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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경제』


복잡계 과학이 다시 만드는 경제학의 미래




복잡계 과학의 전도사 마크 뷰캐넌이 예측하는 내일의 경제 날씨

경제학이여, 평형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전작인 『사회적 원자』에서 복잡계 과학의 눈으로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파헤쳤던 마크 뷰캐넌은 이번 신작 『내일의 경제』에서 그 시야를 경제 현상으로 좁혀 시장과 다양한 인간의 경제 행위들을 조망한다. 사회 현상을 단순화시키고, 통계로 변환하여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통찰을 제시한 『사회적 원자』은 삼성 경제 연구소(SERI)의 CEO 추천 도서로 선정되며 복잡계 과학 입문서로서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그가 운영 중인 <금융 물리학(http://physicsoffinance.blogspot.kr)> 블로그와 개인 블로그에서도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대중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복잡계 경제학의 구루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마크 뷰캐넌의 최신 성과들이 바로 이 책 『내일의 경제』에 집약되어 있다.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다른 복잡계와 달리 경제와 시장이 홀로 본질적으로 안정되고 어떤 내부적인 변화무쌍함도 없다는 얼빠진 발상을 극복하기 전에는 결코 경제와 시장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사회 경제적인 기상에 대해 배우고, 그 폭풍을 분류하며, 폭풍을 예방하는 방법 또는 폭풍이 오는 것에 맞서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다. 앞으로 탐구해 나가겠지만, 이것을 하는 데 또는 적어도 괜찮게 착수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과 발상은 이미 다른 과학 분야에, 특히 물리학에 존재한다. “금융 물리학”에 대한 발상은 전혀 낯설지 않고 완벽하게 자연스러우며, 아마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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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폴링 인 폴. Falling in Paul. 폴에게 빠지다. Fall이 아니었다. 한글로 된 제목을 들으며 상상했던 이야기는 없었다.

오랜 추억을 더듬는다거나, 혹은 애틋하기만 한 연인들의 이야기려니 했던 기대는 무너진다.

표제작인 폴링 인 폴은 교포 청년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이야기다.

 

나는

도대체

어쩌다가

폴에게

빠져버린

것일까.

 

뒷 표지에 쓰인 이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이 관계의 시작점이다.

"도대체" 폴과 나의 모호한 관계에서 바라고 원했던 것이 사랑이었던 것인가에 대한 모호함이다.

"어쩌다가" 가르치고 배우는 것으로 시작된 관계의 방향과 운동성에 대한 의심인 것이다.

"폴에게"  미국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나 한국적인(p78) 폴에게

"빠져" 버린 것이다. <한국말도 사랑에 빠지다. 이렇게 말하는 거라면서요. 영어도 falling in love 인데.(p73)>

 

#2.

사랑이 가능하게 하는, 즉 사랑에 빠지게 하는 싱크홀은 무엇일까? 도대체 어쩌다가 빠져버렸는지 알 수 없는 추락은 무엇이 붕괴되어야 시작되는 것일까?

빠진다는 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단단한 바닥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 한 빠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리적으로 말이다. 폴에게 빠진 '나'는 무엇을 붕괴시켜버린 것일까? 폴과 나 사이에 있어야 했던 무엇을 부쉈던 것일까.

 

백수린의 글들이 차곡차곡 꼬리를 물고 나온다. 아홉개의 글이 뿜어내는 향은 매캐하다. 잊고 있던 것들을 깨우기 좋은 그래서 눈물을 뚝뚝 흘려도 적당한 변명을 제공할 만큼 친절하다.

 

서로의 언어로 서로를 설명하며 다가선 만큼 되돌아 걷는 글들이 아프다. 어째서 나의 언어와 너의 언어는 이렇게 달라야 하는지..내가 기억하는 의미와 평가되는  서로 다른 말들의 오해는 얼마나 날카로운 상처를 내는지 자꾸만 입술을 축이게 된다. 저절로 앙다물어지는 입술. 말이 말을 삼키게 하는 글을 읽다 놓쳐버린다. 다시 한 글자씩 손끝으로 그 모양을 잡아가며 읽어본다.

