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고치다가, 자동차를 만들다가, 뷔페 음식점에서
수프를 끓이다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생수를 포장·운반 하다가, 햄을 만들다가, 승강기를 수리하다가...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흩어진 사고의기록을 모아놓으면 공통의 문제점이 보인다. 사회초년생으로서초반 적응 시스템이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모두가 꺼려하는 일이 조직의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다는 것,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 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전교육을 받기보다 ‘이런저런 거 조심하라‘는 식으로 말 몇 마디를 듣고 바로 업무에 투입되었고 욕설과 명령 등 비인간적인 대우에 노출됐다. 노동에 단련되지 못한 서툰 몸으로 야근까지 감당했다. 학습도 실습도 아닌 중노동에 심신이 극도로피폐해진 상태에서 그들은 사고를 당하거나 자기 구제로서 죽음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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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중학생과 인문계 고등학생들을 많이 안다.
중3들은 한창 진로선택 중이다.
어릴 때부터 학원을 전전하며 공부에 치인 아이들은 특성화고를 가겠다고도 했다. 대학 안가고 돈 번다고.
또는 부모님이 대학 가봐야 소용없다고 돈 많으면 성공이라고 했다는 녀석도 있다. 대다수가 인문계를 가고 소수가 특목고를 간다.
어쨌든 교육의 테두리 안에 놓이긴 한다. 의무교육이 아닌 과정이라 자퇴도 퇴학도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특성화고 아이들의 소식이 뉴스에서 나올 때마다 내가 아는 녀석들이 떠오른다. 덜컥 겁도 난다.
교육체제 전반과 사회구조 전반을 뒤집지 않는 한. 이 부조리의 틀을 깨지 않는 한 나아질것도 기대할것도 없을 아이들의 내일은 내내 어둡다.

법무장관 내정자의 청문회.
딸과 관련된 의혹. 부인과 연관된 의혹..그게 사실이건 오보이건 조작이건 대다수의 아이들이 지나는 학창시절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실습을 나가 떨어지고 끼이고 부러지고 데이고 추행을 당하는 수많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을 우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거다.
단지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공범이 아닌척이라도 하려고 말이다.

글 쓰는 일에 종사하면 대학을 나왔으리라 간주한다. 꼭 그렇지는 않다. 그동안 거리에서 장애인을 못 봤다면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한 여건이 아니라서 그렇듯이,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를 못 봤다면 그런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해도 들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기때문이듯, 특성화고 학생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에 따라자연스레 비가시화된다. 모든 청소년은 학교에 다니고 학생이란곧 전부 수능을 치는 예비 수험생으로 여기는 식이다. 비진학, 탈학교 아이들은 배제되고 특성화고 아이들은 고려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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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내용이다. 국내 고고학에 대해 잘 모른 탓이다. 보물과 발굴을 헐리우드 영화로 먼저 자극받았기 때문일거다.
꼼꼼하고 전문적인데 가독성이 좋기 어려운 작업이었을텐데 잘 읽힌다. 사진자료도 좋고..미공개 자료들이 제법 많다.
간혹 오탈자가 보이기도 했지만 읽는데 지장이 있진 않았다.

러시아 전통인형을 마주르카라고도 부르나? 마트료시카라고 알고 있는데..마주르카는 음악 아닌가? 나만 모르나?
갸우뚱하며 밑줄을 그어놓는다.

