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하고 몸이 지칠 때는 기담이나 괴담을 읽는다. 긴호흡으로 읽히는 것보다는 적당한 길이에 적당한 이야기가 좋다. 미야베 미유키의 시리즈를 듣긴 했지만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삼귀를 사놓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작년 이맘 때 읽었다. 가랑비에 젖는다는 표현이 맞을까?
오치카가 괴담을 듣는 자리를 지키게 된 경위가 첫장에 정리되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흐름을 파악하게 되서 다행이다 생각했었는데 이 시리즈의 모든 책의 처음이 그렇게 시작되는 건 뒤늦게 알았다. 즉, 무엇부터 읽어도 상관 없다.
삼귀 이후로 금빛눈의 고양이, 피리술사, 흑백,그림자밟기를 읽었다. 또 있나? 뒤죽박죽이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읽는 맥락없는 예의라고 변명해본다.
안주 역시 그렇게 선택되었다.
단지 듣기만 하는 것으로 위로가 되고 들어 주는것 만으로 스스로의 상처가 조금씩 나아지는 공감의 시간.
기상천외한 이야기 속에 스민 인연과 연민.
뒤에서 왁! 놀래키는 괴담이 아닌 조용히 듣게 하는 괴담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살아있는 부적 오카쓰씨가 드디어 등장한다.
그랬구나..
차례를 지내고 다같이 밥을 먹고 치우고 가만히 앉아 책을 읽다 창 밖을 본다.
조상님들 다녀가셨어요?
새벽에 고양이들이 거실 벽을 빤히 보고 있었는데 그 때부터 서성거리셨던거예요? 혹시?
희미한 웃음이 났다.
멀고 먼 훗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오면 미래의 세대들에게 지금의 이야기는 괴담처럼 들릴까?
정말?
그럴 수가 있어?
하는..
마저 읽자. 오카쓰씨가 나오기 시작했다.

슬픈 일이 있다고 해서 그때마다 죽는다면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라다. 오치카에게 일어난 일은 엄청난 불행이지만, 불행한 걸로 따지자면 세상에는 훨씬 더 가혹한 일도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사람이라는 존재다.
체벌하지 않고서는 고용살이 일꾼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칠 수없다면, 이는 우선 부리는 사람에게 도리에 어긋난 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저택의 고독이 만들어낸 구로스케는 저택이 고독하지 않게 된 지금, 말하자면 뿌리를 잃었소. 저택의 고독을 없애고쓸쓸함을 씻어낸 나와 당신이라는 사람의 기운은, 이제 구로스케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이오."
"오치카 님, 당신의 마음속에도 무리가 있으니까요. 쉽게 개지 않고, 또 당신도 쉽게 개기를 바라지 않는 무리가."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았는데, 그 가짜 중은 그렇게 말했다. 마음의 무리는 어둠에서 생겨나고 어둠을 부른다. 내 안에 그런 무리가 끼어 있다. 틀림없이 아직도 계속 끼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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