해체되어도 살아나는 표독스런 생명력을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감자의 실종)

 

망가뜨리는 것보다 좋은 건 묶어버리는 거야. 동질감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 어느날 문득 느껴지는 이질감은 질투로 발화된다. 내게 없는 그것이 왜 안나에게만 있는 것인지. 어쩌면 처음부터 내 몫이었을지도 모를 것들에 끼어든 존재를 좋아할 수는 없다.  추론은 상상과 추측과 집착으로 점점 더 견고해지고 단단한 이론이 된다. 단단해 진 논리는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투는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공범이 있다면 더더욱 힘이 나지 않겠는가. 겨우 셋이 한 지붕을 이고 살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서로를 본다. 서로를 사랑하고 질투하고 믿고 의심한다. 자전거 탓이라고 핑계를 대보지만..그래서 자전거를 망가뜨려버리려 하지만..쉽지 않다.

내것이 될 수 없다면 망가뜨려버리겠다는 치기는 차라리 묶어두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다.

깨버릴 수 없는 것들은 때때로 묶어버리면 되겠다. 거기서 한 발자욱도 나오지 못하게 말이다.

가끔 무언가 용서를 하고 잊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내용을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고 다만 어딘가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묶어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전거 도둑)

 

모든 이야기들은 관계의 이야기다. 뻔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파장을 일으킨다는 건 신선하다.

작가의 색이 있다. 황정은에게 기대하는 색, 김사과에게 기대하는 색, 기준영에게 기대하는 색..그런 모종의 틀이 있다.

작가의 창의성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독창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떤 질감 같은..황정은의 날것같지만 곰삭은 묘한 이야기. 김사과의 입체적이야기..기준영의 디테일한 숨결, 이런 것들은 이 젊은 작가들의 '결'이다.

 

#3.

 

백수린의 결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린"이라는 말 때문일지 나는 가지런한 잉어의 비늘들을 떠올린다.

그래, 가지런하게 놓여진 질서 정연한 이야기의 씨앗을 잘 품어 내놓은 것이다.

믿을 수 없는 나의 말과 너의 말이 얽히는 지점을 잡아내어 서로의 말을 찾아준다.

가지런한 이야기여야 가능하다. 얽혀버린 관계와 말들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잡다한 장치들과 과한 치장을 내려놓는다.

 

"나는 말을 마쳤다. 오랜만에 내 가슴에서 빠져나간 말들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나는 천천히 관찰했다. 내 말이 가 닿았는지 부인은 다 알아들었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알아들었을리가 결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니 알았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p191)

"당신이 귀를 닫고 소란한 침묵 속으로 숨어들 때까지도 아무런 기미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 온전히 다 내탓인 것만 같았다. 기억 속에서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뻐끔거리는 입 모양만 보일 뿐 당신의 얼굴은 기억 속에서조차 텅 비어 있었다."(p235)

 

말들은 늘 길을 잃는다. 처음 의도한 방향을 찾아 제대로 가서 꽂히는 일이 거의 없다. 대충 비슷한 곳에 떨어져 내려는 것만 해도 안도할 만큼, 그렇게 말들은 방향을 잡지 못한다. 혀과 입술이 만들어 준 소리가 되는 순간 말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내 의지와 무관한 사건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위험하다면 차라리 입을 닫아버려야 하는가?

백수린의 글은 그런 것을 그대로 놓아두라고 한다. 굳이 파헤치지 말고 길을 잃은 말들의 처음을 찾아주라고, 그 처음에 가려던 곳의 좌표가 놓여있을거라고 말한다.

상대의 입술을 떠난 말의 길을 내 뜻대로 조종하는 일도 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이 낯설고 무례함 없이 단호한 글들이 좋았다.

백수린의 결은 차분하게 누운 빛나는 비늘이다. 그 곁에 따라 누워 이야기가 되어주지 못해도, 이야기에 반사되는 영롱한 다른 빛을 감상할 수 있다면 참 멋진 일이겠다 싶어졌다.

깊이 감추지도, 노골적으로 드러내놓지도 않고 적당히 꺼내어 조용히 빛나는 이야기들이 여기 있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사람들은..설렌다고도 했고, 아리다고도 했다.

나는 사뭇 덤덤하게 읽어낸다. 이입이 된건지, 한 발 뒤로 물러서 있었던건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이렇게 신선하고 가지런한 신인작가가 있다는 것에 한껏 기대가 되는 것이다.

 

조금 더 이야기의 폭이 넓었으면 좋았을까?

조금 더 깊이 찔러도 좋을뻔 했어.

조금 더 절망적이었어도 괜찮았을거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이제 갓 기지개를 켠, 작가라는 사실이 아쉬움을 대체할 기대를 그 자리에 놓아둔다.

백수린의 결로 빛나게 될 다음 작품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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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가 끝나고, 수능과 기말시험이 남은 어떤 수학선생의 책상.