 마치 러시아 전통 인형 마주르카처럼 금동으로 만든 사리호 안에 금 사리호가, 그 안에 다시 유리 사리호가 들어있었다. 세 종류의 사리호가 사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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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 2019-09-11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독자님. 이 책 담당한 편집자입니다. 다름 아니라, 지적하신 내용 마트료시카가 맞아요. 실수였는데 다른 독자가 알려주셔서 중쇄 때 바로잡아놓았습니다. 책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동태 푸른사상 시선 105
박상화 지음 / 푸른사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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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 킬리피쉬 라는 물고기가 있다. 맹그로브 숲에 사는 작은 물고기. 물이 마르면 근처의 나무에 구멍을 파고 물이 다시 차길 기다린다. 어느 과학자가 나무 속을 살펴보니 콩깍지 속의 콩들처럼 나무의 벌레 구멍을 채우고 있었다고 했다. 평소 영역다툼이 심한편인 어종인데도 나무 속에서는 공격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나무 속에서 먹이를 구하고 심지어 단성생식을 하며 종족을 보존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기어코 사는 어종인 것이다.

‘동태’에 실린 시들은 모두 익숙하다. 비슷한 시간을 건너 온 탓이다. 가난과 허기와 좌절과 배척과 차별과 무릎 꺽임이 무시로 반복되며 매 순간 상처를 만들던 시기를 건너 온 탓이다.
텅 빈 뼈. 바닥에서만 피는 꽃,
어쨌든 쉽게 죽지 않는 질긴 의지. 절망했다고, 다 끝난 것 같다고, 철퍼덕 주저앉아버린 것 같지만 이미 손가락 끝은 땅을 밀어내고 있고 접힌 오금엔 힘이 들어가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자신보다 먼저 반응하는 질긴 삶. 물 마른 호수의 물고기. 금방 죽어버릴 물고기로 보이지만 기어코 살아내는 물고기 맹그로브 킬리피쉬. 다 빼앗기고 기억과 혓바닥조차 빼앗겨도 숨소리로라도 불러낼 노래. 시. 삶.
그런 몸부림이 노동에 뭉개진 아비의 지문처럼 새겨진 시집 ‘동태’

비바람이 불고 바다가 꿀렁거리는 날. 시뻘겋게 고춧가루를 풀고 동태 한 마리 넣어 끓이면 참 좋겠다. 서툰 절망 따위에 글썽일 때는 이미 지났으니까..
다만 살아낼 뿐. 저절로 살아지는게 아닌 기어코 살아낼 뿐.

동태

동태는 강자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동태를 다루려면 도끼 같은 칼이어야만 했다.
아름드리나무 밑둥을 통째로 자른 도마여야 했다.
실패하면 손가락 하나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얼음 배긴 것들은 힘이 세다
물렁물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한때 명태였을지라도,
몰려다니지 않으면 살지 못하던 겁쟁이였더라도
뜬 눈 감지 못하는 동태가 된 지금은
다르다.
길바닥에 놓여진 어머니의 삶을
단속반원이 걷어차는 순간
그놈 머리통을 시원하게 후려갈긴 건 
단연 동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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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
오츠의 책이 나오면 득달같이 선물해주는 친구가 있다. 내가 좋아하니까. 반대로 요 네스뵈의 책이 나오면 나는 번개같이 친구에게 선물을 한다. 친구도 오츠를 좋아하고 나도 요 네스뵈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이런 뚱딴지 같은일을 꽤 오래 해오면서 늘 즐겁다. 좋아하는걸 함께 하는 친구.
이번에도 새벽 두시에 기프티북을 받았다.
이 놀랍도록 이성적이며 그래서 순간순간 예상하고 서늘해지는 이야기라니..
70초만 기억하게 된 남자. 그를 연구하는 여자.
우연한 삶과 진정한 삶의 난투극 같은 작품을 읽는다.
역시 오츠!
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과학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있는가 하면 사소한 문제가 있다.
삶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는 수긍되지 않고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사실도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진정한 삶이 있는가 하면 우연한 삶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어느 시대든 개인이 진정한 삶을 발견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대개는 평생 우연한 삶을 사는 것이 현실이다. 

"죽음 이후의 삶. 그건 바닷속에서 가느다란 빨대로 숨을 쉬는 것과 같아. 간신히 버티는 삶이지만 가능하긴 하지."
그녀는 죽음 이후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 혼자 속으로 말한다. 씁쓸하면서 기분 좋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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