. 임명희, 이 사람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진심은, 건강한 사람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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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4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6-14 14:03   좋아요 0 | URL
ㅇㅇ..안그래도 어제 커피집 포스팅 보면서 브론테구나..했어. 잘지내지? ^^

2016-06-14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6-14 14:45   좋아요 0 | URL
ㅎ..생각이 나긴했구나..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