수학교재보다 잡다구리한 책을 더 많이 쌓아두는 이상한 선생.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던져둔 책을 호기심으로 빌려가고, 되돌려주거나 되돌려주길 잊어버린다.

짬짬이 나는 시간에 보기 편한 폴링 인 폴과 김영하의 보다(표지를 벗겨버렸다. 걸리적거려서..)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책은..어떤 여학생이 샀는데 읽다보니 자기가 읽으면 안될것 같더라면서..선생님이 읽으세요..라고 주고 간 책이다.

휘리릭 넘겨보는데..음..잘 모르겠다. 자극적이긴 하다. 비디오라면 빨간 딱지를 붙여주어야할까?

나는 그 친구에게 "브라더 캐빈"을 주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책이다. 그 소유권을 넘겼다.

이제 누구라도 그 책이 읽고 싶다면, 사거나 아니면 그 여학생에게 부탁해야할거다.

 

책상사진 이벤트? 뭐 그런걸 하길래..들여다 보았다.

다들 깔끔하기 그지없는 책상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지다.

죽었다 깨어나도 깔끔해지지 못할 내 책상..

세상엔 이런 책상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런 책상도 있는데 뭐..이보다 더할 수 없을거라는..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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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엘레지 -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이언 샌섬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1. 종이의 이야기

 

종이의 이야기다. 그 종이의 탄생과 발전과 소멸이라 하기엔 아직도 너무 많은 곳에 퍼져있는 과소평가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종이 비행기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색종이를 오리는 것도 좋아했다. 달력의 뒷면이나 신문지에 크레파스로 황칠을 하는 것도 좋아했던 일이다. 재미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비행기가 좋았던 것이고, 알록달록 색이 좋았던 것이고, 크레파스가 좋았던 것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꼬마 아이를 위해 어머니는 깨끗한 면이 있는 종이를 잔뜩 모아주셨고, 철부지 꼬맹이는 정체불명의 그림을 그려댔다. 아무도 조용히 쓰임당하는(?) 종이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런 것이었을까?

인간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로부터 출발한다고 배웠다. 오래된 동굴의 벽화나 너른 들판에 그려진 그림, 왕의 무덤 벽화..그 모든 기록들이 지구 곳곳에 산재해있다. 그곳에서부터 인간의 기원과 삶의 역사를 부지런히들 찾아냈다. 그렇지만, 종이가 없었다면 그 모든 기록들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훼손된것을 복원하느라 우리는 아직도 서로의 역사를 궁금해하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종이의 발명과 전파는 인류가 인류로서의 품격을 지니게 만든 가장 큰 사건인 것이다.

목차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종이의 위대함? 혹은 다변성?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다

 

1. 종이의 제작  2. 종이와 나무  3.종이와 지도  4.종이와 책  5. 종이와 돈  6. 종이와 광고  7. 종이와 건축  8. 종이와 예술  9. 종이와 장난감  10. 종이와 종이접기 11. 종이와 정치  12. 종이와 영화 그리고 그 밖의 것들.

 

목차의 12번..그리고 그 밖의 것들..이라는 말이 가장 정확한 종이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퍼져 있는 종이들의 수고와 업적, 그리고 누명에 가까운 경멸을 우리는 수시로 보고 있지 않은가.

종이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IT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편지지와의 이별을 예감했고, 종이책과의 결별을 예감했으나, 종이의 활용은 더없이 많아져 버렸다. 어느 곳에서든 누구든 출력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어쨌든 책의 내용들은 너무나 다채롭다. 인류학적 고찰과 발명의 역사, 정치사에 이르기까지 종이가 끼어들었던 모든 틈새에 대한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아주 친밀한 친구의 비밀을 뒤늦게 전해 듣는 기분? 그런 기분이라면 맞을까?

 

 

#2. 에미넴과 종이

 

힙합 악동 에미넴이 우리 나라에 공연을 왔었다. 음악성보다는 무례함으로 더욱 유명한 가수의 공연. 분출하지 못하는 응어리를 가슴에 담아둔 사람들은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의 무례함은 팬에 대한 감사따윈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모두 다 숙지할 만큼 대단하고 유명했다. 그의 노래 중 airplane 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의 랩이 시작되기 전 불려지는 사비부분의 서정성은 그의 랩을 극대화 시키기에 적절하다. 팬들은 그의 노래가 시작되고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공중으로 무수히 날아오른 종이비행기..무대 위로도 떨어지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도 떨어졌다. 장관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종이에 실려 공간을 가득채운 순간이었다. 그의 노래와 퍼포먼스보다 압도적이었던 종이의 위용!

무례함의 대명사였던 그가 머리 위로 커다란 하트를 만들어보인다. 유례없던 일이다. 물론 모든 것을 떼창으로 화답해준 놀라운 팬심에 그가 감동했을지도 모르겠지만..그의 공연 중 압권은 종이비행기였다.

"비행기" 가 아니라 "종이" 비행기였다는 것.

 

# 3. 연인과 종이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사람들은 댓글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거나 좀 더 친밀하게는 쪽지를 보내거나 좀 더 진지하게는 이메일을 쓴다. 동영상이 편집되기도 하고, 사진이 들어가기도 하고, 그래픽이 첨가되기도 하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것들을 서로 교환한다.

어느 날, 문득 고지서로 넘쳐나던 우체통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꼭꼭 눌러 쓴 흔적이 역력한 글을 읽으며 울컥해졌다. 종이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와 체온이 느껴지는 것이다.

서툴게 그린 그림과 색색으로 덧칠한 시 한 편까지..

나는 그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편지 봉투를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다.

그리고 나서 화들짝 놀라 다시 미안하다는 사과의 문자를 보냈다.

그 날 오후 나는 그에게 답장을 썼다. 답장을 쓰면서 온마음이 들어가는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명필이 아니어도 좋을, 솜씨좋은 화공이 아니어서 더더욱 좋을 그런 어눌하고 서툰 편지에 오롯이 마음을 담아 감사를 전했다.

우체국까지 한참을 걸어가 옆에 놓인 물풀 대신 침을 발라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었다. 빨간 우체통이 그 편지를 담고 콩콩 거리면서 뛰어가 전할 것도 아닌데 한참 동안 우체통을 쓰다듬었다.

돌아오는 길에 몇가지 단상이 떠올라 주었다. 서툰 글씨로 적어 내 가방에 넣어주었던 어떤 이의 쪽지, 매일처럼 우체통을 살피게 했던 사랑하는 이의 편지, 죽어도 헤어지지 말자던 친구와 함께 쓰던 일기장..

그것들이 아직도 오롯이 남아있는 건 종이 위에 적힌 약속들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간직하고 보관할 수 있던건..추억과 기억과 사랑을 보관하는 종이의 역할은 참으로 지대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그렇게 종이 위에 조금씩 그림을 그려가곤 했다.

 

#4.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책의 부제일 것이다. "페이퍼 엘레지" 왜 하필 엘레지 일까? 블루스도 발라드도 재즈도 아닌 엘레지여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종이의 쓰임은 여전히 다양하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다양화 다각화 되어질 것이 분명하다.

종이로 집을 짓기도 하고, 옷을 짓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 따라 종이도 다양하게 변신하고 있다. 젖지 않는 종이, 불타지 않는 종이..기타 등등..

문제는 이 많은 종이들이 나무들의 목숨과 맞바꿈되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대체제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상당량이 나무들에게서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나무들이 이렇게 소모되어도 좋은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절박해지는 지점이다. 나무들이 지켜내야 할 지구의 생명들이 있으니 말이다.

종이의 발달이 인간의 문명과 문화와 역사에 엄청난 기여를 했지만 그와 더불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숨통을 내어놓고 편리를 맞바꾼 것은 아니었을까?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비밀을 엿본 댓가를 지불하라는 준엄한 요구를 들은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 설움에 겨운 엘레지여야 했던 것일까?

소중하고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이대로 이어질 수 만은 없을 수도 있다는 설운 노래인 것 처럼..?

 

#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종이를 쓸 것이고, 종이와 살아갈 것이다.

종이에 쓸 것이고, 종이에 쓰인 것을 읽으면서 말이다.

대체제의 개발이 소비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종이 비행기를 접어 바다에 날리는 사치스러운(?) 내 놀이를 당분간은 계속할 것 같다.

종이의 문화사.

요즘은 쉽게 쓰는 것이 대세인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렵지 않게 읽혀지는 것인 좋았다. 종이의 일생(?)을 담은 대하소설을 읽어낸 느낌이다.

 

문득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문득 노란 종이배도 만들고 싶어졌다.

문득 종이가 애틋해졌다.

 

 

 

겉표지를 벗겨보니 우표의 뒷면같은 표지가 나온다. 편지를 써야겠다.

종이가 종이를 종이에게 종이를 이용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종이의 시대가 정점에 달한 것이다. (p43)

종이는 모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니다. 궁극의 맥거핀이다.

"인쇄공, 디자이너, 비서, 식자공, 평론가, 작가, 사환, 잉크와 제책 장인, 삽화가, 서문 저자, 비평가들의 덕분에 인쇄된 단어가 강렬하고 집요한 희망을 지닐지라도, 종이는 유기적 물건이라서 길가의 소나무처럼 언젠가는 소리 없이, 파멸을 일으키는 붕괴 속에서 바다의 아귀에 잠켜질 것이기 때문이다. "
조각조각 파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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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으로 세간이 떠들썩하다.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안은 작가의 작품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각 출판사별로 야단법석이다.

작년에도 그랬던것 같다. 먼로의 작품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고, 그녀의 책을 읽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분위기까지 느꼈다.

사유와 지성의 깊이와 척도를 가늠하는 노벨상 수상작 읽기였을까?

너도 나도 선물을 하고 읽어대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환호를 질러대곤 했다.

미욱하기 이를데 없는 천박한 독자였던 나는 먼로의 책을 펼쳤다 이내 덮어버렸다.

번역이 문제였을까? 투박하고 거친 번역체와 도무지 이입이 안되는 서사에 기대만큼의 실망과 지루함을 느끼고, '아, 나는 노벨상 수상작을 읽어낼 만큼의 깜냥이 안되나봐'라는 자조적인 평가를 내리고 말았다.

여튼,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 떠들썩하다.

이미 읽었던 것이라 다행이다 싶다. 최소한 과도한 기대나 영광스러움에 몸서리칠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언젠가 엄청난 세일을 할 때였을거다. 그때 묶음으로 몇권 같이 주문해서 읽게 되었었다.

 흰 표지들로 이루어진 여러 전집들 사이에 검은 표지로 테마를 잡은, 이 시리즈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 때 같이 온 책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책을 주문할 당시 어떤 일관성이 작용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렇게 고르게 된 데는 필시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문학상은 그렇고..

우리 나라도 존경받지 못하고 폄하되고 조롱받는 평화상 수상자가 있었다. 충분히 축하받아야 마땅하고 기억됨이 정당하고 찬사를 보내야 함에 분명한 일임에도 힘있는 자들은 이 상의 수상내용과 업적을 가리기에 급급하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임에도 이렇게 조롱당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싶다.

오죽했으면, 한국에는 더 이상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없을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이번 평화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중동이다.

중동의 종교적, 정치적문제들이야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며, 그 지난한 내분의 과정을 오래도록 보아온 탓에 한켠 '그러려니..'또는 '여전하군..'하는 식으로 깊이 있게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IS의 참수 사건으로 여론의 집중을 받게 되면서 그들의 싸움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참담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가.

그 땅에 태어난 것이 축복일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태어남'의 책임이 너무나 잔혹한 것은 아닌가.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스쳤다.

 

 

  얼마전 읽게 된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그리고 어제부터 모든 도서관련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나는 말랄라'

 이 두 책이 절묘하게 입속에서 꼬인다.

라말라, 말랄라...

말랄라의 책은 다양하게 출판되어져 있다.

 

 

 

 

 

 

 

 

 

 

 

 

 

 

 

 

 

 

 

 

문학동네의 말랄라가 제일 갸름한 얼굴을 하고 있다. 예쁘긴 하지만, 다른 표지들이 더 정감이 간다.

또다른 수상자인 카일라시 사티야티. 더불어 읽어볼 만한 책들이 생각났다.

 

 

 

 

 

 

 

 

 

 

 

 

 

 

 

SNS에서 어떤분의 말이 떠올랐다.

문학동네는 노벨출판상인가보다..라는.

논란도 많고 문제점도 다각도로 지적되고 있는 출판그룹이지만, 그러면서 성장하리라 본다.

모질게 잘라내고 다듬어야할 일이다. 가끔은 오래 주물럭거린다고 좋은 것이 나오진 않는다. 단칼에 베어내고 다듬어야 할 일도 있다. 오래 주무른 것은, 신선하지 않다. 신선한 건강함을 추구한다면, 비겁한 변명을 배우기보다 단호함을 배우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중동에 대한 집중이 시작되었을 때, 좀 더 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친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 그 암울한 시기에 우리나라 문학의 큰 뿌리들을 만났던 것 처럼 말이다.

 

여성과, 아동과, 종교와 지역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이런 것들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문득,

이란과 인도보다 우리가 나은게 뭘까?를 생각해본다.

생각만 해본다.

 

책이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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